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인사 앞두고···'엘리트 판사' 등 50여명 집단 사직서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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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월 법원 정기 인사를 앞두고 약 50여명의 판사가 법복을 벗는다. 대법원과 법원행정처를 거친 이른바 ‘엘리트 판사’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대표적인 엘리트 판사는 김기정(58·사법연수원 16기) 서울서부지방법원장과 한승(57·17기) 전주지방법원장이다. 김 법원장은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냈고 서울 지역 법원장으로는 첫 사의를 표명했다. 한 법원장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사법행정실장으로 근무했다. 그중 한 법원장은 줄곧 대법관 후보 1순위로 이름이 오르내리던 인물이다.

이 외에도 대법원과 법원행정처 등에서 근무했던 법관들이 대거 사직서를 냈다. 대법원 공보관 출신 고법부장과 법원행정처 국장을 지낸 고법부장도 사의를 표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법원행정처 심의관 출신 지방부장판사 10여명도 법원을 떠난다. 조용구 원로법관(64·11기)은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다. 사법연수원장을 지내고 퇴임한 뒤 2017년 2월 첫 원로법관으로 다시 법원으로 돌아와 3년 동안 서울중앙지법에서 근무했다.

법원 내부에선 엘리트 판사들의 탈법원 현상의 이유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초래한 법원 내부의 분열을 꼽는다.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지난해 사표를 내고 싶었어도 나쁜 사람으로 몰려나가는 형국은 피하고자 억지로 참고 있던 각 기수의 에이스급 판사들이 나가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 피해는 모든 국민이 지게 될 것”이라며 “슬픈 현실”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를 이례적인 현상으로 볼 수는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법원 고위 관계자는 “재판연구관이나 심의관 출신 판사들의 사의 표명은 매년 있어왔다”며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숫자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2012년도부터 법원을 떠난 재판연구관·심의관 출신 판사들의 수는 2015년 한 해를 제외하고는 16명을 웃돌았다.

이번에 사직서를 제출한 판사 중 몇몇은 학계로 거처를 옮길 예정이다. 전휴재 서울고법 판사(46·28기)는 성균관대 로스쿨로 간다. 2013년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심의관을 맡은 최우진 수원지법 판사(47·31기)는 고려대 로스쿨로, 조동은 인천지법 판사(40·37기)와 공두현 대구지법 판사(39·40기)는 서울대 로스쿨에서 후학 양성에 힘쓰겠다는 입장이다.

올해 특히 눈에 띄는 건 사직서를 제출하고 정치진출을 선언한 3명의 판사다. 이수진(51·31기) 수원지법 부장판사와 장동혁(51·33기) 광주지법 부장판사, 최기상(51·25기)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 등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은 양 전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국면에서 비판적 입장을 보였던 공통점이 있다.

현직 판사들이 연이어 총선 출마를 선언한 데에 법원 내부에서도 공방이 뜨겁다. 자칫 사법부 중립에 대한 신뢰가 훼손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지난 17일 법원 내부망 ‘코트넷’에는 ‘법복 정치인 비판’이라는 정욱도(44·31기) 대전지법 홍성지원 부장판사의 글이 올라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정 판사는 “법관의 정치성은 발현된 곳이 음지이건 양지이건, 현직이건 전직이건, 방향이 보수이건 진보이건 상관없이 언제나 악덕”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백희연 기자 baek.hee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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