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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CEO 중징계 “근거 모호” VS “일부 위원은 더 센 제재 주장”

중앙일보

입력

사실상 충돌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우리금융그룹과 금융감독원 이야기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금감원의 중징계(문책경고) 결정에 우리금융지주 이사회가 손 회장 연임 강행으로 맞섰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서는 다음달 초 금융위원회가 제재를 최종 통보하면 손 회장이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에 나설 것을 기정사실화한다. 이에 따라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관련해 최고경영자(CEO)를 중징계한 것이 근거가 있냐 없냐, 적절하냐 아니냐 논란이 일고 있다. 우리금융과 금감원, 양측의 입장을 비교해봤다.

①내부통제 기준 있는데 왜 법 위반?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겸 우리은행장. [연합뉴스]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겸 우리은행장. [연합뉴스]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우리은행장 겸임)과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전 하나은행장)이 금감원으로부터 중징계인 문책경고를 받은 사유는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 위반이다. 근거 법령은 금융회사지배구조법 24조(금융회사는 임직원이 준수해야 할 기준과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이다.

은행권 CEO를 이런 사유로 중징계한 건 처음이다. 비은행권에서는 2018년 삼성증권 배당사고 당시 CEO가 같은 법 위반 건으로 직무정지의 중징계를 받은 적 있다.

금감원 공시에 따르면, 당시 삼성증권은 우리사주 배당 시스템에 관련 내부통제 기준이 마련돼있지 않은 상태였다. 우리금융 측은 상품 선정·판매 절차와 관련한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했으니 법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기준이 아예 없던 삼성증권 사례와는 다르다는 설명이다.

금융당국은 제재 근거가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근거란 지배구조법 시행령 19조(내부통제가 실효성 있게 이뤄질 수 있는 사항이 포함돼야 한다)이다. 우리은행의 내부통제 기준이 부실해서 실효성이 없었기 때문에 제재 대상이란 뜻이다.

금감원이 지적한 우리은행의 부실 내규 사례는 여럿이다. 우선 ‘상품선정위원회’ 위원 중 1명은 상품 출시 거부권을 가진 소비자보호부 직원으로 두게 해놓고, A직원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위원을 B직원으로 교체해 찬성표로 바꿔치기 했다. 다른 은행은 위원을 ‘소비자보호부장’ 등으로 정해서 교체할 수 없게 해놨다. 이뿐 아니라 실무기구인 ‘공정가입평가협의회’를 열지 않고 서류만 개최한 것처럼 꾸몄는데도 이를 걸러낼 장치가 없었다. 내부통제 기준이 있지만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던 셈이다.

이에 대해 우리금융 관계자는 “기준을 분명히 마련해뒀고 ‘실효성’이란 잣대가 지나치게 추상적이어서 쟁점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②CEO 제재 위한 법 개정안은 국회 계류 중?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뉴시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뉴시스]

2018년 9월 금융위원회는 임직원이 내부통제기준을 지키지 않으면 CEO를 제재하는 내용의 지배구조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이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우리금융 측은 이를 두고 CEO에 책임을 묻는 법안이 아직 계류 중인데, 내부통제 미비로 제재한 것이 과도한 조치라는 논리를 편다.

하지만 계류 중인 개정안과 이번 CEO 제재는 완전히 별개라는 것이 금감원 측 설명이다. 내부통제기준 ‘미준수’로 CEO를 징계하는 건 개정안 통과 뒤에나 가능해서, 이번엔 이를 빼고 법적 근거가 있는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 건만 다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만약 개정안이 통과됐다면 내부통제 미준수 관리책임까지 물어 더 세게 제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근거로 우리·하나은행의 DLF 불완전판매 비중이 법령 위반 건에 한정하면 33%(두 은행 평균)이지만, 내부통제 기준을 지키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63%로 껑충 뛴다는 점을 들었다. 만약 개정안이 일찌감치 통과됐다면 두 은행이 판매한 DLF 중 3분의 2가 법적으로 불완전 판매에 해당했을 거란 뜻이다.

③금융위 패싱 위해 ‘문책경고’?

지난달 30일 제재심의위원회가 열린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제재심의위원회가 열린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연합뉴스]

취재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열린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에서는 일부 심의위원이 “CEO 제재를 상향조정 할 수는 없느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책임이 무겁다고 본 셈이다.

금융회사 임원에 대한 중징계는 해임요구-직무정지-문책경고, 세 단계다. 은행법에 따르면 문책경고는 금감원장 전결사항이지만 직무정지 이상은 금융위 의결을 거쳐야 한다. 금감원이 이를 이용해 두 CEO에 문책경고를 내린 게 아니냐는 일부의 시각도 있다. 이른바 ‘금융위 패싱’설이다.

하지만 감독자인 CEO 제재를 상향하려면 행위자인 부행장 제재까지 직무정지에서 해임요구로 높여야 한다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했다. 금융위 검사제재 규정에 따르면 가장 중한 징계인 해임요구를 하려면 해당 행위가 ‘고의’였어야 하는데 그 입증이 쉽지 않다. 결국 제재심은 부행장 직무정지, CEO 문책경고라는 금감원 안을 유지하되 기관 제재인 일부 영업정지 기간은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렸다.

④지배구조 흔들기 논란?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중앙포토]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중앙포토]

CEO 중징계가 근거가 있느냐 없느냐, 적절한 수준인가 아닌가와 별개로 인적 제재로 인해 금융회사 지배구조가 흔들리는 것이 자율경영을 해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지주가 출범한 지 1년 밖에 안 된 상황에서 지배구조가 흔들리면서 벌써부터 외부 출신이 CEO로 올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며 우려했다.

금융당국도 이런 여론을 의식해 손 회장의 거취에 대한 언급은 피하고 있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최근 한 언론과 만나 손 회장 연임과 관련해 “감독원의 할 일은 여기까지”라는 원칙론을 폈다. 또 다른 금융당국 관계자도 “그쪽도 재판 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에 금융당국이 과거처럼 메시지를 보내긴 부담스럽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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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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