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횡단 행인 친 배달오토바이…대법 "사고 예견 못해 무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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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보도를 질주하는 배달 오토바이. 김홍준 기자

횡단보도를 질주하는 배달 오토바이. 김홍준 기자

오토바이를 운전하다 무단횡단하던 행인을 친 10대 배달원에게 교통사고의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어두운 밤 술에 취한 채 무단횡단을 한 피해자의 행동을 운전자가 예견할 수 없었다는 판단 때문이다.

대법원 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오토바이 운전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한다고 22일 밝혔다.

사고는 2018년 3월 밤 9시를 넘긴 시각, 경기 용인의 3차로 도로에서 일어났다. 배달 오토바이를 타고 가게로 돌아가던 A(19)군이 커브 길을 지나 직선도로로 들어서자마자 60대 남성 B씨가 도로 중간에 나타났다. A군은B씨를 피하지 못하고 들이받았고 B씨는 전치 18주의 중상해를 입었다. A군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치상)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주택가, 운전자가 보행자 예측했어야"

A군은 1심에서 "B씨의 무단횡단을 전혀 예견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운전자에게는 운전 업무상 주의 의무가 있긴 하지만 B씨가 술을 마신 상태에서 무단횡단할 것까지 예상해 운전할 의무는 없다는 취지다.

하지만 1심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당시 사고가 난 구간은 주택 밀집 지역에 있는 직선 도로였고, 도로 양쪽에 가로등도 있었다"며 A씨가 "예측할 수 없었다"고 한 점을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은 금고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버스 불빛에 보행자 못 봤을 수도" 2심 무죄

반면 2심은 이를 뒤집었다. 2심은 "운전자가 통상 예견하기 어려운 이례적인 사태 발생까지 예견해 대비할 주의 의무까지 진다고 보기 어렵다"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들었다.

사고 직전 A씨의 맞은편 도로에는 버스 한 대 오고 있었고 곧 A씨와 교차해 지나갔다. B씨는 당시 버스 뒤쪽에서 무단횡단을 하다가 버스가 지나가자 속도를 높여 길을 건너려 했고 그때 A씨의 오토바이와 부딪히게 된 것이다.

항소심은 "버스 차체와 전조등 불빛으로 A씨 시야가 순간적으로 상당히 제한됐고, 버스 뒤에서 어두운색 옷을 입고 무단횡단하는 피해자를 못 봤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오히려 법원은 A씨가 처벌이 두려워 못 본 것을 "봤다"고 허위진술 했을 가능성도 고려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남자가 중앙선까지 무단횡단하는 것을 보고 속도를 줄여 천천히 갔는데 그 사람이 갑자기 뛰어들어 사고가 났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막상 CC(폐쇄회로)TV 화면을 분석해보니 A씨는 오토바이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A씨가 형사책임을 면해보려고 피해자를 못 봤으면서 사전에 그를 봤고 속도를 줄여 ‘주의의무를 다했다’고 허위진술을 했을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어 법원은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A씨가 이 사고에 대해 예견 가능성과 회피 가능성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무죄판결을 했다. 대법원도 이를 옳다고 보고 확정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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