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증상자도 전세기"→"무증상자만" 혼선 부른 복지장관 발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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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29일 서울 달개비에서 의약단체장들과 간담회를 갖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뉴스1]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29일 서울 달개비에서 의약단체장들과 간담회를 갖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뉴스1]

"유증상자도"에서 "무증상자만"으로. 같은 날 9시간 만에 뒤집힌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입장이다. 박능후 장관은 29일 국민적 관심사가 큰 중국 우한 교민의 전세기 귀국과 관련해서 상반된 결정을 내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폐렴) 주무 부처 장관이 경솔한 발언으로 혼선을 자처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중국 우한 교민 전세기 귀국 관련 입장 바뀌어 #"장관 신중한 대응 중요, 신뢰 깎을 수도" 지적

박 장관은 이날 오전 의약단체장들과의 간담회에 앞서 취재진과 만나 "중국 우한 교민 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유증상자도 전세기를 타고 입국한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상세한 이유까지 들었다. "전세기는 최신 기종이어서 공기순환장치로 필터링이 돼 기내에 기침 등을 통해 세균이 배출된다 하더라도 옮길 가능성은 아주 낮다"면서 "옆자리와 앞뒤 좌석을 비우고 대각선으로 앉게 되며, 유증상자ㆍ무증상자는 층을 구분해 교차 감염되지 않게 하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180도 바뀌었다. 박 장관은 오후 3시 본인이 본부장을 맡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중앙사고수습본부 3차 회의를 열고 우한 교민 귀국 방안을 논의했다. 행정안전부·외교부 등 관계 부처와 방역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회의가 끝난 오후 4시35분께 장관 대신 김강립 복지부 차관이 브리핑실에 등장했다. 이 자리에서 30~31일 전세기 철수 대상은 무증상자로 한정한다는 내용이 발표됐다. 검역을 거쳐 발열이나 호흡기 증상(기침 등) 등이 있는 교민은 데려오지 않기로 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오른쪽)이 29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상황 및 지원대책 등을 논의하는 중앙사고수습본부 3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회의는 각 부처 차관들과 서울 외교부가 영상으로 함께 했다. [연합뉴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오른쪽)이 29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상황 및 지원대책 등을 논의하는 중앙사고수습본부 3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회의는 각 부처 차관들과 서울 외교부가 영상으로 함께 했다. [연합뉴스]

정부는 무증상자만 귀국하는 이유가 중국 정부와의 협의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 차관은 "당초 현지 여건과 감염병 유행 상황, 교민 희망을 고려해서 모든 교민의 안전한 이송을 준비해왔다. 하지만 중국 당국과의 협의 과정에서 현지 검역 법령과 검역 절차를 존중하고 이해해서 우선 무증상자만 이송하도록 결정했다"고 말했다. 감염병은 국적과 관계없이 병이 나타난 국가에서 책임지도록 규정한 국제보건규칙(IHR)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런 규정을 숙지하지 못한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에 귀국하는 720명 중 유증상자가 몇 명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우한폐렴 주무 부처 수장이자 정부 수습본부 수장이 국내ㆍ외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한폐렴 감염 의심 교민의 귀국 여부는 수용 지역으로 결정된 충남 아산ㆍ충북 진천 측 반발과도 직결되는 민감한 사항이다. 또한 중국 측과의 협의는 외교 영역으로 박 장관과 거리가 있다. 김순례 자유한국당 의원은 "국민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장관의 신중한 대응이 중요하다. 국민에게 혼란을 주면 감염병 방역 체계에 대한 신뢰가 깎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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