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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조국 일가 인권침해” 인권위 진정, 즉각 철회해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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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청와대가 어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의 수사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를 조사해 달라는 국민청원을 국가인권위에 송부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15일 이후 한 달간 청원자(22만 6434명)가 20만 명을 넘은 데 대한 공식 답변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정치적 오해를 부를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조치다. 철회하는 게 마땅하다.

수사·재판 중에 인권위 조사 어불성설 #검찰 압박하려는 의도라는 의심 살 만해

먼저 조 전 장관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와 법원의 재판이 진행 중인 시점에 인권위가 조사를 벌이는 것 자체가 공정한 수사와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는 ‘재판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정보(공개될 경우 재판의 심리 또는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칠 구체적 위험성이 있는)’ 등에 대해선 비공개한다는 원칙을 세웠었다. 그런데 갑자기 인권위로 송부한 까닭이 무엇인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조 전 장관 일가 수사로 극심하게 분열·갈등해 왔다. 청원자들은 조 전 장관 부인인 정경심 교수에 대한 인격권 침해, 딸의 학적부 공개 등을 인권침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조 전 장관의 묵비권 행사, 피의자의 출퇴근 조사, 비공개 검찰 소환조사에 이어 정 교수는 재판마저 비공개로 받고 있어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특별한 대접을 받고 있어 되레 특혜 수사, 봐주기 수사가 아니냐는 비난이 나오는 마당이다. 그런데도 대통령 비서실장 명의로 인권침해 여부를 조사해 달라며 인권위에 송부했다니 선의로 받아들일 국민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러니 정치적 노림수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나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정권 실세에 대한 수사를 둘러싸고 ‘윤석열 검찰’과 법무부·청와대가 정면 충돌하며 낯 뜨거운 공방을 벌이는 와중이다. 상식을 벗어난 이번 조치는 여론을 앞세워 검찰을 압박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인터넷엔 ‘박근혜·정유라도 국민청원 하면 국가인권위가 조사해 주나’ ‘권력에 취해 눈이 멀어버렸다’는 비난 댓글이 넘친다.

청와대 청원은 앞서도 신뢰·공정성 시비에 휘말렸었다.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할 국민 소통 공간이라는 취지와 달리 중복 투표를 통한 청원 인원수 조작 논란, 부적절한 청원 내용이 많아 청원 무용론까지 나오는 터다. 그런데도 특정 내용을 선별적으로 골라 국민 대다수의 여론인 양 부각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자칫 청와대 스스로 ‘국민 청원=프레임 전쟁의 도구’라는 비판을 자인하는 꼴이다. 국가인권위가 실제 조사에 착수한다면 국민 불신과 비난은 걷잡을 수 없이 가속화될 것이다. 청와대가 지금이라도 즉각 철회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