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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례성의 원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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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성훈 기자 중앙일보 베이징특파원
박성훈 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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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들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 26일 밤 중국 칭다오의 지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다급한 목소리로 그는 최근 돌아온 한국 교민들의 집에 ‘빨간 딱지’가 붙고 있다고 했다. 당사자들 확인에 나섰다. 그중 한 명이 양재경 충칭 한인회장. 24일 왔을 때만 해도 아무 말이 없다가 이날 오후 갑자기 아파트 문에 딱지를 붙여 출입을 막아버렸다고 했다. 사전 예고도 없었다. 대신 밖으로 나오면 다시 격리 1일 차가 시작된다고 엄포까지 놨다. 격리가 끝난 아내도 덩달아 집에 갇혔다. 강제 격리를 넘어 사실상 구금 조치다. 다른 한 교민의 집에는 빨간 딱지도 모자라 문 앞에 감시카메라까지 설치했다.

한국이 전염병 상황을 ‘심각’ 수준으로 격상시킨 다음 날 중국 웨이하이에 도착한 교민 이씨는 공항에서 곧바로 호텔로 격리됐다. 이어 열이 37.1도라는 이유로 병원으로 이송 격리됐다. 그의 아내는 공항에 오다가 검문에 붙잡혀 3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고, 이씨의 지인은 웨이하이시로 출근하다 톨게이트에서 한국인 출입 금지 통보를 받아 결국 회사에 나가지 못했다. 과도(過渡)한 게 아니라 무도(無道)한 수준이다. 한국에 사는 중국인이 본국을 다녀왔다고 해서 집에 딱지를 붙이고, 2주간 출입을 막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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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한국 정부의 유감 표명에 대한 중국 정부의 답은 노련했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강경화 장관과의 통화에서 “한국의 도움을 마음에 새기겠다”면서도 “중국의 경험상 이동을 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한국을 추켜세우며 조치의 불가피성을 내세웠다. 자오리지엔(趙立堅) 외교부 대변인은 한 발 더 나갔다. “이번 전염병의 무서움을 깨닫지 못한 나라의 눈에는 현재 입국자들에 취해지는 조치가 ‘과도한’ 것으로 비칠 수 있지만, 이미 큰 피해를 본 중국인들은 모든 이들을 위한 조치라고 여길 것”이라고 했다. 현재 한국에 취하고 있는 조치가 과도한 게 아니라고 잘라 말한 것에 다름없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비례성의 원칙과 사안별로 대응하는 ‘팃포탯’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했다. 강 장관이 “우리도 중국에 대해 상당히 대응을 자제해왔는데, 중국도 이에 상응해 과도하게 대응하지 않도록 소통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배경이다. 정부가 생각하는 중국의 과도한 조치와 비례성의 원칙은 뭘까. 중국 누적확진자 7만8630명, 한국 1595명(27일 오후 4시 기준). 한국 정부는 후베이성을 제외한 중국인 입국자에 대해 최소한의 방역 조치인 2주 자가 격리조차 아직 시행하지 않고 있다.

박성훈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