느닷없이 잘린 당 2인자…김정은, 평양 입시비리에 격노했다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29일 북한 노동신문이 전한 이만건 조직지도부장의 해임 사유가 김일성고급당학교에서 발생한 입시 비리 사건 때문인 것으로 2일 파악됐다.

소식통 "김정은 지시로 비리 조사 착수" #"입학, 성적 관리 돈 거래 발각" #학교 담당자들도 대규모 처벌 받은 듯

노동신문은 “당 골간 육성의 중임을 맡은 당 간부양성기지에서 엄중한 부패현상이 발생했다”며 “당 정치국 확대 회의에서 당 중앙위 간부들과 당 간부양성기관의 일군(일꾼, 간부)들 속에서 발로된 비당적 행위와 특세, 특권, 관료주의, 부정부패 행위를 집중 비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만건ㆍ박태덕(농업담당) 당 부위원장을 해임하고, 해당 기관의 당 위원회 해산을 결정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주재했다고 노동신문이 지난달 29일 전했다. [사진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주재했다고 노동신문이 지난달 29일 전했다. [사진 연합뉴스]

북한은 노동신문에선 구체적으로 어떤 당 간부양성기지에서, 어떤 비리 행위가 있었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당 간부양성기지’라는 표현을 사용해 김일성고급당학교임을 시사했다.

이와 관련, 한 대북 소식통은 “지난해 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지시로 김일성고급당학교에 대한 비리 혐의 조사가 진행 중이란 첩보가 있었다”며 “조사 결과 이 학교에서 돈을 받고 입학시킨 사례와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교직원과 이 학교를 담당하는 당 위원회 간부들에게 상납하는 일이 빈번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전했다.

북한이 내부 비리 발생 사실을 공개한 후 담당 고위 간부 해임과 해당 기관의 당 위원회 자체를 해산한 건 매우 이례적이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 퍼진 이후 공개활동을 중단했던 김 위원장이 47명의 당 고위 간부들을 불러모아 질책할 만큼 이번 사건은 북한 내부에 여러모로 충격파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노동신문이 이만건 부장 해임 이틀 뒤인 2일 “인민을 업신여기고 인민의 이익을 침해하는 비(非)당적 행위와 특세, 특권, 관료주의, 부정부패 행위에 강한 타격을 가한 것”이라고 비리 경계령을 내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공개활동을 중단했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소집해 주재했다고 노동신문이 지난달 29일 전했다. [사진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공개활동을 중단했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소집해 주재했다고 노동신문이 지난달 29일 전했다. [사진 연합뉴스]

김 위원장의 이례적 행보는 이 학교가 북한에서 차지는 위상과 관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교육성에서 관장하는 일반 대학과 별도로 노동당이 당 간부와 행정 간부, 청년 담당 간부를 양성하기 위해 각각 김일성고급당학교와 인민경제대학, 금성정치대학을 운영 중이다.

이 가운데 졸업 후 초급 간부가 보장되는 김일성고급당학교는 당을 중시하는 김 위원장의 정책과 맞물려 입학이 쉽지 않다. 항간엔 뇌물을 써도 입학하기 어려울 만큼 로비가 치열한 학교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김일성고급당학교의 4년제 대학과정을 마치면 대부분의 졸업생은 중앙당(노동당)에 배치받는다. 일종의 노동당 사관학교”라고 설명했다. 이 당국자는 “일반 주민들은 당에 입당하기도 어려운데 이 학교를 졸업하면 곧바로 중앙당에서 근무할 수 있어 당 간부들이나 돈주(신흥 자본가)들이 자식 입학을 위해 치열한 로비를 하고  금품이 오가는 경우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이만건 전 부장 이외에 김일성고급당학교의 간부들도 대거 처벌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관련, 자유아시아방송은 1일 내부 소식통을 인용, “김일성고급당학교 학장과 학교 당 위원회 간부 47명이 특권 행위와 부정부패로 당의 권위를 훼손했다는 죄로 출당 또는 철직됐다”며 “출당ㆍ철직된 학교 간부들은 현재 농촌과 광산에서 혁명화 노동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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