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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가짜 페미니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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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한애란
한애란 기자 중앙일보 앤츠랩 팀장
한애란 금융팀장

한애란 금융팀장

처음엔 그렇게 큰 이슈로 여기지 않았다. 여자대학교에 처음으로 트렌스젠더가 입학하게 됐다는 소식 말이다. 이미 군대에서 현역 부사관이 성전환 수술을 하고 여군으로 계속 복무하게 해달라고 하는 시대다. 트렌스젠더 합격생은 법적으로 성별 정정까지 마친 여성이다. 그가 여대에 들어가기로 한 결정도 시대 변화를 반영한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여겼다.

얼마 전 그 학생이 입학을 포기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고 이유를 밝혔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자칭 ‘래디컬 페미니즘’ 동아리 연합이 냈다는 성명을 찾아 읽었다. 그들은 해당 입학생을 ‘본인을 여자라고 생각하는 남자’라 칭하며 ‘여자들의 공간과 기회를 빼앗았다’고 공격했다. 여대 단톡방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은 더 노골적이고 험악했다. “우리한테 당신은 외부인 한국남자일 뿐이다. 무섭고 두려운 존재다”, “‘트젠 여러분, 저를 보고 용기 내서 여기 들어오세요’라고 선전하는 것”, “여자 파이를 뺏어 먹는다”, “정신병원이나 가라”.

XX 염색체가 아니면 진짜 여성이 아니다? 반대 세력의 핵심 논리다. ‘자고로 여성이란 ○○○ 해야 한다’는 식의 문법은 오랫동안 여성을 억압해온 가부장제의 틀이었다. 페미니즘이란 여성을 옥죄는 그 틀을 깨기 위한 부단한 싸움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자고로 여성이란’의 틀을 그대로 복제해 쓰고 있다.

XX 염색체가 XY 염색체와 가장 구분되는 점은 아마도 생식기능일 것이다. 만약 여성이란 존재를 규정하는 핵심을 XX 염색체에 둔다면, 그것이 ‘임신·출산을 해야 여성’이라는 식의 주장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게 페미니즘이라고?

염색체로 진짜 여성과 가짜 여성을 가르는 이들의 행태는 차별주의일 뿐이다. 진짜 페미니즘은 ‘여성도 인간’이라는 사상이다. 모든 인간의 평등을 추구하는 휴머니즘이다. 염색체로 진짜 여성과 가짜 여성을 나누고 차별을 조장하는 건 명백한 ‘가짜 페미니즘’이다.

‘일베’로 대변되는 집단의 여성 혐오에 진절머리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XY 염색체에 대한 혐오도 지긋지긋하다. 그것이 트랜스젠더 같은 소수자를 겨냥한다면 더욱 그렇다. 누군가를 혐오하기 위한 자유란 없다.

한애란 금융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