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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명 환자 쏟아진 日크루즈···WHO "승객 하선시켜 돌봐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1일 낮 대형 여객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가 접안해 있는 요코하마 다이코쿠(大黑)부두에 일본 국내외 취재진이 몰려 있다.[연합뉴스]

11일 낮 대형 여객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가 접안해 있는 요코하마 다이코쿠(大黑)부두에 일본 국내외 취재진이 몰려 있다.[연합뉴스]

 ‘바다 위의 감옥’이 된 크루즈선. 일본 요코하마항에 열흘째 봉쇄된 채 정박중인 일본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를 일컫는 말이다. 3700여명의 승객과 승무원이 탄 이 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가 매일 쏟아져나오고 있어서다. 13일에만 44명이 신종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 배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 환자만 모두 218명이다. 중국을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확진자가 발생했다. 그동안 확진자만 하선을 허락했던 일본 정부가 80세 이상 고령자와 지병이 있는 승객부터 우선적으로 배에서 내리게 하겠다고 했지만 뒤늦은 조치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추가 감염을 막기 위해서는 승객을 배에서 내리게 한 뒤 안전 시설에 격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자 크루즈 사태와 관련해 소극적인 입장을 보였던 세계보건기구(WHO)도 목소리를 냈다.

 테드로스 애드해넘 거브레예수스 WHO사무총장은 12일 밤(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본부에서 열린 언론 브리핑에서 “11일 중국 이외 지역에서 나온 신규 감염 사례 48건 중 40건은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서 발생했다”며 “우리는 크루즈에 탄 모든 승객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일본 정부와 국제해사기구(IMO), 선사와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있다”고 밝혔다.

 WHO는 캄보디아가 13일 승객과 승무원 2200여 명을 태운 크루즈선 ‘웨스테르담’호를 입항시킨데 대해 감사의 말을 전하며 일본 정부를 에둘러 비판했다. 지난 1일 기항지인 홍콩에서 출항한 이 배는 신종 코로나 확산 우려로 5개국에서 잇따라 입항 거부를 당한 뒤 2주째 바다를 표류했다.

Tedros Adhanom Ghebreyesus, Director General of the World Health Organization (WHO), gives a statement to the media about the response to the COVID-19 virus outbreak, at the World Health Organization (WHO) headquarters in Geneva, Switzerland, Wednesday, Feb. 12, 2020. The disease caused by the novel coronavirus (SARS-CoV-2) has been officially named COVID-19 by the World Health Organization (WHO). (Salvatore Di Nolfi/Keystone via AP)〈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Tedros Adhanom Ghebreyesus, Director General of the World Health Organization (WHO), gives a statement to the media about the response to the COVID-19 virus outbreak, at the World Health Organization (WHO) headquarters in Geneva, Switzerland, Wednesday, Feb. 12, 2020. The disease caused by the novel coronavirus (SARS-CoV-2) has been officially named COVID-19 by the World Health Organization (WHO). (Salvatore Di Nolfi/Keystone via AP)〈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거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은 “이것은 국제 연대의 모범사례다. 지금은 낙인이 아닌 연대가 필요한 때다”고 강조했다. 다이아몬드 크루즈호를 해상에 방치한 채 일본 영토 외의 문제로 간주하는 일본 정부를 간접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국제보건규약 준수에 대한 목소리도 높였다. 거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은 “WHO와 IMO는 ‘국제 보건 규정(IHR)’에 따른 선박의 자유로운 입항 허가(free pratique) 원칙과 모든 여행객을 위한 적절한 돌봄 원칙을 강조하는 공동 선언문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어 “WHO는 선박에서 이와 같은 공중 보건 사건을 처리하는 방법을 담은 지침을 내놨고, 국가와 회사는 그 지침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WHO 회원국이 비준한 IHR은 당사국이 여행자의 인권, 기본적 자유와 관련해 불편을 최소화하고 적절한 돌봄과 치료를 받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기준에서 보면 일본 정부는 IHR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는 공항ㆍ항만에서 감염자를 걸러내 영토 내 지역사회 감염을 원천 배제한다는 ‘미즈기와(水際ㆍ물가)’ 방역 대책을 고수해왔다. 이 때문에 3700여명의 승객과 승무원을 배에 가둔 채 발열 등 의심증상이 있는 환자만 검사하고, 확진 판정 받은 사람만 뭍으로 빼내왔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이런 방침은 결과적으로 수백명의 감염자를 양산한 실패한 대책이 됐다.

지난 5일 방호복을 입은 일본 의료진이 크루즈에서 신종코로나에 감염된 환자를 배 밖으로 옮기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5일 방호복을 입은 일본 의료진이 크루즈에서 신종코로나에 감염된 환자를 배 밖으로 옮기고 있다. [AP=연합뉴스]

 국내 전문가들은 “(일본 정부의) 하선 조치가 너무 늦었다”라고 분석했다.

 엄중식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진작 배에서 승객들을 내리게 하고 한국이 우한 교민을 연수원 등에 격리했듯이 1명씩 격리하고 밀착 감시를 했어야 한다. 그 뒤 유증상자가 나오면 검사하고, 양성이면 즉시 치료에 들어가는 식으로 관리가 됐어야 하는데 일본 정부가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엄 교수는 “배 안에 격리를 할 거라면 소독 조치와 접촉자 관리, 1인 격리가 돼야 했다. 그런데 검역관 마저 감염된 것을 보면 이런 방역 조치가 제대로 안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천병철 고려대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크루즈선이 아무리 크다 해도 좁은 공간 내에 수천명이 타고 있어서 접촉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승무원이 1000명이 넘는데 이들의 경우 특히 서로 밀접 접촉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천 교수는 “원래 크루즈는 감염병에 취약하다. 노로바이러스(장염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나 독감이 한번 돌면 크루즈 여행이 끝날 때까지 유행이 끝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증상이 있는 사람에게만 검사를 하는 건 이해를 하기 어렵다. 또 확진자 뿐 아니라 접촉자도 모두 내리게 해서 격리하고 식당이나 객실 등을 모두 소독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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