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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영화제 감독상 홍상수 “여배우들에게 박수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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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홍상수 감독이 연인 김민희와 함께한 새 영화 도망친 여자로 제70회 베를린영화제 은곰상-감독상을 차지했다. [AFP=연합뉴스]

홍상수 감독이 연인 김민희와 함께한 새 영화 도망친 여자로 제70회 베를린영화제 은곰상-감독상을 차지했다. [AFP=연합뉴스]

홍상수 감독의 ‘도망친 여자’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감독상을 받았다. 독일의 베를린영화제는 프랑스 칸영화제, 이탈리아 베니스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국제영화제로 꼽힌다. 한국영화가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건 2004년 김기덕 감독의 ‘사마리아’ 이후 16년 만이자, 역대 두 번째다.

김기덕 감독 이후 16년 만의 수상 #홍, 3대 국제영화제 본상은 처음 #심사위원장 “영화 하나만 보고 선정” #연인 김민희 포옹 뒤 수상 무대로

2012년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았고,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바 있어, 한국영화는 3대 영화제 중 베를린 최고상만 남겨두고 있다.

이날 베를린영화제 시상식에서 ‘도망친 여자’는 전 세계 총 18편의 경쟁 부문 진출작과 겨룬 끝에 감독상에 호명됐다.

홍 감독은 옆자리의 연인이자 주연 김민희와 포옹 후 수상 무대에 올라 “이 영화를 함께 만든 모두와 영광을 나누고 싶다. 감사하다”면서 심사위원들을 향해 인사했다.

이어 “허락한다면, 나의 여배우들이 일어나서 박수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객석에 시선을 돌렸다. 김민희와 더불어 베를린 일정을 함께한 배우 서영화가 기립해 감독을 향해 환한 미소와 함께 박수를 보냈다. 3년 전 연애 사실 공개 뒤 공식 석상에 나오지 않았던 김민희와 홍 감독은 이번 영화제엔 커플링을 하고 나와 애정을 과시했다.

29일(현지시간) 왼쪽부터 배우 김민희와 홍상수 감독, 배우 서영화가 제70회 베를린영화제 시상식 전 레드카펫에 참석했다. [AFP=연합뉴스]

29일(현지시간) 왼쪽부터 배우 김민희와 홍상수 감독, 배우 서영화가 제70회 베를린영화제 시상식 전 레드카펫에 참석했다. [AFP=연합뉴스]

영화제 기간 영국 매체 ‘스크린인터내셔널’의 데일리 소식지 평점에서 ‘도망친 여자’는 4점 만점에 2.7점으로 공동 4위였다. 1위는 미국 감독 엘리자 히트맨이 원치 않은 임신을 하고 뉴욕에 가는 시골 10대 소녀들을 그린 ‘네버 레얼리 썸타임즈 올웨이즈’로 3.4점, 이어 오랜 콤비 차이밍량 감독, 배우 이강생의 대만 영화 ‘데’(3.3점), 독일 감독 크리스티안 펫졸드의 멜로 ‘운디네’(3.1점) 순서였다.

공식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은 배우 제레미 아이언스는 레드카펫 인터뷰에서 “영화(Cinema) 외에 어떠한 주제도 고려하지 않았다”고 심사평을 밝혔다.

시상식 후 기자회견에서 홍 감독은 영화의 출발점이 뭐냐는 질문에, “내가 일하는 방식은 일단, 시작하기로 결정부터 한다(The way I work is at first I decide to start)”고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장소를 정하고 배우들에게 일주일 뒤, 혹은 한 달 뒤에 찍자고 말한다. 장소를 돌아다녀 보면 촬영 며칠 전쯤엔 첫 장면이 떠오른다”며 “나 자신을 믿어야만 한다”고 했다.

영화에 자유로운 상상을 담는 비결로는 “작은 디테일에 머물려고 노력한다”며 “하는 것(영화)에 대해 너무 빨리 정의하지 않으려고 한다. 일종의 달콤한 무지(sweet blindness)에 머물려고 애쓴다”고 답변했다.

‘도망친 여자’ 해외 포스터. [사진 영화제작전원사, 콘텐츠판다]

‘도망친 여자’ 해외 포스터. [사진 영화제작전원사, 콘텐츠판다]

‘도망친 여자’는 홍 감독의 24번째 장편이자, 배우 김민희와 7번째 함께한 작품이다. 이번 수상은 그의 영화가 베를린 경쟁 부문에 진출한 지 4번만의 쾌거다. ‘밤과 낮’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밤의 해변에서 혼자’ 등이 초청됐고, 2017년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는 주연 김민희가 그해 한국배우 최초로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여자배우상을 받았다.

올해 최고상인 황금곰상은 이란 감독 모함마드 라술로프의 ‘데어 이즈 노 이블(There is no evil)’이 차지했다. 도덕의 힘과 사형이란 주제를 4가지 이야기로 변주한 작품. 남자배우상은 화가 안토니오 리가부에의 전기영화 ‘히든 어웨이’에서 주연한 엘리오 게르마노, 여자배우상은 독일 영화 ‘운디네’에서 고대 신화에 사로잡힌 역사가 역을 맡은폴라 비어에게 돌아갔다.

지난달 20일(현지 시간) 개막한 이번 영화제에는 배우 조디 포스터, 조니 뎁 등 할리우드 스타도 찾았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도 자신의 얘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힐러리’를 계기로 영화제를 찾아 주목을 받았다.

베를린영화제에서 한국영화는 1958년 이병일 감독의 ‘시집가는 날’을 첫 출품한 이래 거의 매해 영화를 출품해왔다. 한국영화 최초 수상작은 1961년 강대진 감독, 신영균 주연의 ‘마부’. 비경쟁 명예상인 은곰상-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다. 이듬해 1962년엔 ‘이 생명 다하도록’의 아역 전영선이 아동특별연기상을 차지했다.

경쟁 부문 본상 첫 수상은 1994년 장선우 감독의 ‘화엄경’으로, 독창성이 돋보이는 영화에 주는 은곰상-알프레드 바우어상을 받았다. 박찬욱 감독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도 2007년 수상했다. 그러나 이 상은 올해부터 폐지됐다. 상의 이름을 딴 초대 집행위원장의 나치 부역 경력이 최근 드러나서다.

이번 베를린영화제에 한국영화는 ‘도망친 여자’ 외에도 스페셜 갈라 부문에 한국영화 최초 초청된 윤성현 감독의 ‘사냥의 시간’, 포럼 익스펜디드 부문에 초청된 김아영 감독의 실험영화 ‘다공성 계곡 2: 트릭스터 플롯’까지 총 3편이 선보였다. 레드카펫에선 한국 아이돌 ‘블랙핑크’의 ‘뚜두뚜두’ 등 K팝 여러 곡이 배경음악으로 흘렀다.

‘도망친 여자’와 ‘사냥의 시간’은 코로나 19로 인해 예정했던 개봉일정을 연기해 올봄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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