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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떠난 아들 모교에 전 재산 기증한 망백(望百)의 제주 할머니

중앙일보

입력

지난 8일 제주 오현고등학교에서 '고 이창준장학회' 장학금 기탁식이 열렸다. 사진은 고 이창준씨의 어머니 윤영옥 여사가 아들의 흉상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느 모습. [사진 오현고]

지난 8일 제주 오현고등학교에서 '고 이창준장학회' 장학금 기탁식이 열렸다. 사진은 고 이창준씨의 어머니 윤영옥 여사가 아들의 흉상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느 모습. [사진 오현고]

지난 8일 오전 11시 제주 오현고등학교 청음홀. 1972년 이 학교를 졸업한 고(故) 이창준씨를 기리는 ‘고 이창준장학회’ 장학금 기탁식이 열렸다. 장학금 3억원은 이씨의 어머니 윤영옥(91) 여사가 내놨다. 이 돈은 그가 전 재산을 정리해 모은 것이다. 윤 여사는 이날 가족의 부축을 받은 채 기탁식에 참석했다. 그는 “우리 아들 후배들이 앞으로 돈이 없어 공부 못 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오현고 졸업생 고 이창준씨 어머니 윤영옥 여사 #2010년 2억 기증 후 10년 모은 3억 또 기부 #오현고, 2011년 학교장학회 만들고 고인 흉상도 #

지난 8일 제주 오현고등학교에서 '고 이창준장학회' 장학금 기탁식이 열렸다. 사진은 고 이창준씨의 어머니 윤영옥 여사가 학교측과 기탁서 전달식을 하는 모습.[사진 오현고]

지난 8일 제주 오현고등학교에서 '고 이창준장학회' 장학금 기탁식이 열렸다. 사진은 고 이창준씨의 어머니 윤영옥 여사가 학교측과 기탁서 전달식을 하는 모습.[사진 오현고]

기탁식에는 윤 여사와 그의 친인척, 학생과 교직원 등이 참석했다. 윤 여사는 2010년 2억원에 이어 또다시 장학금을 내놨다.

윤 여사는 아들 이창준씨가 태어난 지 1년 만에 남편을 잃었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효심 깊었다고 한다. 이창준씨는 제주 오현고와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하고 한국은행 본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비교적 짧은 기간에 계장까지 승진했다. 하지만 1985년 지병인 간암이 악화해 33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윤 여사는 이후 서울에서 조그마한 가게를 운영하며 조금씩 돈을 모았다. 이렇게 모은 돈 2억원을 2010년 아들의 모교에 기탁했다. 윤 여사는 "아들이 못다 피운 꿈을 후배들이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장학금을 내놨다"고 말했다. 오현고는 2011년 ‘고 이창준 장학회’를 설립하고, 교정에 이씨의 흉상을 세웠다.

장학회는 2011년부터 2018년까지 가정형편이 어렵고 성적이 우수한 학생 34명에게 2480만원을 전달했다. 지난해에는 대학 수시 전형 대비 프로그램 운영비 143만원을 3학년 학생에게 줬다. 이창준 장학금을 받고 공부한 3학년 장혁진(20)군은 이날 행사에서 윤 씨에게 감사 편지를 써 전하기도 했다. 장군은 올해 서울대 경제학부에 합격했다.

지난 8일 제주 오현고등학교에서 '고 이창준장학회' 장학금 기탁식이 열렸다. 사진은 고 이창준씨의 어머니 윤영옥 여사가 아들의 후배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사진 오현고]

지난 8일 제주 오현고등학교에서 '고 이창준장학회' 장학금 기탁식이 열렸다. 사진은 고 이창준씨의 어머니 윤영옥 여사가 아들의 후배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사진 오현고]

장군은 “할머니 덕분에 장학금을 받고 학업에 더 정진해 서울대에 합격하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다”며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지 말고, 발전하라는 뜻에서 주신 것으로 알고 학업에 정진하겠다”고 말했다. 정종학 오현고 총동문회장은 “윤영옥 여사는 아들의 모교 후배 학생들을 손주로 생각하는 마음으로 큰일을 해오셨다”며 “무엇보다도 숭고한 사랑의 실천이라고 생각된다”고 전했다.

학교는 윤 여사가 전달한 장학금을 학력 향상, 공동체 가치관 함양, 해외 견학 등 교육 프로그램 운영에 사용할 계획이다. 그동안 주로 대학 진학생에 줬지만, 지난해부터 고교 무상 교육이 전면적으로 시행되면서 용도를 바꿨다.

이계형 오현고 교장은 "윤영옥 여사의 한없는 자식 사랑은 교육과 아들의 후배 사랑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며 “윤 여사의 뜻을 받들어 훌륭한 사회인으로 양성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제주=최충일 기자 choi.choo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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