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만드느라 재료가 없다" 日 가짜뉴스에 '화장지' 대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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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일본에서 마스크, 손 소독제에 이어 화장지 사재기까지 벌어졌다. 마치 과거 오일쇼크 때 일본에서 일어났던 화장지 사재기를 연상케 한다는 지적이다.

"화장지는 중국에서 수입되니 수입이 멈춘다" #"마스크 증산으로 화장지 재료 없어진다" 루머 #사실 아님이 밝혀져도 잘못된 정보 퍼져나가 #아베 총리 나서서 "재고 충분" 설명까지

2일 닛케이 아시안 리뷰에 따르면 일본의 드럭스토어 체인 '토모즈'에서는 휴대용 티슈와 화장지 등의 지난주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배 늘었다. 일본 화장지 시장의 10%를 점하는 마루토미 제지에 따르면 지난주 목·금요일 주문이 급증했다. 원래 하루에 1600건 정도 들어왔던 화장지 주문이 이틀 동안에만 온라인에서 4만건 주문됐다.

지난 1일 도쿄의 한 매장 내 화장지 코너가 텅 비어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일본 내에서 생필품 사재기가 계속되면서 이번에는 '화장지 대란'이 일어났다. [AFP=연합뉴스]

지난 1일 도쿄의 한 매장 내 화장지 코너가 텅 비어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일본 내에서 생필품 사재기가 계속되면서 이번에는 '화장지 대란'이 일어났다. [AFP=연합뉴스]

화장지 대란은 잘못된 정보가 돌면서 시작됐다. 실제로는 재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SNS 등에 "화장지 재고가 없다"는 루머가 돌기 시작했다.

마스크를 만드느라 종이를 많이 써서 화장지를 만들 재료가 없어졌다는 게 루머의 주된 내용이다. 중국으로부터 모든 자재의 수입이 줄면서 일본 내에서 화장지 품귀현상이 일어날 것이란 정보도 돌았다.

지난 1일 도쿄의 한 매장 앞을 지나고 있는 여성.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일본 내에서 생필품 사재기가 계속되면서 이번에는 '화장지 대란'이 일어났다. [AFP=연합뉴스]

지난 1일 도쿄의 한 매장 앞을 지나고 있는 여성.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일본 내에서 생필품 사재기가 계속되면서 이번에는 '화장지 대란'이 일어났다. [AFP=연합뉴스]

일본 현지 언론들은 이를 두고 "오일 쇼크 사태를 연상케 한다"고 전했다. 오일쇼크 시기였던 1973년 11월 일본 각지의 슈퍼마켓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화장지가 동이 났다. 이른바 '1973년의 화장지 소동'이다. 당시 한 매장에서 휴지에 '매진 임박'이라고 쓰면서 타임세일을 시작했는데 이것이 뜻밖의 '나비효과'를 일으켜 세제 등 생필품 사재기가 일어났다. 사재기는 수 개월을 간 뒤에야 멈췄다.

문제는 한 번 루머가 돌면 나중에 잘못된 정보임이 밝혀져도 왜곡된 정보 그대로 계속 퍼진다는 점이다. 사회심리학자인 우스이 마후미(碓井真史) 니가타 세료(新潟青陵)대학 교수는 "과거 구마모토 지진 때는 '사자가 (동물원에서) 도망쳤다'는 유언비어가 퍼졌는데 결국 거짓말임이 판명됐음에도, 사자가 도망쳤다는 정보는 여전히 퍼져나갔다"고 짚었다.

올바른 정보가 나온 후에도, "그 정보는 잘못된 것"이란 사실보다는 "사자가 도망갔다", "화장지가 없어진다"라는 자극적인 정보가 더 퍼진다는 것이다.

우스이 교수는 "도쿄뿐 아니라 지방 도시에서도 화장지가 사라지고 있다"면서 "몇몇이 사재기를 시작하고 추종하는 사람이 나타나게 되면 냉정하게 판단하던 사람조차 서둘러 구매를 시작하게 된다"고 했다. 사재기는 사회적 패닉까지 연결된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우스이 교수는 또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방법은 재고를 풀어서 매장 진열대에 화장지를 채워놓는 것"이라면서 "다만, 대량으로 사들여 해외로 반출하는 사람을 막는 게 전제가 돼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이럴수록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패닉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아베 신조 총리도 이번 화장지 대란을 두고 지난달 29일 "화장지 부족 사태는 없다"면서 "중국으로부터 오는 물자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일본에 재고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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