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만에 감소한 실질 GDI…"소득주도성장 효과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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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실질 국내총소득(GDI)이 21년 만에 줄었다. 한국은행이 22일 발표한 ‘2019년 4분기 및 연간 국내총생산(GDP)’ 속보치에 따르면 지난해 GDI는 전년보다 0.4% 감소했다. 1998년(-7%) 이후 21년 만에 마이너스 증가율을 나타낸 것이다. 실질 GDI는 국내에서 생산 활동을 통해 발생한 소득의 실질 구매력을 나타내는 지표다. GDI가 감소했다는 것은 가계ㆍ기업 등 국내 경제 주체들의 지갑이 그만큼 얇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21년 만에 감소한 실질 국내총소득(GDI).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21년 만에 감소한 실질 국내총소득(GDI).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GDI가 줄어든 것은 1956년과 2차 오일쇼크가 터졌던 1980년, 외환위기 때인 1998년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덮쳤던 2008년에도 GDI 증가율은 플러스(0.1%)를 유지했다. 지난해엔 이렇다 할 외부충격도 없었는데도 GDI가 역주행한 것이다.

한국은행은 반도체 등 수출품 가격이 원자재 등 수입품 가격보다 더 크게 하락한 것을 원인으로 꼽고 있다. 박양수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 가격이 D램과 낸드 모두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우리 경제의 수출 여건이 매우 악화한 것이 GDI 감소로 이어진 것으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선 전반적인 주력 산업의 경쟁력이 약화하고 이에 따라 우리 경기의 활력이 떨어진 것이 원인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밀어붙인 소득주도성장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쉽게 말해 민간의 소비 여력이 감소한 것인데, 임금상승을 통해 소비ㆍ수요ㆍ투자를 늘리겠다는 소득주도성장의 당초 취지와는 정반대 현상이 나타난 것”이라며 “정부 주도의 재정지출을 늘리는 것보다는 자생적인 민간투자가 이뤄지도록 규제를 풀고 친시장적인 기업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실제 정부소비 증가율은 2017년 3.9%에서 지난해 6.5%까지 계속 높아졌지만, 민간소비 증가율은 2017년 2.8%에서 지난해 1.9%로 둔화했다.

달러로 환산한 1인당 명목 국민총소득(GNI)은 전년(3만3400달러)보다 줄어든 3만2000달러 안팎으로 예상된다. 명목소득이 실질소득을 밑돌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원화가치가 지난해 5.9% 하락한 점이 GNI를 끌어내리는 배경이 됐다. 한은 추정대로라면 메르스 사태가 발생한 지난 2015년 이후 4년 만에 GNI가 감소하는 것이다.

손해용 경제에디터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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