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초라도 공장 멈추면 수천억 손해” ‘반디불’ 꺼질라…삼성·SK·LG 초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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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신종 코로나)의 확산에 따른 공급망 관리(SCM) 차질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가전 등 정보통신기술(ICT)업계로 퍼지고 있다. 특히 수출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까지 타격이 미칠 경우 한국 경제 전체가 휘청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중국, 공장가동 중단 권고 이어져 #하루 멈추면 재가동에 2~3달 소요 #디스플레이 멈추면 휴대폰도 타격

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중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의 공장 ‘셧다운(shut down)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인다. 신종 코로나 확산 저지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중국 중앙·지방 정부의 공장 가동 중단 권고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 1초라도 공장을 멈추면 막대한 피해가 불가피한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는 이미 비상경영 체제에 들어갔다. 삼성전자의 시안(낸드플래시 생산)·쑤저우(반도체 후공정) 공장, SK하이닉스의 우시(D램 생산)·충칭(낸드플래시 후공정) 공장은 현재 가동 중이다. 하지만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최소 인력을 투입해 정상 가동 중이지만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몰라 컨티전시 플랜(비상경영)을 가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공장은 웨이퍼가 투입돼 완성품이 나올 때까지 보통 2~3개월이 걸린다. 이 과정에서 600여 개의 공정을 거치는데, 단 하나의 소재나 장비에 차질이 생기면 생산라인이 멈춘다. 라인이 멈추면 원재료는 모두 폐기하고 설비를 재점검해야 한다. 하루 이상 라인이 멈췄다 재가동하려면 두 달 이상이 걸린다. 이 경우 수백억~수천억원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2018년 대만 파운드리 업체인 TSMC의 생산 장비가 악성 컴퓨터 바이러스인 랜섬웨어에 감염돼 라인이 멈춰 약 3000억원의 피해를 본 게 대표적인 예다. 국내 업체들은 중국 춘절 연휴 등을 고려해 재고를 확보해 놨지만, 버틸 수 있는 기간은 길어야 두 달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수요 감소는 또 다른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중국은 세계 반도체 수요의 53%가량을 차지한다. 반도체가 들어가는 PC·스마트폰·서버 등을 만드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자체개발주문생산(ODM) 공장이 중국에 몰려 있다. 이들 공장이 셧다운 하면 반도체 수요도 급감한다. 이렇게 되면 연초 겨우 반등에 성공한 D램 등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다시 하락해 국내 반도체업계 실적에 직격탄을 날리게 된다.

디스플레이에는 이미 신종 코로나의 여파가 덮쳤다. LG디스플레이는 액정표시장치(LCD) 모듈을 만드는 중국 옌타이·난징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광저우 LCD 패널 공장 중단도 검토 중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쑤저우 공장을 가동 중이지만, 가동률을 낮췄고 중단을 고려하고 있다. 디스플레이업계 역시 생산 차질뿐 아니라 공급망 리스크가 걱정이다. 중국 정부가 자국 내 공장 가동 중단을 권고하면서 현지의 소재·부품 조달이 차단될 위기에 있기 때문이다. LG·삼성뿐 아니라 중국 디스플레이 공장이 멈추면 TV·스마트폰·노트북 등이 연쇄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정원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업체의 중국 내 라인 가동이 완전히 중단되지 않았지만 향후 중국 정부의 방침에 따라 변수가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가전업계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는 쑤저우 가전 공장을 멈췄고, LG전자는 난징 등 중국 내 여섯 곳의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춘절을 대비해 충분히 재고를 확보해 당장은 큰 문제가 없지만 사태가 장기화하면 공급 차질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노트북의 경우 중국 내 삼성전자 쑤저우 공장과 LG전자 난징 공장이 가동을 멈추면서 국내로 들여오는 노트북 공급이 예년보다 2주 정도 늦어지고 있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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