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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빼고 돌아온 원조 '신동'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

중앙일보

입력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이 29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피아니스트 훌리오 엘리잘데와 공연했다. 7년 만의 내한 독주였다. [사진 크레디아]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이 29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피아니스트 훌리오 엘리잘데와 공연했다. 7년 만의 내한 독주였다. [사진 크레디아]

넘친다 싶을 정도로 팽팽했던 음악은 느슨해졌고, 가득 차 있던 힘도 다소 누그러들었다. 29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선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39ㆍ장영주)의 음악은 한 단계를 지나있었다.

사라 장은 여전사처럼 연주해왔던 바이올리니스트다. 예를 들어 2007년 녹음하고 무대에서도 연주했던 비발디 ‘사계’는 근육질이었다. 해석의 논란이 있었을 정도로 힘이 넘쳤고 음악은 숨 쉴 틈 없이 몰아붙여졌다.

이날 연주는 달랐다. 바이올리니스트들의 단골 작품인 세자르 프랑크 소나타를 고른 그는 강약을 조절해 전체적인 힘을 뺐다. 예전처럼 모든 음을 붙잡는 대신 음악 자체가 흘러갈 수 있도록 한발 물러나기도 했다. 3악장에서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정적인 부분을 연출해냈고 피아니스트에게 강한 소리를 양보하는 의도도 보였다.

사라 장이 11세에 내놓은 데뷔 음반. [사진 중앙포토]

사라 장이 11세에 내놓은 데뷔 음반. [사진 중앙포토]

사라 장의 대표적 수식어는 ‘기교파’였다. 1980년생인 사라 장이 뉴욕 필하모닉, 필라델피아 필하모닉과 협연한 때가 90년이었고 86년에 이미 뉴욕 줄리아드 음악원의 예비학교 시험을 통과하며 주목을 받고 있었다. 첫 음반을 낸 때는 91년. 94년에 베를린 필하모닉과 데뷔했다. 그는 까다로운 곡들을 날렵한 기교로 거침없이 연주해내며 유례없는 신동의 탄생을 알렸다.

이후의 경력은 화려했다. 베를린 필하모닉과 세 번 녹음했으며 쿠르트 마주어, 사이먼 래틀,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마리스 얀손스 등 20세기 이후의 파워풀한 지휘자 거의 모두와 한 무대에 섰다. 영재의 상징, 또는 한국계 연주자의 눈부신 성장사였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 화려하기만 했던 경력은 결을 달리하는 상황이었다. 마지막 음반은 2009년에 나왔고 국내 독주 또한 2012년 이후 7년 만이다.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가 경탄하고 주목했던 신동의 성장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간이었다.

올해 데뷔 30년을 맞은 그의 거침없는 스타일은 그대로였다. 쉽고 간단하게 연주하는 스타일, 매끈하게 뽑아내는 소리라는 트레이드 마크는 29일 서울 연주에서도 살아났다. 다만 아무 흠도 잡을 수 없는 기교라는 측면에서는 약간 달라졌다. 어려운 기교를 보여주기 위한 곡 ‘고블린의 춤’은 97년 ‘심플리 사라’ 음반에서보다 속도가 확실히 느려졌고 작은 실수들도 드러났다. 하지만 본인의 테크닉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음악을 밀고 당기는 솜씨만큼은 오랜 무대 경력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사라 장의 소리는 거의 모든 작품에서 비슷한 개성으로 드러난다. 매끄럽고, 떨림이 풍부하며 자신감 넘친다. 어떤 곡을 연주해도 대중이 잘 받아들이도록 해석해내는 것도 특징이다. 30년 동안 유지해온 사라 장만의 사운드는 이제 새로운 방식으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곡인 라벨 치간느에서 사라 장은 2002년 앨범 ‘파이어 앤 아이스(Fire and Ice)’에서 겁 없이 돌진하던 해석 대신 속도를 통제하고 가면서 전체 틀을 그려내는 방식을 택했다. 한국 나이로 마흔이 된 그를 어린 시절부터 지켜봤던 청중은 많았고, 뜨거운 박수가 무대에 쏟아졌다. 이번 서울 무대는 대전ㆍ용인ㆍ대구 등 9개 도시 이후 10번째이자 마지막 연주였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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