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독립운동가도 길렀지 않나" 콧수염 논란이 억울한 해리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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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콧수염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사진은 지난 7월 중앙일보와 인터뷰할 당시의 모습. 김경록 기자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콧수염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사진은 지난 7월 중앙일보와 인터뷰할 당시의 모습. 김경록 기자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트레이드 마크인 콧수염을 고집하는 이유를 털어놨다. 지난 23일 코리아타임스(KT)와의 인터뷰에서인데, 30일 영국 텔레그래프에선 콧수염 부분에 주목해 기사를 따로 게재했다. 해리스 대사의 콧수염이 국제적으로도 화제가 되는 모양새다.

해리스 대사는 인터뷰에서 “군인으로서의 경력과 외교관으로서의 앞으로의 인생을 구분 짓고 싶었다”며 “(외모 면에서) 차이를 주고 싶었는데 키가 커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더 젊어질 수도 없지 않나. 하지만 콧수염은 기를 수 있었고, 그래서 길렀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텔레그래프는 그러나 그의 이같은 스타일링이 한국에서 “예의가 없고(disrespectful) (한국을) 모욕하기 위해 계산된 것(calculated slight)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앞서 13일 국민주권연대와 청년당 등 일부 반미 단체들은 서울 종로구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해리스 (대사) 참수 경연대회’를 열어 논란을 불렀다. 군 출신인 해리스 대사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의 한국 부담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요구를 여러 차례 밝힌 후 국내에선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당시 집회에선 “식민지 총독 행세하는 해리스를 추방하라” 등의 구호가 등장했다. 일부 과격한 참석자들은 해리스 대사의 사진에서 콧수염을 뜯어내는 퍼포먼스를 했다.

국민주권연대, 청년당 관계자들이 12월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KT 광화문지사 앞에서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의 콧수염을 떼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주권연대, 청년당 관계자들이 12월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KT 광화문지사 앞에서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의 콧수염을 떼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텔레그래프는 “미국 트럼프 정부가 최근 방위비 분담금을 한국 측에 대폭 인상할 것을 요구하면서 해리스 대사가 대부분의 비난 공격(brunt)을 감당해왔다”고 전했다. 텔레그래프는 또 해리스 대사의 모친이 일본인이라는 점도 한국에선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텔레그래프는 “(조선을) 점령했던 일본의 총독 8명 모두가 콧수염을 길렀다”며 “일부 한국인들은 해리스 대사의 콧수염이 식민 지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고 비난(accuse)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관련 논란에 해리스 대사 본인은 인터뷰에서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내가 내리는 모든 결정은 주한 미국대사로서 내리는 것이지, 일본계 미국인 대사로서 내리는 게 아니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7월 주한미국대사관저인 하비브하우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중인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 70년 전 부친이 해군으로 참전한 한국 땅에 지난해 7월 부임했다. 이라크 참전 등 야전에서 뼈가 굵은 국제안보통이다. 해군 대장으로 지난해 5월까지 미 태평양 사령관을 지냈다. 김경록 기자

지난 7월 주한미국대사관저인 하비브하우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중인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 70년 전 부친이 해군으로 참전한 한국 땅에 지난해 7월 부임했다. 이라크 참전 등 야전에서 뼈가 굵은 국제안보통이다. 해군 대장으로 지난해 5월까지 미 태평양 사령관을 지냈다. 김경록 기자

해리스 대사는 인터뷰에서 일부 반미 대학생들이 지난 10월 주한미국대사관저의 담을 넘어 무단침입을 했던 것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해리스 대사는 "한국은 활기찬 민주주의 국가이고, 한국 국민이 적극적으로 표현을 하는(demonstrative) 것은 멋지다(wonderful)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려면 친정부이든, 반 정부이든, 친미든 반미든 합법적인 방법을 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해리스 대사는 이어 "내 관저에 침입하고 담을 넘는 것은 그런 합법적 방법이 아니다"라며 "사람들을 다치게 할 수 있고 실제로 관저 직원 일부가 상해를 입었다"고 지적했다.

해리스 대사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각에서 비등해진 것은 그가 지난 11월 국회 정보위원장인 이혜훈 바른미래당 의원 등을 관저로 초청해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상향을 압박했다는 것과, 같은 달 국회의원들을 만나 "문재인 대통령이 종북 좌파에 둘러싸여 있다는 보도가 있다"고 언급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다. 해리스 대사는 인터뷰에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이를 부인했다.

해리스 대사는 이에 대해 "기록을 바로 잡고 싶은 마음은 강하게 들지만(tempted), 이 의원과의 대화는 비밀로 하기로 사전에 약속했었다"며 "실망스럽긴 하지만 반론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간접적으로 이 의원의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종북 좌파에 둘러싸여 있다"는 발언과 관련해선 더 직접적이고 강한 반론을 폈다. 해리스 대사는 "어떤 맥락에서도 그런 발언을 공석에서든 사석에서든 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10월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주한외교단 초청 리셥션에서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10월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주한외교단 초청 리셥션에서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혹시라도 해리스 대사가 콧수염을 밀어버릴 생각을 하는 건 아닐까? 답은 ‘노(No)’다. 해리스 대사는 “콧수염을 밀도록 나를 설득하려면 이 콧수염이 우리 (한ㆍ미) 관계를 해친다는 증거를 어떻게든 내놔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는 "한국의 독립운동가들도 콧수염을 많이 길렀는데, 그에 대해선 주목하지 않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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