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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흐르듯, 노(NO) 플라스틱 경험.. 친환경 호텔이 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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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호텔 웨스트 헐리우드에 들어서면 로비에서 반기는 거대한 통나무 프론트 데스크. 오래된 가옥이나 건물에서 가져온 고재(reclaimed wood, 재생된 나무)'를 사용해 만들었다. 유지연 기자

원 호텔 웨스트 헐리우드에 들어서면 로비에서 반기는 거대한 통나무 프론트 데스크. 오래된 가옥이나 건물에서 가져온 고재(reclaimed wood, 재생된 나무)'를 사용해 만들었다. 유지연 기자

미국 캘리포니아 웨스트헐리우드에 위치한 원 호텔(1 hotel)의 카드키는 플라스틱이 아니라 나무로 되어 있다. 얇고 둥근 형태로 단순해 보이지만 안쪽에 디지털 칩이 삽입돼 있다. 룸 내부에 들어가도 플라스틱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나무로 된 옷장과 침대, 리넨 소파 등이 놓여있고 바닥에는 카펫 대신 재생 섬유로 만든 매트가 깔려있다.

必환경 라이프⑦ 환경 친화적 호텔

럭셔리한 친한경 경험을 선사하는 원 호텔의 객실. 플라스틱 카드키가 아닌 나무 소재의 카드 키가 인상적이다. [사진 원 호텔 홈페이지]

럭셔리한 친한경 경험을 선사하는 원 호텔의 객실. 플라스틱 카드키가 아닌 나무 소재의 카드 키가 인상적이다. [사진 원 호텔 홈페이지]

옷장 안에는 골판지로 만든 종이 옷걸이가 걸려있다. 아무래도 약한 종이 옷걸이 외에 외투를 걸기 위한 나무 옷걸이도 따로 구비돼 있다. 흔히 펜과 종이로 되어 있는 메모 용품 역시 나무다. 한쪽 면이 칠판으로 되어 있는 나무 메모판에 분필로 메시지를 적는다. 보통 문에 거는 방해 금지(do not disturb) 표시는 ‘지금(now)’, ‘지금 아님(not now)’ 문구가 앞뒤로 새겨진 돌멩이로 대신한다. 침대맡에 구비돼 있는 생수 역시 플라스틱 아닌 종이팩에 담겨있다.

원 호텔 객실에선 플라스틱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방해 금지 표시는 돌로, 쓰레기통은 나무다. 재활용 쓰레기를 넣을 수 있도록 구획이 나뉘어 있다. 유지연 기자

원 호텔 객실에선 플라스틱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방해 금지 표시는 돌로, 쓰레기통은 나무다. 재활용 쓰레기를 넣을 수 있도록 구획이 나뉘어 있다. 유지연 기자

샴푸·린스 등 편의용품은 소용량이 아닌 대용량으로 구비돼 있다. 5성급 이상의 호텔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광경이다. 덕분에 매번 쓰고 버리는 플라스틱 패키지를 줄일 수 있다. 면봉이나 화장 솜 등을 담은 패키지도 종이다. 또 방안 내부의 쓰레기통에는 일반 쓰레기를 담는 칸과 재활용이 가능한 쓰레기를 담는 칸이 따로 나뉘어 있다.

종이 팩에 들어있는 생수. 화장솜 등 작은 욕실 용품 조차도 종이 패키지에 들어있다. 유지연 기자

종이 팩에 들어있는 생수. 화장솜 등 작은 욕실 용품 조차도 종이 패키지에 들어있다. 유지연 기자

호텔 로비 곳곳에 놓인 커다란 나무 탁자와 식물들은 최근 트렌드로 떠오른 그린 인테리어의 정석을 보여준다. 매일 아침 수영장에서 열리는 요가 클래스는 투숙객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각 객실에는 요가 매트가 구비돼 있다. 로비에는 근처 농장에서 가져온 과일을 가져다 놓고 누구나 언제든지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텀블러에 생수를 떠갈 수 있도록 정수 시설을 마련해 놓는 배려도 돋보인다. 호텔에 묵는 누구나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친환경을 실천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설계된 호텔이다.

원 호텔 로비에는 인근 농장에서 가져온 지역 농산물이 구비되어 있다. 드나드는 사람 누구나 자유롭게 가져가 맛 볼 수 있다. 유지연 기자

원 호텔 로비에는 인근 농장에서 가져온 지역 농산물이 구비되어 있다. 드나드는 사람 누구나 자유롭게 가져가 맛 볼 수 있다. 유지연 기자

환경친화적이지만 불편하지 않다. 더구나 아름답고 럭셔리하다. 지난 2015년 미국 마이애미를 시작으로, 뉴욕과 LA 등지에 차례로 문을 연 원 호텔은 스타우드 캐피탈 그룹이 내놓은 호텔 체인이다. W 호텔을 만든 전설적인 호텔리어 배리 스턴리히(Barry Sternlicht)의 작품이기도 하다.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지속가능한 디자인 호텔을 추구하는 원 호텔은 오픈하자마자 마이애미와 뉴욕의 톱10 호텔로 손꼽히는 명소가 됐다.

원 호텔의 뉴욕 브루클린 지점 로비에 위치한 생수 급수대와 객실에 있는 재활용 박스. 입지 않는 옷을 넣어두면 지역사회에 기부한다. [사진 원 호텔 인스타그램]

원 호텔의 뉴욕 브루클린 지점 로비에 위치한 생수 급수대와 객실에 있는 재활용 박스. 입지 않는 옷을 넣어두면 지역사회에 기부한다. [사진 원 호텔 인스타그램]

친환경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럭셔리의 대명사인 호텔도 변화하고 있다. 투숙객들에게 최고의 경험을 선사하는 것을 지상 과제로 삼는 호텔들이 혹시라도 고객이 불편하게 느낄 수 있는 친환경적 요소를 과감하게 도입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원 호텔에서처럼, 친환경 경험이 세련된 라이프 스타일로 표현된다면 얘기가 다르다.

오래된 고재와 식물이 어우러진 원 호텔의 외부 전경. 유지연 기자

오래된 고재와 식물이 어우러진 원 호텔의 외부 전경. 유지연 기자

영국 런던 힐튼뱅크사이드 호텔의 스위트룸은 투숙객들에게 완전한 ‘비건(vegan·채식주의자)’ 경험을 선사한다. 일단 로비에 들어서면 스위트룸 투숙 고객은 파인애플 가죽으로 만든 소파에서 체크인이 이루어지도록 따로 안내된다. 카드키 역시 파인애플 가죽으로 되어 있다. 룸에 들어서면 대나무로 만든 바닥과 메밀과 기장으로 채워진 베개, 채식 제품으로 채워진 미니바, 파인애플 가죽으로 된 소파와 침대 등이 투숙객을 맞이한다. 욕실 편의용품은 재생된 플라스틱 용기에 들어있는 비건 브랜드다. 보통 스위트룸은 해당 호텔의 가장 호화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비건 스위트룸은 특별하다. 힐튼뱅크사이드의 스위트룸은 비건 친화적인 공간도 이정도로 럭셔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런던 뱅크사이드 힐튼 호텔의 스위트룸. 영국의 비건 단체 '비건 소사이어티'의 자문을 받아 만들었다. [사진 뱅크사이드 힐튼 호텔 홈페이지]

런던 뱅크사이드 힐튼 호텔의 스위트룸. 영국의 비건 단체 '비건 소사이어티'의 자문을 받아 만들었다. [사진 뱅크사이드 힐튼 호텔 홈페이지]

원 호텔이나 힐튼뱅크사이드 호텔의 특징은 친환경을 강조하는 호텔이면서도 매력적이며 럭셔리하고 또한 상업적이라는 점이다. 고객들에게 불편함을 떠넘기거나 죄책감을 자극하는 방식이 아니라, 친환경적 경험을 하나의 매력적인 라이프스타일로 판매한다.

원 호텔 객실 내에는 요가 매트가 모두 구비되어 있다. 유지연 기자

원 호텔 객실 내에는 요가 매트가 모두 구비되어 있다. 유지연 기자

한국에도 친환경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숙소가 있다. 지난 2018년 7월에 전북 고창에 문을 연 ‘상하농원 파머스 빌리지’다. 농어촌 테마공원을 지향하는 상하농원은 전체 건물에 고효율 조명기구인 LED를 사용하고 건축물의 배치를 남향 혹은 남동향으로 두어 에너지를 절약한다. 상하농원 안에 위치한 파머스 빌리지는 목재를 사용해 친환경적으로 디자인됐다. 벽지와 페인트, 석고 보드를 사용하지 않은 객실에 들어서면 은은한 나무 냄새가 난다. 욕실에는 대용량 편의용품이 있어 일회용 쓰레기를 줄인다.

전북 고창 매일유업 상하농원 ‘파머스 빌리지’는 객실 실내를 목재로 마감해 아늑하고 쾌적한 온실 분위기를 풍긴다.[사진 중앙포토]

전북 고창 매일유업 상하농원 ‘파머스 빌리지’는 객실 실내를 목재로 마감해 아늑하고 쾌적한 온실 분위기를 풍긴다.[사진 중앙포토]

최근에는 메리어트 인터내셔널, 신세계조선호텔 등 대형 호텔 체인도 친환경 실험에 뛰어들었다. 특히 일회용 편의용품이 타깃이 됐다.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은 올해 2월 전 세계 6500여개 호텔 객실 내 일회용 욕실용품 사용 중단을 선언했다. 북미 지역 1000개 호텔이 먼저 참여했고, 2020년까지 나머지 지역의 호텔들이 동참할 계획이다. 이보다 앞서 전 세계 호텔에서 일회용 빨대와 커피 스틱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정책을 발표, 지난 7월까지 퇴출 완료했다. 서울 웨스틴조선 호텔은 ‘스마트 컨시어지’ 서비스를 도입, 지도나 택시카드 안내문을 종이로 제공하지 않고 QR코드로 대체해 종이 사용량을 줄이고 있다.

친환경 행보에 가장 발빠르게 나서고 있는 메리어트 인터내셔널. 2019년까지 플라스틱 빨대를, 2020년까지 일회용 편의용품(어메니티)를 퇴출시킨다는 계획이다. [사진 메리어트 인터내셔널]

친환경 행보에 가장 발빠르게 나서고 있는 메리어트 인터내셔널. 2019년까지 플라스틱 빨대를, 2020년까지 일회용 편의용품(어메니티)를 퇴출시킨다는 계획이다. [사진 메리어트 인터내셔널]

잦은 침구 교체, 일회용품 사용은 물론 24시간 운영되는 호텔은 대표적인 에너지 소비 업장으로 통한다. 다행인 것은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에 몰두하는 호텔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친환경 서비스를 선택하려는 의식있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현대인들에게 호텔은 공간과 서비스를 통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하는 장소다. 친환경을 넘어, 필(必) 환경 시대라고 하는 요즘, 호텔이 친환경에 몰두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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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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