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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대출 규제 부작용 속출···강남발 전셋값 인상 도미노 오나

중앙일보

입력

 20일을 기해 12·16 부동산 대책 중 전세대출 규제방안이 시행된다. 사진은 19일 서울 시내의 부동산 중개업소 모습.[연합뉴스]

20일을 기해 12·16 부동산 대책 중 전세대출 규제방안이 시행된다. 사진은 19일 서울 시내의 부동산 중개업소 모습.[연합뉴스]

센 약은 부작용도 강한 법이다. 20일 시행된 전세대출 규제도 그렇다. 그동안 ‘실수요자’ 영역으로 보고 거의 손대지 않던 1주택자 전세대출까지 강하게 조이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규제의 부작용이 예상되지만 집값을 잡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실수요자라고 해서 이런저런 예외를 인정해주다 보면 규제 효과가 떨어질 거라고 우려해서다. 금융권에서 지적하는 예상되는 부작용을 정리해봤다.

‘전세 퇴거’는 곧 ‘대출금지’ 되나?

‘살려는 집(거주)과 사려는 집(구매)을 분리하라.’ 부동산 전문가들이 투자자에 많이 하던 조언이다. 하지만 이제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게 됐다. 20일부터 공적보증기관(주택금융공사, 주택도시보증공사)에 이어 서울보증보험(SGI)에서도 고가주택(시가 9억원 초과) 보유자에 대한 전세대출보증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기존에 전세대출을 이미 이용 중인 고가 주택보유자는 이런 규제가 남 얘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 기존 대출자에 한해서는 만기 시 전세대출보증 연장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따져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20일을 기해 시가 9억원이 넘는 고가주택 보유자의 전세대출을 제한하는 규제 방안이 시행된다.   사진은 19일 서울 후암동 한 은행에 붙은 전세대출 상품 안내 현수막. [연합뉴스]

20일을 기해 시가 9억원이 넘는 고가주택 보유자의 전세대출을 제한하는 규제 방안이 시행된다. 사진은 19일 서울 후암동 한 은행에 붙은 전세대출 상품 안내 현수막. [연합뉴스]

가장 난감한 상황은 집주인이 자신이 들어와 살겠다며 전세를 빼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다. 서울 강북에 9억원 초과 집을 보유한 A씨가 자녀 교육 때문에 자기 집은 전세를 주고(전세 보증금 5억원), 전세대출(대출 4억원)로 보증금을 보태서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전세를 살고 있다고 가정해보자(전세 보증금 9억원). 집주인이 전세를 빼달라고 요구해도 예전 같으면 A씨는 근처 비슷한 아파트에 새로 전세를 얻어 이사하면 됐다.

하지만 이젠 그건 어렵게 됐다. 강화된 규제에 따르면 기존 대출자라 하더라도 전셋집을 옮기면 전세대출이 안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A씨에겐 세가지 선택지가 남는다. ①대출 없이 가진 돈만으로 구할 수 있는 근처의 저렴한 전셋집으로 옮기든지 ②강북에 있는 자기 보유 집으로 들어가든지 ③반전세로 돌려서 일부 월세를 내면서 기존 수준의 강남 전셋집을 구해야 한다.

자녀 교육을 위해 강남으로 간 A씨로서는 ③번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일대의 전·월세전환율은 4% 수준(보증금 1억원당 월세 35만원 선)으로 2%대 후반인 전세대출 금리보다 높다. 결국 전세대출 규제 때문에 비용이 추가로 들어가는 셈이다.

금융당국도 이러한 상황이 생길 것으로 예상한다. 이 때문에 금융위원회는 지난 16일 “예외적으로 4월 20일까지 전셋집 이사(전세계약 체결 포함)로 전세대출을 증액 없이 재이용하는 경우엔 1회에 한해 SGI 보증을 허용한다”는 대책을 내놨다. 집주인 사정 등으로 전셋집을 이전해야 하는 경우를 고려해 3개월의 유예기간을 주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4월 21일 이후엔 예외 적용을 해주지 않는다.

강남이 전셋값 올리면 줄인상 가능성

전세 퇴거 요청까지는 아니지만 집주인이 전셋값을 올려달라고 하는 경우도 문제다. 고가주택(시가 9억원 초과) 보유자는 기존 전세대출의 단순 만기 연장만 가능하고 추가 대출(증액)은 불가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든 A씨 사례를 다시 인용해보자. 지난 2년간 뛴 전셋값을 반영해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2억원 올려달라고 해도 A씨는 추가로 전세대출을 받을 수가 없다. 이 경우 A씨는 ①신용대출로 이를 메우거나 ②추가 보증금을 반전세로 돌리거나 ③자신이 보유한 강북 집 세입자에 전세보증금을 그만큼 올려 받는 방법 중 선택할 수 있다.

A씨 입장에서 이 중 가장 비용이 덜 드는 합리적인 안은 ③번이다. 강남 전셋값 인상분 중 일부가 강북의 세입자에 전가될 확률이 높은 것이다.

A씨 집에 세 들어 있는 세입자 B씨가 또 다른 수도권 지역에 집을 보유하며 세를 주고 있다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만약 B씨조차 전세대출이 막힌 상태라면 강북 전셋값을 올려주기 위해 자신의 수도권 집에 사는 세입자에 전세 보증금을 올려 받아야 할 수 있어서다. 강남발 전셋값 인상이 강북으로, 다시 수도권이나 지방으로 퍼져나가는 전셋값 인상의 도미노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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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 관계자는 “기존 전세대출자는 바뀌는 규제가 자신에게 적용되는 것을 모른 채 대출 만기까지 손 놓고 있다가 난감한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며 “고가주택을 보유한 전세대출자라면 미리 관련 내용을 꼼꼼히 따져볼 것”을 강조했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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