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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떠난 아들 모교에 전 재산 기증한 제주 할머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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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 8일 오전 제주 오현고등학교 청음홀. 1972년 이 학교를 졸업한 고(故) 이창준씨를 기리는 ‘고 이창준장학회’ 장학금 기탁식이 열렸다. 이날 전달된 장학금 3억원은 이씨의 어머니 윤영옥(91) 여사가 전 재산을 정리해 내놓은 것이다. 고령의 윤 여사는 가족의 부축을 받은 채 기탁식에 참석했다. 윤 여사는 “우리 아들의 후배들이 돈이 없어 공부를 못 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윤 여사와 그의 친인척, 학생과 교직원 등이 참석했다.

오현고 졸업생 고 이창준씨 어머니 #2010년 2억 기증 뒤 3억원 또 기부

윤 여사는 아들 이씨가 태어난 지 1년 만에 남편을 잃었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효심이 깊었다고 한다. 이씨는 제주 오현고와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하고 한국은행 본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직장에서 능력을 한창 발휘했지만, 1985년 지병인 간암이 악화돼 33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윤 여사의 장학금 기탁은 이번이 전부가 아니다. 2010년 서울에서 조그마한 가게를 운영하며 조금씩 모은 돈 2억원을 아들의 모교에 기탁했다. 오현고는 이 돈을 활용해 2011년 ‘고 이창준 장학회’를 설립하고, 교정에 이씨의 흉상을 세웠다. 장학회는 2011년부터 2018년까지 가정형편이 어렵고 성적이 우수한 학생 34명에게 2480만원을 전달했다. 지난해에는 대학 수시 전형 대비 프로그램 운영비 143만원을 3학년 학생에게 줬다. 이 장학금을 받고 공부한 3학년 장혁진(20)군은 이날 행사에서 윤 여사에게 감사 편지를 써 전하기도 했다. 장군은 올해 서울대 경제학부에 합격했다.

장군은 “할머니 덕분에 장학금을 받고 학업에 더 정진해 서울대에 합격하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다”며 “상황에 만족하지 말고, 발전하란 뜻에서 주신 것으로 알고 학업에 정진하겠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윤 여사가 전달한 장학금을 학생들의 학력 향상과 공동체 가치관 함양, 해외 견학 등 교육 프로그램 운영에 사용할 계획이다. 그동안 장학금은 주로 대학 진학생에게 줬지만, 지난해부터 고교 무상 교육이 전면적으로 시행되면서 용도를 바꿨다.

정종학 오현고 총동문회장은 “윤 여사는 아들이 졸업한 모교의 후배 학생들을 손주로 생각하는 마음으로 숭고한 사랑을 실천해 오셨다”고 말했다.

최충일 기자 choi.choo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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