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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노트르담서도 생존…꿀벌 없인 인류 4년내 멸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건강한 꿀벌은 도시의 생태계를 복원한다. 녹지 비율 높은 선진 도시에서 도시 양봉에 주목하는 이유다. [사진 아뻬 서울 인스타그램]

건강한 꿀벌은 도시의 생태계를 복원한다. 녹지 비율 높은 선진 도시에서 도시 양봉에 주목하는 이유다. [사진 아뻬 서울 인스타그램]

 지난 4월 15일 발생했던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이틀 후, 신기한 소식 하나가 전해졌다. 목조 첨탑이 무너질 정도로 큰 화재에도 옥상에 살던 꿀벌들이 무사하다는 것. 노트르담 대성당 옥상에서 꿀벌을 키우는 도시 양봉가 니콜라스 지앙트는 화재 후 자신의 유튜브 계정에 드론으로 촬영한 옥상의 모습을 올렸다. 영상에는 옥상의 벌통 세 개가 온전히 남아있는 것이 보였다. CNN에 따르면 이 벌통은 2013년도에 설치된 것으로 매년 약 75kg의 꿀을 생산해왔다고 한다.

필(必)환경라이프② 도시 양봉가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옥상에서 발견된 벌통. 화재 이후에도 건재해 화제가 되었다. [사진 비오픽 인스타그램]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옥상에서 발견된 벌통. 화재 이후에도 건재해 화제가 되었다. [사진 비오픽 인스타그램]

실제 파리는 꿀벌의 도시로 유명하다. 오르세 미술관, 오페라 가르니에 극장, 그랑 팔레 박물관 등 유명 건축물마다 지붕 밑 한쪽에 벌통이 있다. 2000년대 초반 기후 변화와 도시화로 인해 사라지는 꿀벌에 대한 위기감이 도시 양봉 운동을 일으켰다.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도시 양봉이 유행처럼 번졌다.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도 도시 양봉이 이루어지고 있다. 토지 절반이 녹지로 구성된 빈에서만 현재 약 2000여 개의 양봉 업체가 있다. 지난 5월 19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도시 양봉을 하는 토마스 젤렌카를 만났다. 오스트리아의 미술가이자 건축가인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의 박물관 ‘쿤스트 하우스 빈’의 옥상에 그의 벌통이 있다. 10여 년 전 취미로 양봉을 시작한 이후, 3년 전부터 쿤스트 하우스의 벌통을 맡았다고 한다.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도시 양봉을 하고 있는 토마스 젤렌카. 쿤스트 하우스 박물관 옥상에서 벌을 키우고 있다. 유지연 기자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도시 양봉을 하고 있는 토마스 젤렌카. 쿤스트 하우스 박물관 옥상에서 벌을 키우고 있다. 유지연 기자

훈데르트바서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최고의 가치로 여긴 미술가이다. 실제 그가 기거하기도 했던 쿤스트 하우스 빈 박물관의 바닥은 울퉁불퉁 고르지 않고, 나무가 자라는 방향을 고려해 벽의 형태가 구부러져 있다. 옥상은 들판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풀이 우거져 있다. 양봉을 위해 가꾸지 않고 한참을 그대로 두었다고 한다. 한쪽에 놓인 130여개의 판으로 이루어진 큰 벌통 2개에는 900만 마리(각 판에 약 7만 마리)의 꿀벌이 드나들며 열심히 꿀을 만들고 있다.

왜 도시에서 꿀벌을 키울까. 단순히 꿀을 얻고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물론 아니다. 주로 건물 옥상을 이용하기에 대규모 양봉을 할 수 없고 기껏해야 한두 개 정도의 벌통을 두고 1년에 수십 킬로그램 정도의 벌을 수확하는 정도다. 토마스 젤렌카는 “도시 양봉은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상징처럼 보여주는 것”이라며 “생산량이 많거나 품질이 월등히 좋은 것은 아니지만, 도시에서 만들어진 특별한 꿀을 사람들은 좋아한다”고 말한다. 기꺼이 더 많은 돈을 내고 특별한 꿀을 구매하며 자연과 도시, 벌과 인간의 공존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볼 기회가 된다는 얘기다.

한 판에 약 7만마리의 꿀벌이 일하고 있다. 빈은 도시면서도 녹지 비율이 높고, 주변 도나우 강 등 자연 환경이 좋아 꿀벌의 먹이가 많은 편이다. 유지연 기자

한 판에 약 7만마리의 꿀벌이 일하고 있다. 빈은 도시면서도 녹지 비율이 높고, 주변 도나우 강 등 자연 환경이 좋아 꿀벌의 먹이가 많은 편이다. 유지연 기자

한국의 서울에서도 요즘 도시 양봉이 이슈다. 유럽이나 미국처럼 오랜 역사는 아니지만 몇 년 전부터 도시 양봉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한둘씩 늘고 있다. 서울의 도시 양봉 업체이자 사회적기업인 ‘어반비즈 서울’이 대표적이다. 2013년 서울 노들섬의 텃밭 근처에 벌통을 놓기 시작해, 지금은 서울 곳곳 스무 군데에서 꿀벌을 키우고 있다. 박진 대표는 “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벌을 키움으로써 도시 생태계가 자연스럽게 더 좋아지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10여 년 전부터 벌이 사라지는 ‘벌집 군집붕괴 현상’이 발생하면서 우려를 낳고 있다. 꿀을 채취하러 나간 일벌들이 돌아오지 않아 여왕벌과 애벌레들이 굶어 죽는 현상이다. 도시의 전자파, 농촌의 과도한 살충제 등 다양한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확실한 원인이 밝혀지진 않았다.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지구에서 꿀벌이 사라지면 4년 이내에 인간이 멸종한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구전 같은 이야기지만 설득력은 있다. 꿀벌이 없어 수분하지 못하면 식물의 열매가 맺히지 못하고 식량난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식물의 수분 중 약 30%를 벌이 담당하고 있다. 이 때문에 유럽에서는 꿀벌을 돼지·닭에 이어 세 번째로 경제적 가치를 높이 지닌 축산물로 보고 있다.

서울 동대문에 위치한 이비스 호텔 양봉장. 이곳 꿀벌들은 남산에서 주로 먹이를 채집한다. [사진 어반비즈 서울 인스타그램]

서울 동대문에 위치한 이비스 호텔 양봉장. 이곳 꿀벌들은 남산에서 주로 먹이를 채집한다. [사진 어반비즈 서울 인스타그램]

도시 양봉은 이런 꿀벌들이 멸종하지 않도록 개체 수를 유지하는 데도 일조를 하지만 그보다 꿀벌과 인간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 왜 꿀벌을 보호해야 하는지를 알리는 효과가 크다. 도시 생태계를 살리는 데도 효과적이다. 꿀벌이 많으면 식물 수분이 더 많이 일어나 녹지가 증가하고, 다시 꿀벌의 먹이가 되는 식물이 풍부해져 꿀벌이 많아지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녹지 비율이 높은 선진 도시일수록 도시 양봉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서 꿀벌을 주제로 한 카페&라이프스타일숍 ‘아뻬 서울’을 운영하는 이재훈 대표는 도시 양봉가면서 꿀벌과 꿀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는 데 힘쓰고 있다. 카페 맞은편 건물 옥상에 실제로 꿀벌을 키우고 있는 그는 이곳에서 난 꿀 외에도 다른 독립 양봉가들이 채밀한 꿀을 함께 소개한다.

 아뻬 서울의 이재훈 대표. 직접 도시 양봉을 하면서 꿀을 활용한 메뉴를 내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 이재훈]

아뻬 서울의 이재훈 대표. 직접 도시 양봉을 하면서 꿀을 활용한 메뉴를 내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 이재훈]

미국 뉴욕의 청년들이 옥상에서 꿀벌을 키우는 장난스러운 다큐멘터리를 보고 도시 양봉에 관심을 가졌다는 이 대표는 이후 어반비즈 서울의 초대 멤버가 되기도 한다. 2013년부터 서울에서 실제로 양봉을 해본 뒤 지난해 꿀벌 테마 카페인 ‘아뻬 서울’을 냈다. 환경주의자는 아니었지만, 벌을 키우면서 자연스레 생태와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 대표는 “서울은 의외로 꿀벌을 키우기 적당한 장소”라며 “서울 어느 곳에서든 반경 2km 내외에 산이 있어 꿀벌의 먹이가 풍부하다”고 말한다. 흔히 사람들은 도시에서 채취한 꿀이 오염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꿀벌이 먹이를 먹은 뒤 토해내는 과정에서 꿀이 만들어지는데, 꿀벌 자체가 살아있는 필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농촌에서 대량 살포되는 농약 등의 위험이 적어 중금속 및 성분 분석 결과가 훨씬 좋게 나온다고 한다.

물론 전문 양봉업자가 아닌, 소규모 독립 양봉가로서 도시에서 꿀벌을 키우는 일은 쉽지 않다. 꿀벌의 습성이나 생태를 꼼꼼히 공부해 마치 까다로운 식물을 돌보듯 자주 들여다보며 관리를 해야 한다. 무엇보다 장소의 제약이 많다.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에서 사람들의 벌에 대한 공포심을 극복해야 하는 등 어려움도 있다.

이재훈 대표는 도시 양봉을 알리는 것을 넘어 최근에는 꿀의 진짜 맛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싶어 ‘잇츠 허니!(It’s Honey!)’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이 대표는 “공장식으로 가공된 꿀이 아닌, 자연산 꿀(raw honey)은 모두 색도 다르고, 맛도 다른데, 사람들이 모두 같은 꿀맛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까웠다”고 말한다.

꿀은 '대지의 자화상'이라고 불릴 정도로, 각 지역의 특성을 정확히 반영한다. 색도, 맛도 모두 다른 꿀을 직접 맛볼 수 있는 '이츠 서울'의 허니 테이스팅 클래스. [사진 이재훈]

꿀은 '대지의 자화상'이라고 불릴 정도로, 각 지역의 특성을 정확히 반영한다. 색도, 맛도 모두 다른 꿀을 직접 맛볼 수 있는 '이츠 서울'의 허니 테이스팅 클래스. [사진 이재훈]

스페셜티 커피처럼, 산미가 있는 꿀도 있고, 더 씁쓸한 꿀도 있는데 모두 익숙한 단맛으로만 이해한다는 얘기다. 각기 다른 맛의 꿀은 음식과 페어링 할 때도 힘을 발휘한다. 이 대표는 현재 한 달에 한 번씩 꿀 테이스팅 클래스를 열어 꿀벌의 생태와 자연산 꿀의 맛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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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도시 양봉이 꿀벌과 인간의 공존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데 주된 목적이 있었다면 앞으로는 보다 다양한 이야기가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도시 양봉의 경험과 시간이 누적된 유럽의 경우 도심 지역의 미세먼지와 중금속을 체크하는 센서를 벌통에 부착해 실제 데이터를 쌓기도 한다. 어반비즈 서울의 박진 대표는 “주말농장처럼 위탁 양봉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이 쉽게 도시 양봉을 접하고 환경과 생태에 관심을 갖도록 독려하는 방향으로 전개할 것”이라고 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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