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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쇼핑 않겠다"···기생충 뺨친 82세 여배우의 '빨간 드레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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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SITE(기생충)!”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의 마지막 순서였던 작품상 시상. 이날 시상을 위해 무대에 오른 미국의 여배우 제인 폰다의 한마디에 온 국민이 들썩였던 한 주였다.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이라는 역사적인 소식과 함께, 주요 외신에서는 제인 폰다가 입고 나온 붉은색 드레스에 일제히 주목했다.

붉은색 드레스를 입고 아카데미 작품상 시상에 나선 배우 제인 폰다. [사진 EPA=연합뉴스]

붉은색 드레스를 입고 아카데미 작품상 시상에 나선 배우 제인 폰다. [사진 EPA=연합뉴스]

이날 제인 폰다는 반짝이는 붉은색 비즈 장식이 달리고 안쪽이 투명하게 비치는 엘리 사브의 맞춤 드레스를 입었다. 꼿꼿한 82세 여배우의 기품을 드러낸 우아한 스타일의 드레스였다. 하지만 이날 드레스가 주목 받은 이유는, 지난 2014년 5월 14일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도 제인 폰다가 입었던 같은 드레스여서다.

必환경 라이프? ‘그린’으로 물든 레드 카펫

스타들의 화려한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레드 카펫은 그야말로 스타일의 전장이다. 최고의 한순간을 위해 고가의 드레스와 장신구들이 총출동하는 것은 물론, 수백 시간을 제작에 투자한 예술 작품 수준의 드레스를 입는 스타들도 적지 않다. 이런 큰 무대에 서는 배우가 몇 년 전 입었던 드레스를 다시 입고 나왔다는 것은 충분히 뉴스거리다. 게다가 그 이유가 '더는 쇼핑을 하지 않겠다'는 배우의 소신에 따른 것이라 더욱 화제가 됐다.

왼쪽이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 때의 제인 폰다. 그는 같은 드레스를 지난 2014년 5월 칸 영화제에서도 입었다. [사진 연합뉴스, 중앙포토]

왼쪽이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 때의 제인 폰다. 그는 같은 드레스를 지난 2014년 5월 칸 영화제에서도 입었다. [사진 연합뉴스, 중앙포토]

제인 폰다는 지난해 가을과 겨울 매주 금요일마다 체포되어 구치소에서 밤을 보냈다. 지난해 10월 11일부터 매주 금요일 미국 워싱턴 D.C 의회 앞에서 열린 ‘금요일의 소방 훈련(Fire Drill Fridays)’이란 집회에 함께 하면서부터다. 기후 변화에 빨리 대응하지 않는 당국에 항의하는 집회로 제인 폰다는 의회 무단 점거 혐의로 현장에서 매주 연행됐다. 이 시위대는 지구의 기후 변화에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는 의미로 붉은 옷을 입고 집회한다. 지난해 10월 제인 폰다는 “(시위에 참석하기 위해)붉은 옷이 필요해서 세일하는 것을 샀다”며 자신의 붉은색 모직 코트를 가리켰다. 그는 이어 “이 옷은 내가 사는 마지막 옷이 될 것”이라고 했다.

지난 11월 1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환경 집회 현장에서 체포되는 제인 폰다. [사진 AFP=연합뉴스]

지난 11월 1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환경 집회 현장에서 체포되는 제인 폰다. [사진 AFP=연합뉴스]

제인 폰다는 지난 9일(현지시각) 아카데미 무대에 오르면서도 이 약속을 지켰다. 5년 전 다른 영화제에서 입었던 붉은색 드레스를 다시 꺼내 입고, 마지막으로 산 붉은색 모직 코트를 한쪽 어깨에 걸치고 등장했다. 세계인이 주목하는 무대에서 붉은 옷을 입고 무언의 시위를 한 셈이다.

이날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제인 폰다와 뜻을 같이한 이들이 많았다. 이번 레드 카펫을 두고 '그린 카펫'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모두 붉은색 옷을 입지는 않았지만, 배우들은 각자 저마다의 방법으로 환경 보호를 실천했다.

호아킨 피닉스는 지난 골든 글로브 때부터 이번 아카데미까지 5번의 시상식에 같은 턱시도를 입고 등장했다.

호아킨 피닉스는 지난 골든 글로브 때부터 이번 아카데미까지 5번의 시상식에 같은 턱시도를 입고 등장했다.

영화 ‘조커’로 누구보다 바쁜 연말을 보냈던 배우 호아킨 피닉스는 연말과 연초 시상식 시즌 내내 같은 턱시도 한 벌로 버텼다. 지속 가능한 재료로 옷을 제작하는 스텔라 매카트니의 검은색 턱시도를 입고 골든글로브 시상식부터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 미국배우조합(SAG) 시상식, 영국영화TV예술아카데미(BAFTA) 시상식, 그리고 9일 아카데미에 이르기까지 무려 5번의 시상식에 참석했다. 스텔라 매카트니는 동물 가죽이나 모피, 깃털을 사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지난 2019 가을겨울 전체 컬렉션의 70% 이상을 유기농 면과 재활용 폴리에스터, 에코닐 등의 친환경 소재로 제작한 브랜드다. 호아킨 피닉스는 평소 환경 운동가, 동물 운동가를 자처하며 엄격한 채식주의자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이날 남우주연상을 받은 호아킨 피닉스는 “우리는 자연과 떨어져 있으면서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다”며 “우리가 사랑과 동정심을 가지고 있다면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수상 소감을 남겼다.

아카데미 시상식 후 열리는 베니티페어 주최 행사에서도 드레스 재활용 행렬은 계속됐다. 배우 엘리자베스 뱅크스는 2004년 같은 베니티페어 행사에서 입었던 베즐리 미슈카의 붉은색 드레스를 똑같이 입고 등장했다. 킴 카다시안 역시 과거 한 번 입었던 적이 있는 알렉산더 맥퀸의 2003년 드레스를 입고 행사에 참석했다.

엘리자베스 뱅크스는 무려 16년 전 드레스를 다시 꺼내 입었다.

엘리자베스 뱅크스는 무려 16년 전 드레스를 다시 꺼내 입었다.

자신이 입었던 드레스는 아니지만, 신제품이 아닌 빈티지 드레스를 입고 레드 카펫을 밟은 스타들도 많았다. 배우 마고 로비는 빈티지 샤넬 드레스를, 모델 릴리 앨드리지는 빈티지 랄프 로렌 드레스를, 아담 드라이버의 부인 조안터커는 빈티지 오스카 드 라 렌타 드레스를 입었다.

샤넬의 빈티지 드레스를 입고 레드 카펫에 선 배우 마고 로비. [사진 AP=연합뉴스]

샤넬의 빈티지 드레스를 입고 레드 카펫에 선 배우 마고 로비. [사진 AP=연합뉴스]

드레스의 일부만 재활용한 스타도 있다. 영화 ‘작은 아씨들’의 시얼사로넌은 지난 2일 열린 영국영화TV예술아카데미(BAFTA)에서 입었던 검은색 구찌 드레스를 만들고 남은 자투리를 활용해 이번 아카데미 드레스를 만들었다.

(왼쪽) BAFTA에서 입었던 구찌 드레스를 만들고 남은 자투리를 활용해 만든 (오른쪽) 아카데미 드레스 상의. [사진 연합뉴스]

(왼쪽) BAFTA에서 입었던 구찌 드레스를 만들고 남은 자투리를 활용해 만든 (오른쪽) 아카데미 드레스 상의. [사진 연합뉴스]

새 드레스지만 친환경 소재를 활용한 드레스로 멋을 낸 스타도 있다. 케이틀린 디버는 친환경 실크 새틴으로 만든 붉은 드레스를 선택했다. 레아 세이두 역시 유기농 실크와 친환경 텐셀로 만들어진 흰색 드레스를 입었다.

친환경 소재의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케이틀린 디버와 레아 세이두. [사진 연합뉴스, 루이비통]

친환경 소재의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케이틀린 디버와 레아 세이두. [사진 연합뉴스, 루이비통]

친환경 시상식 드레스 캠페인을 벌이는 '레드 카펫 그린 드레스'와 함께 친환경 소재의 드레스를 만든 루이비통. 텐셀(TENCEL)사의 럭스(Luxe) 라인에서 새로 선보이는 필라멘트 실로 만든 친환경 원단을 활용했다. [사진 루이비통]

친환경 시상식 드레스 캠페인을 벌이는 '레드 카펫 그린 드레스'와 함께 친환경 소재의 드레스를 만든 루이비통. 텐셀(TENCEL)사의 럭스(Luxe) 라인에서 새로 선보이는 필라멘트 실로 만든 친환경 원단을 활용했다. [사진 루이비통]

일반적인 턱시도가 아닌 바람막이 점퍼와 트랙 팬츠로 색다른 시상식 패션을 선보인 티모시 샬라메도 친환경 레드카펫 행렬에 발을 맞췄다. 바다에 버려진 플라스틱이나 어망, 섬유 폐기물을 수거해 재활용한 재생 나일론으로 만들어진 프라다의 의상이다.

티모시 샬라메의 친환경 레드 카펫 룩. 해양 플라스틱을 재생한 나일론으로 만들어진 의상을 입었다. [사진 AFP=연합뉴스]

티모시 샬라메의 친환경 레드 카펫 룩. 해양 플라스틱을 재생한 나일론으로 만들어진 의상을 입었다. [사진 AFP=연합뉴스]

단순히 아름다워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닌 세상이 됐다. 환경, 인종, 여성문제 등 유난히 정치적 메시지로 뜨거웠던 올 아카데미 시상식. 그중에서도 지속 가능성, 친환경의 구호는 단연 두드러졌다.

필환경 라이프

유지연기자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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