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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죽는다” 전염병 무서워 탈영…총 맞을 걱정보다 감염 공포

중앙일보

입력

신종 코로나 감염증(코로나 19)이 가져온 공포에 전 세계가 얼어붙었다. 이처럼 인류 역사에서 전쟁보다 더 무서웠던 공포는 전염병이다. 눈앞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전쟁터에서도 마찬가지다. 20세기 이전까지 전쟁 중 전염병에 희생된 병사는 전투 중 전사자와 부상에 따른 사망자보다 더 많았다. 전염병 사망과 같은 ‘비전투 손실’ 때문에 전쟁의 승패가 바뀌기도 했다.

이순신 장군, 전염병에 생사 기로 #“어차피 죽는다” 극심한 범죄 혼란 #매춘부 ‘슈퍼 전파자’ 전세계 확산 #나이팅게일, 야전병원 개혁 나서

나폴레옹이 1799년 전염병이 창궐한 야파(이스라엘 서부) 점령지 시찰 모습을 표현한 유화 '전염병 지역인 야파를 방문한 부오나파르'는 프랑스 출신의 화가 앙투안 장 그로(Antoine-Jean Gros) 작품으로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나폴레옹이 1799년 전염병이 창궐한 야파(이스라엘 서부) 점령지 시찰 모습을 표현한 유화 '전염병 지역인 야파를 방문한 부오나파르'는 프랑스 출신의 화가 앙투안 장 그로(Antoine-Jean Gros) 작품으로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전염병은 전쟁 때문에 더 쉽고, 더 빠르고, 더 넓게 번져갔다. 역병은 고려 시대 475년간 36회, 평균 12.7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전쟁 기간에만 26번 창궐했다. 전쟁 중 군대는 장기간 집단생활을 하는데 각종 부상병과 전사자 시체도 곁에 쌓여간다. 또한, 전쟁이 길어지면서 영양 부족과 피로가 누적돼 면역력도 극도로 떨어진다. 전염병 한가운데에서 전쟁하는 것과 다름없다.

전쟁터에선 여러 국가에서 유행하는 질병이 모여들어 교환된다. 660년 6월 신라와 당나라 군대 15만 명은 백제 사비성 앞으로 집결했다. 신라의 삼국통일 전쟁이다. 나당연합군 진영에서 콜레라ㆍ장티푸스 등 전염병이 창궐했다. 콜레라균에 감염되면 복통ㆍ설사 등 증상을 보이고 탈수가 빠르게 진행된다. 중증의 콜레라 감염자는 4~12시간 만에 쇼크에 빠지고 치료하지 않으면 수일 내에 감염자의 50%가 사망한다. 중증의 장티푸스는 가슴 안에 고름이 고이는 농흉과 장폐색 등 심각한 질병을 일으켜 20%가 사망한다.

이런 수인성 전염병은 오염된 물과 음식으로 확산한다. 깨끗한 물을 끓여 먹어야 예방할 수 있다. 사비성 앞에 백마강이 흐른다. 사람도 말도 물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다. 무더운 여름철에 대규모 군대가 모여들면서 강물은 오염됐다. 15만 대군은 전염병에 노출됐다.

의료기술이 발전하지 못했던 시대에는 역병에 대한 공포가 매우 컸다. 사료에는 다양한 역병의 기록이 남아있지만 정확한 질병을 추정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의문의 역병을 묘사한 사극 '킹덤'의 장면[사진=넷플릭스]

의료기술이 발전하지 못했던 시대에는 역병에 대한 공포가 매우 컸다. 사료에는 다양한 역병의 기록이 남아있지만 정확한 질병을 추정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의문의 역병을 묘사한 사극 '킹덤'의 장면[사진=넷플릭스]

전염병은 그해 9월 철군하던 신라군이 신라 내부에도 옮겨왔다. 특히 ‘마마 귀신’으로 불리는 두창 바이러스 감염 피해가 극심했다. 발진ㆍ고열ㆍ구토 등의 증상이 나타난 뒤 사망에 이르는 중증 감염병이다. 호흡기와 피부 분비물로 전염되며 공기로도 전파될 수 있다. 두창은 당나라 군대가 신라군에 전파했다. 한반도 출병을 앞둔 당나라에선 652년부터 이미 질병 유행이 시작된 기록이 있다.

‘삼국통일’ 전쟁, ‘마마 귀신’ 전염병 확산

임진왜란에서도 전염병 피해가 나왔고, 이순신 장군도 고초를 겪었다. 1593년 3월께 쓰인 이순신 어록에는 “남해에 전염병이 번졌을 때 공도 병에 걸려 12일 동안이나 고통을 당했다”는 기록이 있다. 1594년 4월 기록은 당시 3도 수군 병력은 총 2만 1500명인데 이 중 5663명이 전염병에 걸렸다고 전한다. 그 당시 왜군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수군은 150명인데 전염병은 12배나 많은 1904명의 목숨을 가져갔다. 하루에만 200명이 죽기도 했다.

임진왜란 당시 수군은 비좁고 불결한 거북선과 판옥선 내부에서 생활했다. 당시 모습을 재연한 드라마 장면. [영상캡처=KBS 드라마 '징비록']

임진왜란 당시 수군은 비좁고 불결한 거북선과 판옥선 내부에서 생활했다. 당시 모습을 재연한 드라마 장면. [영상캡처=KBS 드라마 '징비록']

수인성 전염병인 이질이 번졌고 말라리아(학질) 때문에 피해를 키웠다. 말라리아에 걸린 모기에 물려 감염되면 오한ㆍ발열ㆍ구토ㆍ설사 증상을 보이며 신장 손상과 혈소판 감소 등 다양한 합병증으로 사망하게 된다. 수군의 생활 공간인 전선(전투함선)과 거북선 내부가 비좁고 밀폐된 불결한 환경이라 감염률이 높았다.

특히 1594년부터 대기근이 시작돼 전염병 피해는 극대화됐다. 충무공이 삼도수군통제사 재직 시설 작성한 장계의 초고인 임진장초에는 “군량이 부족하여 계속 굶게 되고 굶던 끝에 병이 나면 반드시 죽게 된다”는 기록이 있다. 전염병은 왜군 진영에도 창궐했다. “1월 말 일쯤부터는 적의 소굴에 전염병이 크게 번져 죽는 자가 연달았습니다”라는 기록도 발견된다.

청일전쟁 당시 공개리에 청군을 참수하는 일본군의 잔혹한 모습.[사진 중앙포토]

청일전쟁 당시 공개리에 청군을 참수하는 일본군의 잔혹한 모습.[사진 중앙포토]

일본은 한반도에서 벌인 청일전쟁에서도 전염병에 큰 피해를 봤다. 1894년 9월 평양 교전에서 일본군에 패배한 청나라 기병대 시체가 대동강을 떠다녔다. 유일한 수원지가 오염돼 역병이 창궐했다. 또한, 이가 물어 세균을 옮기는 발진티푸스에 전염됐다. 전신 통증과 의식장애ㆍ환각 등 중추신경계 합병증으로 번지는데 치료받지 못하면 감염자의 40%가 사망한다. 일본군 전체 사망자 1만 3000여명 중 전사자는 1500여명에 그쳤다. 대다수가 전염병과 질병에 사망했다.

임진왜란·청일전쟁, 전염병에 무너진 일본군 

전염병 공포는 서양에서도 유례가 오래됐다. 기원전 5세기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충돌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도 발견된다. 아테네 장군 출신 역사학자인 투키디데스의 기록으로 전해진다. 당시 질병 사망자는 두통ㆍ안구 충혈ㆍ구토ㆍ설사 등 증상을 보인 뒤 7~8일 만에 사망했다고 전한다. 현대 의학은 당시 창궐했던 전염병으로 두창ㆍ장티푸스ㆍ페스트를 추정하고 있다.

아테네의 전염병 창궐을 표현한 유화 '고대도시의 전염병'은 벨기에 출신 화가 Michiel Sweerts가 그렸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아테네의 전염병 창궐을 표현한 유화 '고대도시의 전염병'은 벨기에 출신 화가 Michiel Sweerts가 그렸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흑사병으로도 불리는 페스트는 설치류와 벼룩이 사람에게 균을 옮겨 감염된다. 신종 코로나처럼 감염자의 재채기나 기침 등 비말감염으로도 쉽게 전염된다. 고열 증상과 의식은 혼탁해지며 전신성 패혈증을 일으켜 사망하는데 사망률이 꽤 높다. 아테네 병력 중 25%는 전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전염병에 희생됐다.

아테네 성에 거주하던 일반 시민도 희생됐다. 이들 중 3분의 1도 전염병에 사망하면서 전쟁보다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졌다. 병에 걸릴까 봐 장례식도 치르지 않았고, 전염병 사체는 그대로 방치했다. “어차피 죽는다”는 공포는 처벌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지게 해 범죄가 극심했다.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질병이라며 오직 신의 힘을 빌려야 치유 받을 수 있다는 믿음도 퍼졌다.

‘7일 만에 사망’ 기원전 5세기 전염병 기록

11세기 말부터 200년간 이어진 십자군 전쟁도 전염병을 피할 순 없었다. 십자군은 1908년 6월 안타키아를 점령했으나 겨울철을 보내며 면역력이 크게 떨어졌다. 또한, 이듬해 여름 장티푸스와 말라리아가 창궐해 매일 40명이 사망했다. 로마교황청 주교 아드히머와 프랑스 영주도 사망할 정도로 신분과 계급을 가리지 않았다. 당시 십자군은 하녀와 매춘부를 전쟁터에 동반했는데 이들 여성의 사망률이 높았다.

전염병에 감염돼 참화를 겪는 십자군을 표현한 판화 '나일강의 십자군'은 프랑스 출신 귀스타브 도레(Gustave Dore)의 작품이다.

전염병에 감염돼 참화를 겪는 십자군을 표현한 판화 '나일강의 십자군'은 프랑스 출신 귀스타브 도레(Gustave Dore)의 작품이다.

십자군은 이듬해 1월 도시를 불태우고 예루살렘으로 출발한 뒤에 전염병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2차 십자군 원정에서도 장티푸스ㆍ이질로 추정되는 전염병이 번졌다. 프랑스 병사는 맞서 싸우는 투르크 군대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전염병 공포 때문에 전장에서 도망쳤다.

1494년 프랑스는 신성로마제국과 전쟁을 했는데 매독과의 전쟁도 동시에 치렀다. 프랑스는 십자군처럼 전쟁터에 매춘부도 동행했다. 특히 부대끼리 매춘부를 바꾸면서 매독은 더욱 확산했다. 이듬해 프랑스 본토에도 전파돼 파리에선 매독 감염자에게 24시간 안에 파리를 떠나라는 명령도 내렸다. 매독은 헝가리ㆍ러시아 등 전 유럽으로 퍼졌다. 바다 건너편 스코틀랜드에선 매춘부 영업을 중지했고, 섬에서 감염자를 추방하기도 했다. 본격적인 확산이 시작된 지 3년만인 1498년에는 지구 반대편 인도에서도 발견됐다.

부대끼리 바꾼 매춘부 ‘슈퍼 전파자’

전염병은 나폴레옹의 꿈도 좌절시켰다. 이집트 원정에 나선 프랑스 군대에선 1798년 6월 초부터 페스트 감염이 시작됐다. 이듬해 1월에는 매일 17명이 사망했다. 적군이 아닌 병마와 싸우는 상황이 됐다. 나폴레옹은 군대에 퍼진 공포를 줄이기 위해 여론도 압박했다. 병명으로 ‘페스트’가 아닌 ‘열나는 임파선종’을 쓰라고 지침을 내렸다. 1801년 철군 당시에 생존자는 절반 수준까지 줄었다.

1812년 러시아 원정에 나섰던 나폴레옹의 50만 대군이 몰락한 배경에도 전염병이 있다. 독일에 집결해 출발한 군대는 폴란드에 도착할 때 이미 발진티푸스로 6만 명이나 사망했다. 전쟁터에 병원을 만들었지만 더러웠고, 시체를 방치하면서 오히려 전염병의 온상이 됐다. 살아서 집으로 돌아간 병사는 3만 명에 그쳤다.

크림전쟁 당시 방치된 부상병과 열악환 환경의 병원을 그린 삽화. 1855년 10월 6일 런던에서 발행된 신문 'Illustrated London News'에 실린 러시아 세바스토폴 병원의 모습이다.

크림전쟁 당시 방치된 부상병과 열악환 환경의 병원을 그린 삽화. 1855년 10월 6일 런던에서 발행된 신문 'Illustrated London News'에 실린 러시아 세바스토폴 병원의 모습이다.

이런 야전병원의 문제를 해결하며 군 의료 개혁과 현대 간호학의 기초를 수립한 간호사가 바로 나이팅게일이다. 1854년 크림전쟁에 참전한 영국군 전염병 사망자는 수 개월 만에 1만 5000여명을 넘어섰다. 같은 기간 전사자 5000여명보다 세 배나 많은 규모에 놀란 영국은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에 나이팅게일을 비롯한 간호사가 부상병 치료에 합류했다.

당시 전쟁터에선 부상자를 방치했다. 간단한 치료만 받아도 다시 전투에 복귀할 수 있는 장병도 불결한 병원에서 전염병을 얻고 사망하기도 했다. 나이팅게일은 이런 의료 환경부터 개선했다. 나이팅게일이 전염병 예방을 위해 야전병원 위생 개선에 나서자 사망률은 42%에서 2%로 뚝 떨어졌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불결한 환경에서 전염병은 창궐했다. 국가의 경계를 넘어 전파됐다. 전염병 공포는 사회적 혼란을 극대화했다. 독재자는 여론을 통제했다. 전쟁과 전염병을 겪었던 인류는 여전히 같은 패착을 복습하고 있다.

박용한 기자 park.yonghan@joongang.co.kr

※ 기사는 아래 논문과 저서를 참고했습니다. ▶김순자 “고려시대의 전쟁, 전염병과 인구”▶나승학 “임진왜란기 조선 수군 진영 전염병의 발생 실태와 영향”▶이현숙 “7세기 신라 통일전쟁과 전염병”▶예병일『전쟁의 판도를 바꾼 전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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