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의석에 눈멀어 국민은 안 보이는 선거법 협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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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선거법 개정을 둘러싼 정치권의 행태가 차마 눈 뜨고는 못 볼 지경이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어떻게든 자기들에게 유리한 선거법을 만들겠다는 당리당략으로 혈안이 돼 있다. 더구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으로 대표되는 선거법 개정안이 협상을 거쳐 누더기가 되면서 국민들이 이해할 엄두도 낼 수 없게 돼 있다. 어처구니없다. 선거가 그들만의 잔치인가.

‘4+1’ 당리당략 혈안, 정치 불신 자초 #이해할 엄두도 못 내는 누더기법 우려

선거법은 게임의 룰인 만큼 여야가 합의해 만들어지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한국당을 배제한 채 ‘4+1’ 협의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라는 걸 만들어 선거법 협상을 진행해 왔다. 거기서 지역구는 250석으로 하고 비례대표 50석 중 30석에만 연동률 50%를 적용하는 안에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민주당을 제외한 정당들이 석패율제 도입을 요구하고, 민주당이 이에 반대하면서 그 협상마저 삐걱거리고 있다. 협상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한 이유는 간단하다. 의석을 한 석이라도 더 갖겠다는 밥그릇 욕심 때문이다. 석패율제는 지역구에서 근소한 표차로 떨어진 후보자를 비례대표로 구제해주자는 것이다. 영호남에서 특정 정당이 독식하는 것을 막는다는 명분이 있다. 하지만 그런 취지나 명분은 이미 오간 데 없다.

민주당은 올 4월 ‘4+1’ 협의체에서 석패율제 취지에 동의해 놓고선 입장을 바꿨다. 민주당이 반대로 돌아선 건 이 제도가 도입되면 석패율제를 노린 정의당 후보들이 완주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범여권 표가 분산돼 수도권 박빙 우세지역을 내줄 수 있다는 우려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실제 20대 총선 당시 1000표 미만의 ‘초박빙 지역’이 13곳이었고 상당수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석폐율제 도입에 찬성하는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2014년 공개 석상에서 석패율제에 대해 “정치 개혁이 아니라 정치 개악이다. 거물 정치인을 위한 정치 보험제에 불과하다”고 성토한 적이 있다. 도대체 모두들 이제 와서 말을 바꾼 이유가 뭔가.

한국당은 ‘4+1’ 협의체가 연동형제를 밀어붙이면 ‘비례한국당’을 만들겠다고 한다. 이른바 ‘위성정당’을 만들어 정의당 등 다른 군소정당에 갈 연동형 비례 의석을 차지하겠다는 것이다. 선거법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니 꼼수가 버젓이 전략으로 포장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다. 이런 식으로 논의가 진행되다 누더기 법이 통과라도 될 경우 군소정당이 총선에 난립해 “1m 투표용지를 받아들 것”이란 조롱까지 나온다.

정치권은 지금이라도 자성해야 한다. 국민이 이해하지 못하고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선거법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꼼수와 누더기로 얼룩진 선거법 협상을 보는 국민은 정치권의 밥그릇 싸움에 절망할 수밖에 없다. 정치권이 스스로 ‘정치의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그래놓고 총선에서 표를 달라고 손을 벌릴 자신들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