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동물원도 중국인 입장 제한…“야생동물 접촉·거래 막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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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야생동물카페에 박쥐가 전시돼 있다. 천권필 기자

서울의 한 야생동물카페에 박쥐가 전시돼 있다. 천권필 기자

3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의 한 실내 체험동물원.

매표소 앞은 손님들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한산했다. 마스크를 쓴 직원은 간간이 오는 손님들에게 표를 끊어줬다. 동물원 입구에서는 직원이 일일이 체온을 잰 뒤에 입장을 허가해줬다.

외국인들을 위한 창구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확산방지를 위해 중국인의 입장이 제한된다’는 안내문이 한국어와 중국어로 쓰여 있었다.

이날 동물원을 찾은 이 모 씨(35)는 “집에만 있을 수는 없어서 마스크를 쓰고 나왔다”며 “동물들을 가급적 만지지는 않고 구경만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동물원 가도 될까요?” 불안감 확산

서울의 한 실내동물원에 중국인 입장을 제한하는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천권필 기자

서울의 한 실내동물원에 중국인 입장을 제한하는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천권필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우한 폐렴)의 중간 숙주로 박쥐가 지목되면서 야생동물에 의해 감염되는 인수공통감염병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인수공통감염병은 사람과 척추동물 사이에서 자연적으로 감염되는 질병을 말한다.

특히 동물과 접촉이 잦은 실내동물원, 야생동물카페는 우한 폐렴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인터넷상에는 “아이와 체험동물원에 가도 괜찮을까요”라며 불안감을 호소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발원지인 중국 우한(武漢)에 있는 우한 동물원은 22일부터 문을 닫았다. 환경부와 관세청도 29일부터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이 있는 박쥐, 뱀 등 중국 야생동물의 국내 반입을 막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중국 연구진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숙주에 대한 연구 결과 뱀과 박쥐가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밝혀졌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유사한 SARS 코로나바이러스의 숙주인 오소리, 너구리, 사향고양이 등도 반입금지 대상 동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야생동물 만지고 판매하는 동물카페

야생동물카페에서 자넷고양이를 몸에 올린 방문객. [사진 어웨어]

야생동물카페에서 자넷고양이를 몸에 올린 방문객. [사진 어웨어]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최근 20년간 사람에게 발생한 1400여 개의 신종 전염병 중 60%가 인수공통감염병이며, 이 중 75%는 야생동물로부터 유래했다. 과거 유행했던 에볼라 출혈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조류인플루엔자(AI)가 대표적이다.

이렇게 인수공통감염병의 위험이 커진 건 급속한 도시화로 인해 야생동물과 사람의 접촉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동물과 교감을 내세운 체험동물원·야생동물카페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의 ‘2019 전국 야생동물카페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에서 운영되는 동물카페는 2017년 35곳에서 지난해 64곳으로 증가했다. 실내형 체험동물원도 대형 쇼핑몰 등을 중심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이곳들은 대형 동물원과 달리 주로 야생동물을 직접 만져보거나 먹이를 주는 체험형 시설이 대부분이다. 기자가 찾아간 서울 마포구의 한 동물카페는 박쥐, 뱀 등을 전시하면서 손님들이 직접 만져볼 수 있게 했다. 도마뱀이나 라쿤 같은 동물들을 팔기도 했다.

“감염 관리에 취약…관리 강화해야” 

동물카페에서 코아티에 입을 맞추는 관람객. [사진 어웨어]

동물카페에서 코아티에 입을 맞추는 관람객. [사진 어웨어]

문제는 상당 수 야생동물카페나 체험동물원이 감염 질환에 대한 관리 수준이 취약해 이종간 질병 전파 위험성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어웨어가 12개 동물카페를 조사한 결과 4곳에서만 동물병원에서 발급한 예방접종 증명서를 부착해놨다.

이항 서울대 수의과대학 교수는 “야생동물카페나 체험동물원 같은 유사동물원들은 위생과 공중보건 상태가 열악하고 인수공통질병을 관리할 능력이 없다”며 “이렇게 야생동물과 사람 사이에 밀접한 접촉을 허용하는 위험한 시설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건 신종질병 발생 가능성을 높이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고 주장했다.

한국은 이미 국제적으로도 야생동물에서 유래한 신종질병 발생 위험도가 높은 ‘핫스팟’으로 분류되고 있다. 인구·가축 밀도가 높은 데다가 고위험국인 중국·동남아시아와 가깝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또 다른 신종 감염병을 막으려면 야생동물 관리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형주 어웨어 대표는 “국제적으로도 동물원과 관람객의 불필요한 접촉은 금지하는 추세”라며 “동물원 외 공간에서 야생동물을 전시하거나 무분별하게 야생동물을 거래하는 행위를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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