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 이어 알펜루트도 1108억원 펀드환매 중단…"이러다 사모펀드 다 죽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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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사모펀드 시장이 죽는 건 아닐까 걱정됩니다."(사모펀드 전문 A자산운용사 본부장)

라임자산운용의 '펀드 환매 중단' 불똥이 사모펀드 업계 전체로 튀고 있다. 라임 사태에 부담을 느낀 증권사들이 헤지펀드에 빌려줬던 자금을 거둬들이면서 라임에 이어 알펜루트자산운용까지 고객 투자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자칫 '펀드 환매 중단 도미노' 현상이 나타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알펜루트, 3개 펀드 환매 연기하기로

알펜루트자산운용 홈페이지 화면.

알펜루트자산운용 홈페이지 화면.

알펜루트자산운용은 28일 '에이트리 1호'(567억원)와 '비트리 1호'(493억원), '공모주 2호'(48억원) 등 3개 펀드의 환매를 연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전체 설정액은 1108억원 규모다. 이 회사는 마켓컬리와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등 유망 비상장 벤처에 투자해온 사모펀드 운용사다.

알펜루트 측은 "다음 달 말까지 이들 펀드를 포함해 26개 펀드가 환매 중단될 수 있다"며 "최대 1817억원 규모로, 총자산인 9000억원의 19.5%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 펀드들은 가입과 환매가 자유로운 개방형이다. 전체 자산 2296억원 중 알펜루트 측 자금(479억원)을 뺀 금액이 1817억원이고 이중 개인 투자금은 1381억원, 증권사 대출액이 436억원이다. 알펜루트는 시장 상황을 보고 다음 달 23개 펀드에 대한 환매 연기 여부를 추가로 결정하기로 했다.

부실 없는 펀드에도 자금 회수 

환매 중단 결정의 중심엔 증권사와의 총수익스와프(TRS) 계약이 있다. 이는 투자 자산을 담보로 증권사가 돈을 대출해주는 방식이다. 주식담보대출과 비슷한 성격을 띤다. 그런데 최근 라임 사태가 불거지자 증권사들이 TRS 계약을 해지하고 대출금 회수에 나선 것이다. 알펜루트자산운용과 업계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대우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자금 회수 결정을 통보하자 신한금융투자도 자금 상환을 구두로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이사가 지난해 10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에서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연기 관련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이사가 지난해 10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에서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연기 관련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고객 투자 자산의 리스크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선제적 대응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라임 사태 때처럼 펀드가 투자한 기초자산이 부실한 문제는 아니란 뜻이다. 알펜루트자산운용 관계자는 "우려와 달리 환매가 연기된 펀드 대부분은 우량한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다"며 "그런데도 증권사들은 지난 연말만 해도 TRS 자금을 많이 쓰라고 하더니 갑자기 자금 회수를 통보했다"고 말했다.

업계는 연쇄 펀드 환매 중단 우려 

문제는 증권사들이 TRS 거래 비중을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틀 수 있단 점이다. TRS 계약을 통한 높은 레버리지(차입) 거래가 리스크가 크단 판단에서다. 한 대형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증권사들이 라임과 알펜루트운용과만 계약을 해지하진 않을 것"이라며 "다른 운용사에도 대출 회수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경우 '증권사 자금 회수→운용사 유동성 위기→펀드 환매 중단'이라는 악순환이 생길 수 있다. 특히 TRS 거래 비중이 높고 개방형 펀드이면서 비유동성 자산에 투자한 운용사의 경우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대우·한국투자증권·KB증권·삼성증권·NH투자증권·신한금융투자 등 6곳이 19개 운용사에 2조원에 달하는 규모의 TRS 계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이들 증권사는 현재로선 계약 해지에 무게를 두진 않는다는 입장이다. 신한금융투자 관계자는 "시장 상황이나 기초자산 가치에 따라 리스크를 조절하는 것일 뿐, 헤지펀드니까 계약을 축소해야 한다는 공식 입장은 없다"고 말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사모펀드에 대한 시장 우려가 크기 때문에 (TRS 자금 회수는) 다른 사모펀드 운용사에도 반복될 수 있는 사안"이라며 "펀드에 특별히 문제가 없는데도 대형 증권사들이 자금 회수에 나서면 일반 투자자들도 환매에 동참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사모펀드 전체 판매잔액.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사모펀드 전체 판매잔액.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금감원 "부실 없으면 회수 자제를" 당부

한편 금융당국은 자산운용사를 상대로 TRS 자금 회수 요청에 나서고 있는 증권사들에 경고를 날렸다. 금융감독원은 이날 오후 전문투자형 사모펀드에 TRS를 통해 신용을 제공한 6개 증권사 임원과 긴급회의를 열어 갑작스럽게 TRS 증거금률을 올리거나 계약을 조기 종료하지 않도록 당부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행 TRS 계약을 통해 취득한 자산에서 부실이 발생하는 등 불가피한 사유가 아니라면 계약 조기 종료 전에 관련 운용사와 사전 협의해 연착륙이 이뤄질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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