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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박성훈의 차이나 시그널

리원량이 당긴 ‘방아쇠’ 중국 정부 뒤흔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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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박성훈 베이징특파원

박성훈 베이징특파원

역사는 2020년 신종 코로나 감염증(코로나19)이 휩쓴 중국을 기록할 때 의사 리원량(李文亮·34)을 빼놓지 않을 것이다. 그의 경고는 현실이 됐고, 이를 유언비어로 공개 탄압한 중국 정부는 정보 통제의 민낯을 스스로 드러냈다. 지난 7일 사망 당일 중국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선 ‘리원량이 세상을 떠났다’(#李文亮醫生去世#)는 해시태그 조회 수가 10억 건을 넘었다.

사스 괴담 유언비어 실체 추적 #의사 8명 중 3명 실제 발언 확인 #“사스 유사…밖에 나가지 마라” #유언비어로 입막은 중국 정부 #정보통제 ‘민낯’ 스스로 드러내

그는 신종 코로나의 위험성을 정부보다 먼저 외부에 알린 의사 8명 중 1명이었다. 그가 최초 경고를 보낸 지난해 12월 30일, 우한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이날 오후 5시 43분, 우한시 중심병원 안과 전문의였던 리원량은 모교 우한대 의대 04학번 동기 150명이 모인 웨이신(微信·중국판 카카오톡)방에 “화난(華南) 수산물시장에서 7명 SARS(사스) 확진”이란 글과 해당 환자의 검사 결과지 사진을 함께 올렸다. 결과서에는 ‘SARS 코로나바이러스 양성…높은 신뢰도’라고 적혀 있었다. 리원량은 “현재 (환자가) 우리 병원(우한시 중심병원) 응급실에 격리됐다”라고도 썼다. 의사라면 상황의 심각성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보였다.

이어 오후 6시 42분, 그는 추가로 글 2개를 더 남겼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정. 지금 세부 분류 진행중”, “모두 밖으로 외출을 삼가고 친척, 지인들에게 주의하라고 당부해달라”. 그는 자신의 웨이보에 “의대 동기들이 환자를 직접 대하는 임상의사이기 때문에 그런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며 “사례자 수는 많지 않았지만 바이러스가 사스와 유사해 확산될까 두려웠다”고 기록했다. 최초 경고였다.

유언비어 유포자로 체포된 의사 8명 중 3명이 쓴 실제 글이 확인됐다. 리원량은 ’7명 사스 확진“과 ’SARS 양성“ 검사지를 올렸다. [ 웨이보 캡처]

유언비어 유포자로 체포된 의사 8명 중 3명이 쓴 실제 글이 확인됐다. 리원량은 ’7명 사스 확진“과 ’SARS 양성“ 검사지를 올렸다. [ 웨이보 캡처]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한 건 그만이 아니었다. 사스 유사 환자의 검사기록지가 의사들 사이에 퍼져나가고 있었다. 이날 오후 7시 45분. 우한 적십자 병원 신경내과 전문의 리우원(柳文) 박사는 자신의 병원 의사·간호사 25명이 모인 웨이신 단체방에 “우한시 중심병원에서 코로나바이러스 폐렴 판정 환자가 격리됐는데, 사스로 거의 확정됐으니 밖에 나가 돌아다니면 안 된다”고 올렸다. “알려줘서 고맙다”는 댓글이 이어졌다.

그는 중국 매체 차이신(財信)과의 인터뷰에서 “환자의 증상과 흉부 CT 결과가 일관되게 사스와 유사했기 때문에 반드시 알려야 했다”고 말했다.

유언비어 유포자로 체포된 의사 8명 중 3명이 쓴 실제 글이 확인됐다. 의사 리우원은 ’사스로 거의 확정, 돌아다니지 마라“라고 썼다. [웨이보 캡처]

유언비어 유포자로 체포된 의사 8명 중 3명이 쓴 실제 글이 확인됐다. 의사 리우원은 ’사스로 거의 확정, 돌아다니지 마라“라고 썼다. [웨이보 캡처]

오후 8시 43분, 우한시 최대 종합병원인 시에허(協和) 병원 암센터 웨이신 단체방. 의료진 443명이 모인 방에 “여러 명의 원인 불명 폐렴 환자(사스와 유사)가 발생했다…모두 마스크를 쓰고 환기에 주의를 기울이라”라는 글이 올라왔다. 셰린카(謝琳㻔) 종양 전문의가 관련 자료를 검토하고 올린 경고였다. 그는 2003년 사스 때 전염병 치료를 전담했었다. 유언비어 유포로 체포된 의사 8명 중 발언 내용과 실명이 확인된 건 3명이다.

그러나 최소 618명 이상 의료진에게 사스와 유사한 특징이 있는 위험한 전염병이란 사실이 현직 의사의 입을 통해 순식간에 전파됐다. 이것이 유언비어냐 아니냐는 논란의 실체다.

유언비어 유포자로 체포된 의사 8명 중 3명이 쓴 실제 글이 확인됐다. 의사 셰린카는 ’유사 사스“라고 썼다. [웨이보 캡처]

유언비어 유포자로 체포된 의사 8명 중 3명이 쓴 실제 글이 확인됐다. 의사 셰린카는 ’유사 사스“라고 썼다. [웨이보 캡처]

이날 오후 3시 우한시 위생건강위원회도 공지를 냈다. 내용은 “화난 수산물 시장에서 원인 불명의 폐렴이 발생했다. 최근 1주일 동안 시장에 간 사람은 신고하라”는 게 전부였다. 다음날 우한 당국이 낸 발표도 마찬가지였다. 639자 발표문엔 “바이러스성 폐렴이고, 모든 환자가 격리됐으며, 사람간 전이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돼 있다. 그리고 곧바로 우한 공안 당국은 “사스 확산설을 퍼뜨린 8명을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전염병은 사스가 아니며 정부가 통제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이게 ‘독’이었다. 시 위생당국이 화난 시장만 막고 있는 사이 시민들은 감염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지난달 11일 첫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17일 중국 양쯔강 변에 있는 우한 최대 관광명소 황학루(黃鶴樓)는 춘제(春節)를 맞아 무료 입장권 20만 장을 배포했다. 4만 가족, 10만 여 명이 참여한 대규모 행사도 예정대로 진행됐다.

분위기가 다시 바뀐 건 사람간 감염 사실이 확인된 20일 부터다. 중국 정부는 이미 발생한 의료진 감염 사실을 감추며 사람간 전파 사실도 은폐했다. 우한이 봉쇄된 건 23일. 골든 타임은 이미 지났다. 확진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중국 인민일보(人民日報)는 리원량 사망 다음날, 그가 아닌 우한의 다른 의사 한 명을 집중 조명했다. 우한 후베이 중시(湖北中西)병원 호흡기 내과 장지시앤(張繼先) 전문의. 인민일보는 신종 코로나의 심각성을 최초로 상부에 보고한 건 그였으며, 지난해 12월 26일 열과 기침을 하는 노인 부부의 흉부 CT를 통해 일반 폐렴과 양상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해 병원과 당국에 보고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한시의 화난 시장 통제 조치는 리원량의 경고 때문이 아니라 앞선 그의 발견을 통해 진행된 것이며 장지시앤은 지금도 신종 코로나를 치료중인 ‘진정한 영웅’이라고 했다. 장지시앤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박성훈 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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