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게 집 지어 잘사는 방법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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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8호 20면

짓기와 거주하기

짓기와 거주하기

짓기와 거주하기
리처드 세넷 지음
김병화 옮김
임동근 해제
김영사

19세기 상하이는 국제적인 외피를 두른 도시였다. 서구와 거래하는 중국의 무역 거점으로, 수변 공간 와이탄에 형성된 영국·프랑스 등의 조차지(租借地)가 유럽적인 모습을 부여한 탓이다. 문화혁명 기간 동안 퇴락해 콜레라 발생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더러워졌지만 21세기 들어 전 세계 콘크리트의 55%, 철강의 36%를 쏟아부은 중국 정부의 도시화 프로젝트 덕분에 구린내가 나지 않는 주거지로 거듭난다. 현대식 정화조를 갖추면서다.

도시화 연구의 권위자인 저자의 상하이 이야기는 물론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아파트 숲에 갇히면서 노인 방치, 자살률 증가, 청소년 범죄 증가 등 현대 병폐를 답습하는 도시가 돼버렸다고 지적한다. 그런 상황을 다음 문장으로 요약한다.

“그들은 점거하지만 거주하지는 않아요.”

거기다 이런 설명을 덧붙인다. 세계적인 수준의 ‘빌’이 ‘시테’를 파괴한 것으로 보인다고.

그렇다면 거주는 뭐란 말인가. 각종 병폐에 두 손 들고 살면 점거인가.

빌과 시테의 의미를 먼저 파악해야 어려움이 덜한 책이다. 읽다 보면 미끌미끌한 빌과 시테의 뜻을 자꾸 생각하게 된다. 프랑스어 빌(ville)은 물리적인 도시, 시테(cité)는 거주 문화, 생활방식에 가깝다. 책의 영어 원제 ‘building(짓기)’이 빌을 대변한다면 ‘dwelling(거주하기)’은 시테와 관련 있다. 쉽게 말해, 멋지게 지어 잘 사는 법, 을 고민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쩌면 뻔한 주제를 풀어내는 저자의 내공이 간단치 않다. 16세기 베네치아의 유대인 집단 거주지역이었던 게토 이야기를 현대의 난민 거부 현상과 연결 짓고, 그런 논의 중에 현상학·실존철학을 슬쩍슬쩍 건드리는 식이다. 방대한 분야, 사례, 과거와 현재의 관련 장면들을 선명한 논리에 따라 배열하기보다 땅속줄기 식물처럼 좋게 말하면 자유롭게, 박하게는 산만하게 풀어낸다. 덕분에 독서가 모험이 되지만 가치는 있다. 뭔가 해낸 느낌이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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