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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은 상고대, 정상은 대설원… 소백산은 늦겨울에도 눈 천지

중앙일보

입력

겨울이 지나기 전에 눈꽃 산행을 경험하고 싶다면 소백산이 좋겠다. 산새가 순해 등산 초보도 도전해 볼 만한 하다. 사진은 연화봉 대피소에서 내려다본 소백산 정상부의 능선. [중앙포토]

겨울이 지나기 전에 눈꽃 산행을 경험하고 싶다면 소백산이 좋겠다. 산새가 순해 등산 초보도 도전해 볼 만한 하다. 사진은 연화봉 대피소에서 내려다본 소백산 정상부의 능선. [중앙포토]

아직 겨울은 끝나지 않았다. 눈다운 눈 한 번 못 보고 겨울이 가버린 줄 알았는데, 지난 주말 세상은 남도의 봄꽃 소식 무색하게 흰옷으로 갈아 입었다. 아직 겨울이 가기 전에 가볼 만한 산이 있다. 산행 초보자에게도 어렵지 않고 늦겨울에도 설경이 펼쳐지는 소백산이다. 이름처럼 하얀 눈을 덮어쓴 산을 걸으며 두 번 놀랐다. 밖에선 칙칙해 보였는데 산에 드니 완벽한 겨울왕국이어서 놀랐고, 요즘 어딜 가도 보기 힘든 인파가 씩씩하게 걷고 있어서 놀랐다.

3월 중순까지 눈 세상 

소백산은 충북 단양군과 경북 영주시에 걸쳐 있는 큰 산이다. 백두대간 같은 줄기에 태백산(太白山)이 있다지만, 소백산(小白山)은 이름처럼 왜소한 산이 아니다. 최고봉 비로봉(1439m)을 비롯해 연화봉(1357m), 국망봉(1421m) 등 명봉이 어깨를 겯고 있다. 산세가 부드러운 데다 등산 코스가 다양한 것도 매력적이다.
소백산이 가장 북적일 때는 철쭉꽃이 만발하는 5월이지만 1, 2월 인기도 만만치 않다. 날이 추울 때만 볼 수 있는 눈꽃 때문이다. 소백산 능선은 북동에서 남서 방면으로 길게 펼쳐져 있다. 겨울 북서풍이 그대로 산으로 들이쳐 상고대(나무나 풀에 내려 눈처럼 된 서리)가 잘 생긴다.

충북 단양에서 출발하는 천동계곡은 경사가 비교적 완만한 편이다. 코스 초입에는 눈이 얕게 깔렸다.

충북 단양에서 출발하는 천동계곡은 경사가 비교적 완만한 편이다. 코스 초입에는 눈이 얕게 깔렸다.

소백산국립공원 사무소에 따르면, 겨울에는 어느 코스에서든 설경을 감상할 수 있다. 올겨울 전국이 눈 가뭄이었고 입춘, 우수가 지났는데도 소백산엔 적지 않은 눈이 쌓여 있다. 올겨울(2019년 12월~2020년 1월) 소백산 탐방객은 10만3377명으로, 지난겨울(2018년 12월~2020년 1월, 10만5907명)과 비슷한 수준이다. 다만 기온이 높아 눈꽃 산행 시즌은 예년보다 짧아질 것 같다. 소백산국립공원 박상미 주임은 “올해는 3월 중순이 눈꽃 산행의 마지노선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해발 1000m를 넘으니 거짓말처럼 상고대가 장관을 이뤘다.

해발 1000m를 넘으니 거짓말처럼 상고대가 장관을 이뤘다.

7개 등산로 중 눈꽃이 많고 걷는 맛도 느낄 수 있는 ‘천동계곡 코스’를 선택했다. 국립공원이 난이도를 ‘중’으로 분류한 왕복 13.6㎞ 코스다. 오전 10시, 출발지점인 다리안관광지 주차장은 만차였다. 채비를 갖추고 걸음을 내디뎠다. 계곡물은 꽁꽁 얼었는데 주변은 온통 갈빛이었다.

구름 흐르는 듯한 산새 

등산로가 점점 미끄러워졌다. 오전 11시 30분, 나무 벤치에 앉아 아이젠(미끄럼 방지용 기구)을 신었다. 벌써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연화봉 대피소에서 잠을 자고 일출을 보고 내려오는 길이란다.

사실 소백산 설경은 비로봉보다 상고대 핀 계곡이 더 근사했다. 온통 하양으로 뒤덮인 산속이 아늑하게 느껴졌다.

사실 소백산 설경은 비로봉보다 상고대 핀 계곡이 더 근사했다. 온통 하양으로 뒤덮인 산속이 아늑하게 느껴졌다.

20분을 더 걸으니 천동쉼터가 나왔다. 해발 1000m인 쉼터 부근에는 제법 많은 눈이 쌓여 있었다. 상고대도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 흐렸던 하늘이 갰다. 오직 하양과 파랑만 있는 겨울왕국이었다.

천동삼거리에 이르니 시야가 트였다. 키 큰 나무는 사라지고 천연기념물인 주목과 허리 높이의 철쭉 군락이 눈을 덮어쓰고 있었다. 이어 부드럽고도 장쾌한 정상부가 한눈에 들어왔다. 천동계곡뿐 아니라 12시 방향 어의곡, 8시 방향 연화봉에서도 수많은 인파가 비로봉을 향해 진군했다. 정상이 눈앞에 보이는데 회초리 같은 칼바람이 몰아쳤다. 간신히 정상에 섰다. 조선 시대 지리학자 남사고가 묘사한 대로 “떠가는 구름과 같고 흐르는 물과 같은” 장관이 펼쳐졌다.

능선 길을 따라 소백산 정상인 비로봉으로 향하는 사람들. 회초리 같은 칼바람이 몰아쳤다.

능선 길을 따라 소백산 정상인 비로봉으로 향하는 사람들. 회초리 같은 칼바람이 몰아쳤다.

하산 길, 오후 햇살에 상고대가 모두 녹아버렸다. 오르막길에 만났던 환상적인 눈꽃과 정상부의 강물 같은 산세를 되새기며 갈빛 세상으로 돌아왔다. 꿈 한 편 꾼 것 같았다.

◇산행정보=소백산 눈꽃 산행에 나선다면 아이젠을 꼭 챙겨야 한다. 등산 스틱도 챙기면 편하다. 등산로는 수준에 맞춰 고르면 된다. 가장 쉬운 죽령~연화봉 코스(왕복 14㎞)는 초등학생도 걸을 만하다. 천동계곡~비로봉 왕복 코스는 약 6시간 걷는다.

단양=글·사진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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