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장성택 라인’ 최용해·이일환, 김경희 등장에 고민 커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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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고모이자 김일성 주석의 딸인 김경희 전 노동당 비서(경공업부장)의 6년만의 등장이 북한 정계의 회오리바람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북, 김정은 고모 김경희를 당 고위 간부 사이에 호명 #일각선 김경희의 정치 활동 재개 가능성 관측도 #최용해, 이일환 등 '과거' 꿰고 있어 인사에 영향 줄 수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설날인 25일 삼지연극장에서 부인 이설주 여사와 명절 기념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처형된 장성택의 부인이었던 김경희 전 노동당 비서(빨간 원안)가 6년여 만에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왼쪽부터 김정은, 이설주, 김경희, 김여정 당 제1부부장. [사진 연합뉴스, 조선중앙TV 캡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설날인 25일 삼지연극장에서 부인 이설주 여사와 명절 기념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처형된 장성택의 부인이었던 김경희 전 노동당 비서(빨간 원안)가 6년여 만에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왼쪽부터 김정은, 이설주, 김경희, 김여정 당 제1부부장. [사진 연합뉴스, 조선중앙TV 캡처]

정부 고위 당국자는 28일 “김경희 전 비서가 2013년 9월 9일(정권수립일) 이후 2329일 만에 공식 석상에 나타났다”며 “최근 '백두혈동'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김여정 당 제1부부장(김 위원장의 여동생)과 함께 김 위원장에게 직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어서 향후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0월과 12월 공개된 것만 두차례에 걸쳐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올랐다. 백두산은 김 주석의 항일무장투쟁 근거지이자 김정일 국방위원장(2011년 사망)의 고향(소백수)이라고 주장하는 곳이다. 이후 북한은 ‘백두혈통’을 강조하면서 현재의 난관을 정면 돌파할 것을 대내외에 주문하고 있다. 이와 맞물려 김 전 비서의 등장을 김일성 일가를 내세워 대내 결속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김경희는 지난 25일 삼지연 극장에서 열린 명절 기념공연에서 이설주 여사와 김여정 당 제1부부장 사이에 앉아 공연을 관람하는 사진이 공개됐는데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오른쪽 둘째)이 2008년 6월 동봉협동농장을 찾아 여동생 김경희(왼쪽 둘째) 등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 노동신문]

김정일 국방위원장(오른쪽 둘째)이 2008년 6월 동봉협동농장을 찾아 여동생 김경희(왼쪽 둘째) 등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 노동신문]

당국은 또 북한 매체들이 김 위원장의 공연 관람에 동행한 인물을 호명하면서 그를 최용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이일환 당 부위원장(선전선동부장 겸임) 사이에 등장시킨 점을 주목하고 있다. 다른 정부 당국자는 “각종 매체를 통해 호명하는 순서가 사실상 북한의 공식적인 권력서열”이라며 “그가 당 고위간부들 사이에 언급된 배경을 분석 중”이라고 말했다.

임수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최용해는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이고, 이일환은 정치국 위원”이라며 “김경희가 정치활동을 재개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김 전 부장은 2010년 9월 당 대표자회(3차)에서 정치국 위원에 선출됐는데, 3년 뒤인 2013년 12월 남편인 장성택이 체제전복 혐의로 처형된 뒤 공식 석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랬던 그가 김 위원장과 자리를 함께했다는 건 남편의 죄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났고 호명 순서를 볼 때 최소 정치국 위원급으로 판단되면서 향후 김 위원장에게 조언하며 막후 역할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혁명 1세대'로 꼽고 있는 황순희 혁명역사박물관장의 장례식이 19일 평양에서 열렸다. 장의위원장을 맡은 최용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장지인 혁명열사릉에서 애도사를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북한이 '혁명 1세대'로 꼽고 있는 황순희 혁명역사박물관장의 장례식이 19일 평양에서 열렸다. 장의위원장을 맡은 최용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장지인 혁명열사릉에서 애도사를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일환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장. 그는 김일성 주석의 빨치산 동료인 김명화의 외손자이자 이건일 기상수문국장의 아들이다. [사진 노동신문]

이일환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장. 그는 김일성 주석의 빨치산 동료인 김명화의 외손자이자 이건일 기상수문국장의 아들이다. [사진 노동신문]

이럴 경우 향후 인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흥미로운 주장도 나오고 있다. 특히 처형된 남편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으면서도 김정은 시대 들어 여전히 승승장구하는 인물들이 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와 관련, 최용해 상임위원장과 이일환 부장이 우선 거론되고 있다.

두 사람은 1980년대 장성택이 청년동맹을 담당하는 당 청년사업부장을 맡았을 때부터 관계를 맺어왔다. 이를 바탕으로 두 사람은 90년대 후반엔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2016년 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으로 개명) 책임자를 지냈다. 이들이 과거 장성택 라인으로 분류됐던 이유다.

그런데도 장성택 처형 당시 관련자들의 처벌 과정에서 김 주석과 항일무장투쟁을 함께했던 최현의 아들과 김명화의 외손자인 최용해와 이일환은 빨치산 2·3세대의 대표 주자로 꼽히면서 살아 남았다. 하지만 90년대 후반 발생한 청년동맹 비위 사건 등 김 전 부장이 이들의 과거 행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김 전 부장의 입에 관심이 모아진다는 것이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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