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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악몽’도 끝나지 않았다, 80번 환자 유족 5년 법정싸움

중앙일보

입력

정부가 우한폐렴(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관련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를 '경계'로 상향 조정한 가운데 28일 오전 경기도 평택항 국제여객터미널에서 평택시 항만정책과 관계자들이 방역을 실시하고 있다. [뉴스1]

정부가 우한폐렴(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관련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를 '경계'로 상향 조정한 가운데 28일 오전 경기도 평택항 국제여객터미널에서 평택시 항만정책과 관계자들이 방역을 실시하고 있다. [뉴스1]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5년 전 발생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피해자가 법정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메르스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은 국가와 병원을 상대로 수억원대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이들은 정부가 접촉자 범위를 협소하게 설정했고, 병원은 첫 감염 환자 확진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를 봤다고 주장한다.

29일 법원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8부(부장 심재남)는 메르스 80번 환자로 알려진 고(故) 김모(사망 당시 35세)씨의 부인 배모(현재 41)씨가 정부와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판결 선고기일을 내달 18일로 잡았다. 배씨는 지난 2016년 6월 본인과 아들(현재 9)에게 월 소득액을 기준으로 산정한 상속액과 위자료 등 약 3억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

소장에 따르면 당시 질병관리본부는 밀접접촉자 범위를 ‘환자가 증상이 있는 동안 2m 이내 공간에 1시간 이상 함께 머문 자’로 규정했다. 세계보건기구(WHO)나 미국 질병관리센터(CDC)는 함께 머문 시간이나 장소를 규정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1시간’ ‘2m’ 등으로 범위를 좁게 만들어 질병 확산을 막지 못했다는 게 배씨 측 주장이다.

보건복지부와 병원 등이 당시 메르스 환자 확진 이후 16일 이상 병원 이름을 공개하지 않은 점도 문제 삼았다. 소장에 따르면 당시 복지부는 “현재까지 추세로 볼 때 환자가 더 많이 발생할 것으로 판단하지 않는다”며 “혼란이 가중될 것을 막기 위해 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한 병원명을 공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정부의 비공개 방침에 반발해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도지사(당시 성남시장)가 병원명을 공개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배씨 측은 “병원명 공개는 국민의 알권리를 지키고, 해당 병원에서 감염에 노출된 의심환자들이 자진신고를 통해 추가 감염사태를 막을 수 있는 중요한 방역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2015년 6월 4일 기준 메르스 감염 경로[연합뉴스]

2015년 6월 4일 기준 메르스 감염 경로[연합뉴스]

80번째 환자 유족 측 “영업 중단과 같은 과감한 조치도 필요”

국내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메르스로 투병했던 환자로 알려진 80번째 환자 김씨는 172일간의 투병 끝에 2015년 11월 25일 숨을 거뒀다. 그의 사망으로 2015년 당시 국내 메르스 환자 186명 가운데 사망자는 38명(치명률 20.4%)으로 늘었고, 감염자는 한 명도 남지 않게 됐다. 김씨는 기저질환으로 혈액암 일종인 악성림프종을 앓고 있었다.

폐렴 증세로 2015년 5월 27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을 찾았다가 메르스 바이러스에 노출된 김씨는 6월 7일에야 확진 판정을 받았고 서울대병원으로 옮겨 172일간 음압격리병상에서 투병 생활을 했다. 중간에 두 차례 유전자 검사에서 메르스 음성 판정을 받아 퇴원했으나 열흘 만에 다시 양성 판정을 받아 재입원했다.

김씨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 메르스와 싸운 것으로 알려져 그의 투병 생활이 소설 『살아야겠다』로 나오기도 했다. 배씨 측 변호를 맡은 이정일 변호사(법무법인 동화)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국내에서 4번째 확진 환자가 나오는 상황에서 동선에 기록된 공동 시설은 영업 중단과 같은 과감한 조치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사업주에게 피해를 주는 측면도 있지만 국민 건강 예방이라는 공익 확보 차원에서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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