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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로드를 가다 <2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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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하문의 진웅기업을 보고 역시 4대 경제특구 중의 하나인 광동성 산두시에 있는 한두수산 사무소를 방문하기 위해 승용차 한대를 빌렸다.
좀 낡긴 했으나 에어컨과 소형냉장고까지 달린 일제 도요타였다. 빌린 값은 9백원(우리 돈 9만원). 편도만 8시간이 걸리는 거리이므로 사실상 하루를 전세 낸거나 다름없었다.
산두로 가는 길은 다소 지루하긴 했지만 중국 남부의 농촌생활상을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적잖이 흥미로웠다.
집 앞 냇가에서 멱도 감고 낚시도 하는 모습은 우리 시골의 풍경과 흡사했으며 황토에 지푸라기를 섞어 손으로 찍어내는 흙벽돌공장도 간간이 눈에 들어왔다.
벌겋게 녹슨 보온병에 아이스케이크를 담아 파는 소년이 멈춰선 시외버스 곁으로 잽싸게 달려와 붙었으며, 석재가 풍부한 탓에 전봇대와 집안의 담도, 돌기둥을 깎아 세운 모습도 보였다.
시골 공중변소 입구엔 성병치료약 광고가 덕지덕지 붙어있고 시골병원 앞엔 진료과목, 예컨대 치질의 경우 항문그림을 그려놓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문맹률도 꽤 높은 듯했다.
4시간쯤 달려왔을 때 길이 막혀 차가 1㎞이상 밀려있었다. 무슨 일인가 알아보았더니 도로보수공사원들이 작업차량을 길에 두고 모두 점심먹으러 가 통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참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하는 수 없이 꼬박 1시간을 길바닥에 앉아 허비해야 했다.
도로보수작업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는데 이상한 것은 길이 많이 패인 곳은 그냥 두고 아직 다닐만한 길을 파헤치는 것이었다. 작업의 우선순위는 가리지 않고 그저 아무 일이건 하면 된다는 식의 사회주의적 비능률이 몸에 배어 있는 것 같았다.
오후 3시쯤 산두에 도착, 우선 산두특구 관리위원회를 찾았다. 남조선에서 온 기자라는 설명에 특별한 대접을 해주는 것 같았다. 브리핑룸에 데려가 산두특구의 개황과 산업생산전반을 담은 비디오를 보여주며 한국에 돌아가면 산두특구에 관해 좋은 글을 많이 써 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인구 67만명, 외국합작업체 2백여개, 연간생산액 5억원(우리돈 5백억원 상당)인 산두에 한두수산이라는 작은 수산업체가 진출한 것은 87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82년 5월에 설립돼 일본북해도 및 소련 캄차카반도 근처에서 명태와 오징어잡이에 주력했던 한두수산은 새로운 어장개척의 필요성을 절감하곤 85년부터 중국어장연구에 착수했다.
원양어업의 경우 어장이 가까우면 우선 연료가 적게들고 운반시간이 단축됨에 따라 잡은 고기의 선도를 유지할 수 있고 자금회전도 빨라져 그만큼 유리한 점이 많다.
한두수산은 중국어장이 이같이 지리적으로 가까운데다 고급어종도 많을 것이라는 판단아래 중국진출을 굳히고 86년 초 홍콩의 등보산그룹 계열의 수산회사에 출자(지금은 완전히 인수하여 현지법인이 됨), 구체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여러 해안도시 중 산두를 택하게 된 것은 경제특구라는 점과 대형 부두가 6개나 있고 수산업이 주요 산업중의 하나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여러 차례에 걸친 산두시 수산국 관계자들과의 접촉에서 합작진출키로 가계약을 맺은 것은 86년 4월이었다.
회사이름은 산두남해어업개발공사라 짓고 중국측 합작선은 산두시 자림어업발전공사가 맡기로 했다..

<어획량 30% 지불>
말이 합작기업이지 사실 따지고 보면 단순 입어형대에 불과하다. 즉 한두수산이 배를 구입해 중국어장에 투입하고 어획량의 30%를 입어료로 중국측에 지불한다는 내용이다.
다시 말해 우리측의 자본과 어로기술에 중국측의 노동력과 어장이 결합하는 케이스인 것이다.
한두수산은 87년 1월 l5일 일본에서 도입한 l백50t급 중고선 4척을 중국 바다에 처음 띄웠다.
그러나 당장 부닥친 문제가 어장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어느 쪽에서 어떤 고기가 많이 잡히는지 알아야 하는데 이리저리 수소문해 봐도 도움될만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산두시 수산국이나 합작선인 자림어업공사측도 막연히 남해가 좋다는 식의 조언만 할 뿐이었다.
하는 수 없이 중국 남해로 나갔으나 소득은 보잘 것 없었다. 조류의 흐름이나 온도에 따라 형성되는 어군을 파악해야 하는데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의 조업은 바다에서 기름만 태워버리는 꼴이었다,. 가오리나 오징어 등은 좀 잡혔으나 별로 고급으로 쳐주는 고기가 아니어서 돈벌이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고기를 못잡고, 그래서 선원들 급료도 제대로 못주자 당장 선원 구하기도 어려워졌다.
그해 10월까지 그렇게 헤매다보니 회사 살림조차 거덜날 지경이 되었다.
마침내 선체를 산동성 앞쪽의 황해로 틀었다. 바닷바람으로는 이미 겨울인 l1월이었다.
그러나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황해에선 고기가 제법 많이 잡혔다. 그것도 광어·홍어·갈치 등 제법 고급어종이 많았다.
87년도 연간 어획량이 잡어위주로 1천t에 못미쳤던 것이 작년엔 고급어종만으로 1천5백t에 달했다. 중국 진출 후 처음 9개월간 까먹은 돈도 어느 정도 벌충할 수 있었다.
이에 한두수산은 다시 자선을 업어 올 2, 3월에 각각 1백60t급 2척씩 모두 4척의 새 배를 황해어장에 추가로 투입했다.
배 값만도 자그마치 3백80만달러가 들었다.
한두수산은 이에 그치지 않고 올해 초 산동성 석도에 수산회사를 하나 더 개설했다. 산동성 정부 산하의 대어도어업종합공사와 4백만달러의 자본금을 반씩 투자해 만든 회사다.
석도에서 조업중인 배도 5척이므로 한두수산이 현재 중국 어장에 띄워놓은 배는 산두사무소의 8척을 합쳐 모두 13척에 이른다.
고기를 잘 잡다 보니 한때 한두수산 배에 타기를 꺼려했던 중국인 선원들이 요즘은 서로 태워달라고 한다.
어획량에 비례해서 자신들의 수입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한 배에는 보통 기관사·항해사·갑판장 등 주요 직책을 맡는 한국인 선원 6∼7명과 특별한 기술이 요구되지 않는 중국인 선원 12∼13명이 타는데 중국인 선원들의 한달 임금은 1천∼1천5백원이 된다. 일반회사에서 일할 때 한달 월급이 대략 2백원 안팎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중국선원에 대한 급료지불은 한두수산측에서 신경쓸 일은 아니다. 어획량을 3대7로 나눠 3에 해당하는 만큼을 t당 7백달러 씩 쳐줘 합작선측에 현금으로 건네주면 거기서 자국선원들의 급료가 지불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선원에 관한 것이라도 배 위에서의 생활에 필요한 주·부식 및 생활용품 등 은 모두 한두수산측에서 공급해주고 있다. 중국 선원들이 한두수산을 선호하는 것은 수입이 짭짤하다는 것 외에 식사내용이 좋다거나, 명절때면 보너스나 선물을 받는 등 인간적인 대접이 좋은 점도 크게 작용한다.

<교포가 연락업무>
천성적으로 느린데다 일에 대한 책임감마저 없어 처음엔 우리 선원들과 충돌사고까지 벌어져 현지 경찰이 개입하는 해프닝도 있었으나 오랜 시간 같이 일하다 보니 요즘은 인간적인 신뢰감도 그만큼 깊어지고 중국 선원들의 작업기술도 크게 향상됐다.
중국 바다에서 잡은 고기는 약 80%정도가 국내로 반입되며 나머지는 일본·홍콩 등지로 수출되거나 중 국현지에서 판매되기도 한다.
현재 산두 현지 사무소는 자림어업공사측에서 관리하고 있는데 사무소 인원은 중국인 8명과 한두수산 2명으로 돼 있다.
한두측 2명은 현지사장격인 이내훈 부장과 통역 및 서울본사와의 연락업무를 맡고 있는 우리 교포(조선족) 조금열씨다.
한두수산은 현지에서의 어려움으로 우선 중국측의 지나친 간섭을 꼽는다. 우리 자본과 우리 기술로 고기를 잡는데 사사건건 개입하는 일이 많다는 얘기다.
사장은 한두수산의 이부장이 맡고 있지만 그 외에 이사장격인 동사장은 산두시 수산국 부국장이 맡고 있어 출항시간이나 탑승선원 등 모든 의사결정이 중국측의 승낙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
이와 함께 생산성에 관심없이 시간만 때운다는 식의 근무태도 때문에 적잖은 애로가 따른다.

<생산성 기대못해>
산두시나 합작선 관계자들로서는 정해진 월급만 받으면 그뿐, 한두수산이 고기를 많이 잡아 입어료 수입이 늘어나는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결국 어장정보는 현지에시 체험적으로 축적해 나가고 있는데 이같은 과정에서 적잖은 시행착오도 빚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육지에서 공장을 지어 돌리는데도 예상치 못한 변수가 튀어나오게 마련인데 들여다보이지도 않는 바다속을 상대로 돈벌이를 하는 일은 역시 많은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수산업체들은 중국어장에 꾸준한 관심을 쏟고있다.
제원수산·정한수산· 대영어업·일우수산 등 4∼5개 업체가 광동성 및 해남도 등을 무대로 이미 고기잡이에 나섰거나 정부로부터 투자허가까지 받아놓고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수산업 관계자들은 중국 바다가 마냥 황금어장은 아니라며 보다 신중한 투자자세를 충고하고 있다.<글·사진= 차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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