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고기 없는 고기 밥상 가능할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해외에서 시작된 대체육 바람이 한국에도 조금씩 불어오고 있다. 기존 공장식 축산의 비윤리성, 환경 오염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대체육, 과연 자리잡을 수 있을까. 대체육으로 만든 밥상. [사진 지구인컴퍼니]

해외에서 시작된 대체육 바람이 한국에도 조금씩 불어오고 있다. 기존 공장식 축산의 비윤리성, 환경 오염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대체육, 과연 자리잡을 수 있을까. 대체육으로 만든 밥상. [사진 지구인컴퍼니]

온통 고기로만 차려진 도시락이다. 불고기, 만두, 육전, 얇게 저며 구운 고기, 채소와 고기를 싼 토르티야 롤 등. 쌀밥과 김치를 제외하고는 거의 완벽한 고기 밥상이다. 하지만 사실은 고기가 하나도 없는 도시락이다. 바로 고기 아닌 고기, 즉 대체육으로 만든 도시락이다.

必환경라이프⑨ 대체육 시장 꿈틀

지난 10월 17일 지구인컴퍼니의 '언리미트' 미디어데이에 등장한 고기 도시락. 실제 고기는 없다. [사진 지구인컴퍼니]

지난 10월 17일 지구인컴퍼니의 '언리미트' 미디어데이에 등장한 고기 도시락. 실제 고기는 없다. [사진 지구인컴퍼니]

지난 10월 17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다이닝 포레스트에서 열린 한국형 곡물 고기 ‘언리미트(unlimeat)’ 미디어 데이 행사가 열렸다. 2017년 설립된 ‘지구인 컴퍼니’의 작품이다. 지구인 컴퍼니는 못생겼다는 이유로 상품 가치가 떨어져 재고 처리된 채소와 곡물을 활용해 잼이나 즙 등 다른 상품으로 가공해 판매하는 회사다. 그동안 13개 농가의 못생긴 농산물을 가공해 재고를 전부 처리하고 1억8000만 원대의 농가 수익 증대를 실현했다.

농산물 재고는 크게 과일, 채소, 곡물 세 가지 종류다. 과일과 채소는 수확 시기 원물을 저렴하게 팔기도 하고 창고에 쌓인 재고로 가공식품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곡물은 처리가 난감했다. 그렇다고 여기저기에서 많이 만드는 곡물 가공식품을 만들기는 싫었다. 지구인 컴퍼니 민금채 대표가 보다 혁신적이면서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제품, 바로 대체육에 몰입하게 된 이유다.

지구인 컴퍼니 민금채 대표.

지구인 컴퍼니 민금채 대표.

민 대표는 사실 채식주의자도 아니다. 오히려 육식주의자에 가깝다. 우연히 미국 출장 중 대체 육류 브랜드 ‘임파서블 푸드’와 ‘비욘드 미트’를 먹어보게 됐고, 대체 육류에 곡물이 주로 사용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민 대표는 “육식주의자지만 가끔은 가볍게 고기를 먹고 싶을 때가 있었다”며 “이런 측면에서 곡물로 만든 고기를 개발해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언리미트의 고기는 현미와 귀리, 견과류로 만들어진다. 임파서블 버거와 비욘드 미트 등 시중 대체육에 대두 단백이 많은 것과 차별화된다. 흔히 말하는 콩고기가 아니란 얘기다. 단백질이 많은 식물성 원료 9가지를 배합해 압출하는 방식으로 고기를 만든다. 압출 이후에는 고기의 식감을 살리는 2차 공정을 거친다.

곡물과 견과류를 기본으로 한 언리미트의 대체육은 일반고기보다 단백질 함량이 2배 이상 높고 칼로리는 낮다. 트랜스 지방이나 콜레스테롤도 없다. 비건식이 아니라 가벼운 식단, 즉 체중 조절용 식재료로도 유망한 이유다.

햄버거 패티처럼 다진 고기에 육즙을 형상화한 기존 대체육과 달리, 얇게 저민 고기로 요리가 가능하다는 것이 '언리미트'의 특징이다. [사진 지구인컴퍼니]

햄버거 패티처럼 다진 고기에 육즙을 형상화한 기존 대체육과 달리, 얇게 저민 고기로 요리가 가능하다는 것이 '언리미트'의 특징이다. [사진 지구인컴퍼니]

약 1년 6개월 정도의 개발 과정을 거쳤다. 고기의 식감과 질감, 수분 함량, 단백질 함량 등 먹는 즐거움과 영양학적 균형을 맞추는 데 중점을 뒀다. 민 대표는 “어떤 원료를 사용해야 고기와 유사하게 만들 수 있을까가 첫 번째, 양산을 위한 제조 공정 설계가 두 번째 고민이었다”고 했다. 언리미트의 특별한 점은 햄버거 패티 형태가 아닌 얇게 저며진 형태라는 점이다. 덕분에 불고기, 육전 등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기는 다양한 요리에 활용할 수 있다.

대체육, 선택 아닌 필수될까

이날 미디어 데이에서는 서울대 농경제사회학과 문정훈 교수가 연사로 참여해 대체 육류 트렌드에 관해 발표했다. 문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대체육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며 “그 배경에는 지속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매년 미국에서는 90억 마리 이상의 동물이 공장식 농장에서 자란다. 게다가 고기 수요는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2050년 세계 인구가 90억 명에 달하게 되며, 육류 수요가 지금보다 70% 이상 늘어난다는 보고가 있다. 어쩌면 대체육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임파서블 푸드의 활용 예. 임파서블 푸드는 대체 고기를 활용한 요리 레시피를 홈페이지에 올려두고 있다. [사진 임파서블 푸드 홈페이지]

임파서블 푸드의 활용 예. 임파서블 푸드는 대체 고기를 활용한 요리 레시피를 홈페이지에 올려두고 있다. [사진 임파서블 푸드 홈페이지]

기존 축산업은 환경 파괴, 온실가스 배출 등 다양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지금처럼 곡물로 소를 키워 고기를 만들지 않고, 중간 과정을 없애 곡물로 고기를 만드는 대체육류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다. 실제로 비욘드 미트, 임파서블 푸드 등 대체육 브랜드의 성장 가능성도 높게 평가받고 있다. 대표적인 대체육 브랜드로 알려진 비욘드 미트는 미국에서 KFC를 비롯해 약 2만 곳의 소매점에 식물성 고기를 공급한다. 지난 5월에는 미국 주식 시장에 상장해 하루 만에 주가 상승률 163%를 기록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햄버거에 이어 미트볼, 소시지까지 상품군을 확대한 비욘드 미트. [사진 비욘드 미트 홈페이지]

햄버거에 이어 미트볼, 소시지까지 상품군을 확대한 비욘드 미트. [사진 비욘드 미트 홈페이지]

해외에 비하면 한국 대체육 시장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문정훈 교수는 “유럽에서는 식물성 요거트 매대가 30% 정도까지 확장되었을 정도로 대체 단백질이 일상 소비 품목으로 자리 잡았다”며 “독일에서는 아예 정육 판매대가 없는 슈퍼마켓이 있을 정도”라고 했다.

한국에서도 조금씩 대체 육류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는 추세다. 동원 F&B는 비욘드 미트의 비욘드 버거를 한국 시장에 들여와 판매하고 있다. 롯데푸드도 올해 4월 대체육 브랜드 ‘엔네이처 제로미트’를 출시했다.

‘언리미트’ 실제로 먹어보니

불고기처럼 양념을 가미한 육류 요리에 사용할 수 있는 ‘곡물 언리미트’와 직화 구이가 가능한 ‘언리미트’, 갈비맛·김치맛 ‘언리미트 만두’ 2종이 출시됐다. 보통 햄버거 패티로 다져서 출시되는 기존 대체육 브랜드들과 달리, 요리가 가능한 대체육이라는 것이 일단 흥미롭다.

직화구이가 가능한 '언리미트.' [사진 지구인컴퍼니]

직화구이가 가능한 '언리미트.' [사진 지구인컴퍼니]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얇게 저며 직화 구이로 낸 ‘언리미트’다. 아무래도 양념 맛이나 만두처럼 다진 형태도 아니기에 본연의 대체육 맛 그대로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 씹었을 때의 질감은 고기보다는 아무래도 쫄깃함은 덜하다. 하지만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나고 혀에 닿는 감촉도 부들부들해 제법 고기 같은 느낌이 난다. 문제는 온도가 높았을 때는 모르고 먹으면 속을 수 있을 정도의 식감이지만, 조금만 식어도 곡물 특유의 향이 올라와 아쉬웠다.

대체육인지 모를 정도로 감쪽같다는 만두는 의외로 만족스럽지 못했다. 다져 놓은 상태라서 고기인지 대체육인지 모를 것 같았지만, 오히려 갈아 놓으니 곡물의 질감이나 향이 강하게 올라오는 느낌이다. 가장 맛있었던 메뉴는 역시 불고기다. 단 양념에 잰 대체육은 다른 채소와 소스의 조력을 받아 실제 고기인지, 대체육인지 판별이 불가할 정도다. 전체적으로 약 60~70% 정도 실제 고기맛에 가깝다는 인상이다. 양념을 더하는 조리법이 아니면, 고기를 즐기는 이들에게는 아직은 다소 부족한 맛이라는 얘기다.

현재 언리미트는 소고기보다 10% 정도 더 비싸다. 향후 생산 시스템을 안정화해 원가를 낮추겠다는 계획이지만, 가격도 확실히 걸림돌이다. 지금보다 많은 수요가 관건이다. 스타트업부터 대기업까지 대체육 브랜드를 내고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든다면 지금보다 시장 규모는 커질 수 있다. 민 대표는 “대체육이 비건 푸드를 넘어서 건강한 식재료를 원하는 이들을 위한 가벼운 대체 식품으로 자리 매김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