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모두 ‘며칠’로 기억하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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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오늘은 몇 년 몇 월 며칠인가요?” 이 간단한 질문에 치매 환자는 말문이 막힌다. 자가진단표에서도 빼놓지 않고 나오는 질문이다. 100세 시대에 누구도 이 질문을 피해 갈 수 없게 되면서 반대로 이런 의문을 품는 이도 늘었다.

“‘며칠’을 따로 쓸 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이럴 땐 ‘몇 년 몇 월 몇 일’이라고 해야 하지 않나요?” 이 질문에 의사는 어떻게 답변해 줘야 할까?

대개 날수를 이를 땐 ‘며칠’, 그달의 몇째 되는 날을 가리킬 때는 ‘몇 일’로 사용하는 게 바르다고 생각한다. 아예 ‘몇 일’로만 적는 이도 많지만 ‘몇 일’이라고 하는 경우는 없다. “며칠이나 지났죠”든 “몇 년 몇 월 며칠”이든 모두 ‘며칠’이 바른 표기법이다. 몇 년 몇 월 몇 시에 이끌려 ‘몇 일’이라고 해선 안 된다. 일정 기간이든, 구체적인 날짜든 항상 ‘며칠’로 써야 한다.

맞춤법에선 “둘 이상의 단어가 어울려 이루어진 말은 각각 그 원형을 밝혀 적되, 어원이 불분명한 것은 원형을 밝혀 적지 않는다”고 규정돼 있다.

‘며칠’을 ‘몇’과 ‘일(日)’의 합성어가 아닌 어원이 분명치 않은 말로 보고 소리 나는 대로 적은 형태를 표준어로 삼은 것이다. 근거는 ‘몇 월’의 발음과 비교해 보면 드러난다. ‘몇’ 다음에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가 오면 끝소리인 ‘ㅊ’이 이어져 ‘몇+을[며츨]’과 같이 발음되나 명사가 오면 ‘몇 월[며둴]’처럼 ‘ㅊ’이 대표음인 ‘ㄷ’으로 소리 난다. 마찬가지로 ‘며칠’이 [며딜]로 발음된다면 ‘몇’과 ‘일’이 합쳐진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실제로 [며칠]로 소리 난다는 점에서 어원이 분명치 않다고 보고 ‘며칠’로 쓰는 것이다.

이은희 기자 lee.eunhee@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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