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판' 사라진 문닫은 탑골공원...무료 급식은 22일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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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여파로 탑골공원이 19일 오후부터 문을 닫았다. 주변이 썰렁하다. 함민정 기자

코로나19 여파로 탑골공원이 19일 오후부터 문을 닫았다. 주변이 썰렁하다. 함민정 기자

20일 오후 5시40분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정문인 ‘삼일문’이 굳게 닫혀 있다. 다가가니 A4용지 크기만 한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코로나19 감염증 예방을 위해 공원 이용을 중단하오니…”라는 문구가 담겼다. 탑골공원은 교통이 편리한 서울 도심에 있다. 평소 노인들이 즐겨 찾는 곳 중 하나로 꼽힌다. 올해 들어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가수 양준일씨의 별명이 ‘탑골GD’로 알려지면서 덩달아 공원 인기도 높아졌다고 한다.

그런 탑골공원이지만 코로나19의 여파는 피하지 못했다. 종로구에서 확진자가 연달아 나오면서 공원은 전날 오후 6시부터 폐쇄된 상태다. 면역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노인들의 혹시 모를 감염을 우려한 조치다. 언제 다시 열지는 미정이다. 이날 오후 4시 기준 서울 확진자 수는 15명(누적치)이다. 이 가운데 종로구에서만 6명이 나왔다.

지난해 6월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담장 아래서 노인들이 장기를 두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6월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담장 아래서 노인들이 장기를 두고 있다. [연합뉴스]

장기 두는 노인으로 북적였던 길가 '썰렁' 

탑골공원 주변은 썰렁했다. 평상시 장기판이 펼쳐져 노인들로 북적였을 공원 후문 쪽 낙원상가 방향 길가는 전과 딴판이다. 을지로 4가에서 왔다는 박손서(70)씨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매일 장기판이 열렸다”면서 “판이 열리지 않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고 말했다. 5년 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장기판이 벌어졌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탑골공원 폐쇄 소식을 미처 알지 못했던 일부 노인들은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60대 초반의 노인은 “여기 말고 딱히 갈 만한 데 없지 뭐…”라고 했다. 반면 삼삼오오 길 가던 70대 노인들은 주변 쌍화차 카페나 단골 식당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미용실에서 염색하는 노인들도 이날 따라 자주 눈에 띄었다.

폐쇄를 알리는 탑골공원 안내문. 함민정 기자

폐쇄를 알리는 탑골공원 안내문. 함민정 기자

맨얼굴 노인..."면역력 강하다" 호기도 

“종로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은 카카오톡 단체 방을 통해 알았다고 한다. 주로 이른 오전에 단톡방에서 꽃 사진이나 명언, 웃긴 동영상 등을 공유하는데, 요즘은 코로나19와 관련한 소식이 부쩍 많아졌다고 한다. 봉필재(81·서울 응암동)씨는 “어제 코로나(확진자 소식) 뜨고 나서 여기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노인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자주 몰리는 한 문화시설을 통해 감염되는 것 아니냐며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귀띔하기도 했다.

몇몇 노인은 얼굴을 훤히 드러낸 채 탑골을 찾았다. 한 노인은 “주머니 사정 탓에 마스크를 못 샀다”고 속상해했다. 마스크를 나눠주던 손길도 요즘 뚝 끊겼다고 아쉬워하는 모습이다. 반면 “면역력이 약하니까 걸리지. 난 걱정 안해”라고 호기를 부리는 노인도 있었다.

마스크 배부 자료사진. *신종코로나와 관련 없습니다. [연합뉴스]

마스크 배부 자료사진. *신종코로나와 관련 없습니다. [연합뉴스]

"우리가 제공하는 한끼가 전부인 노인도" 

탑골공원은 문 닫았지만 21일 노인을 대상으로 한 종교단체의 무료급식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공원 주변의 한 무료급식소는 22일(오전 11시20분~오후1시)까지 열린다. 급식소 관계자는 “(내일) 300명분을 준비했는데, 22일까지 하고 당분간 중단해야 하지 않나 싶다”며 “우리가 제공하는 따뜻한 한 끼가 누군가에게는 전부인 것을 안다. 그래서 마음이 굉장히 좋지 않다”고 씁쓸해했다. 이어 그는 “메르스나 사스 때도 이러지는 않았는데…”라고 덧붙였다.

다른 무료급식소도 같은 날 130명분의 점심 급식에 나설 예정이다. 2곳 무료급식소 모두 개인위생에 잔뜩 신경 쓰는 모습이다. 배식원의 마스크·손 장갑 착용은 기본이다. 급식소에는 손 소독제도 비치한다. 급식소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손을 닦도록 할 방침이다.

사람 손길이 닿는 급식소 손잡이 등도 수시로 세제 등으로 닦을 예정이다. 급식소 관계자는 “급식 봉사를 그만두면 허기진 노인들은 어떡하냐”며 “(서울시 측에 급식을 계속할 수 있게) 빨리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했다”고 강조했다.

함민정·김민욱 기자 ham.minj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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