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동형 비례제 유례없는 사표 생겨···되레 민주당에 불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성우 교수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오른쪽)가 15일 국회에서 자유한국당 주도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성우 교수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오른쪽)가 15일 국회에서 자유한국당 주도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연합뉴스]

연동형 비례대표제, 연동형 캡(Cap·상한), 석패율제, 이중등록제….
정치권의 밥그릇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 선거법 개정안 협상 과정에서 등장한 용어들이다. 여야의 이전투구식 논의에 대한 정면 비판이 한 법대 교수에 의해 제기됐다. 헌법 전문가인 지성우(50)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다.

지 교수는 연동형 비례제의 본고장이랄 수 있는 독일에서 헌법학 박사 학위를 땄다. 국회에서 논의되는 각종 선거법의 위헌 논란이나 문제점에 대해 최근 목소리를 내면서 ‘선거법 전문가’로 불리기도 한다. 지 교수는 20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최근 논의되는 연동형 비례제가 시행되면 더불어민주당이 이득을 본다거나, 군소정당에 대한 표심이 정확하게 반영될 거라는 일각의 주장은 모두 틀렸다”며 “유례없는 사표(死票)가 발생하고 민주당에 불리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자유한국당이 주최한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연동형 비례제 반대 의견을 거듭 밝히기도 한 그는 “정치적 입장이 아닌 학자적 양심에서 반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어떤 정당이 이득을 보고 손해를 보는지는 관심 없다. 다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갖 정치 꼼수와 정치 문화 퇴행을 우려하는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지 교수와의 일문일답.

Q. 연동형 비례제에 부정적인 이유가 뭔가

“정치인들이 눈앞의 빈대(의석 확보) 잡자고 초가삼간(선거 제도) 다 태우는 격이라서다. 현 선거법 하에서도 틈만 나면 계파가 갈라지고, 신생 정당이 등장하는데 연동형 비례제가 도입되면 어떻게 되겠나. 비례대표용 급조 정당이 우후죽순 늘면서 유권자가 ‘1m 투표용지’를 받아드는 날이 올 수도 있다. 당장 한국당에서 ‘비례한국당’ 같은 위성정당을 만들어 대응한다는 얘기까지 나오지 않나. 이런 전개 자체를 부정적으로 본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야3당 선거법 합의문을 읽고 있다. 왼쪽부터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손 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 유성엽 대안신당 창당준비위원장. 김경록 기자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야3당 선거법 합의문을 읽고 있다. 왼쪽부터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손 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 유성엽 대안신당 창당준비위원장. 김경록 기자


Q. 거대 양당 체제에서 군소 정당에 힘을 보탠다는 측면도 있지 않나

“해외 실패 사례가 있다. 알바니아는 2005년 총선에서 군소정당에 힘을 실어준다는 명분 등으로 연동형 비례제를 실시했는데, 양대 정당인 사회당과 민주당에서 꼼수를 썼다. 두 당에서 비례용 급조 정당을 4~5개 만들어 표를 휩쓸었다. 얼마 뒤엔 급조된 정당을 다시 통합했다. 표심을 농락했다는 비판이 일자 2008년 이 제도가 폐지됐다. 알바니아의 ‘10년 전 실책’이 우리나라에서 재연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Q. 연동형 비례제가 유권자 표심을 정확하게 반영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근거가 부족한 주장이다. 연동형 비례제 하에서 만약 민주당의 정당득표율이 40%라면 지역구와 비례를 합한 최대 확보의석은 120석(300석×40%)이다. 그런데 민주당이 지역구에서 120석을 얻으면 비례 의석은 한 석도 가져갈 수 없다. 민주당에게 간 정당 득표는 모조리 사표가 되는 거다. 반면 한국당에서 비례당을 급조해 정당 투표를 유도한다고 가정하면 한국당은 실제 지지보다 훨씬 많은 의석을 챙길 수 있다. 몇몇 민주당 관계자들도 사석에서 이 말을 듣고 표정이 굳어지는 분들이 있었다. 표심 왜곡 우려가 크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공수처법·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에서 발언을 하는 모습. [뉴스1]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공수처법·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에서 발언을 하는 모습. [뉴스1]


Q. 한국당과 너무 입장을 같이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선거법 개정에 반대하는 입장은 같을지라도 나는 특정 정당의 선거 결과나 정치적 이득에는 관심이 없다. 석패율제를 예로 들면 군소 정당의 유명 정치인들만이 아니라 한국당의 일부 노회한 정치인들도 함께 이득을 누릴 수 있지 않나. 나는 이런 것들 모두를 부정적으로 본다. 학자의 입장에서 선거법 개정 뒤 부작용과 꼼수로 선거판이 혼탁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다."

Q. 위헌 논란은 어떻게 보나

“2001년 헌법재판소는 지역구 투표 결과를 비례대표에 반영하는 1인 1표제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지역구 선거와 비례대표 선거는 원칙적으로 별개라는 것이다. 그런데 연동형 비례제는 지역구 선거 결과가 비례대표 배분에 영향을 미치게 돼 위헌 소지가 있다. 향후 헌법재판소에서 효력정지 가처분을 인용하면 소모전만 치른 채 원래 선거제로 ‘원점 회귀’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지 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덧붙였다. “선거법이 이대로 바뀐다면 여야 관계 없이 패배한 쪽은 승복하지 못할 것이고, 패배한 정당에 표를 행사한 국민도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총선 뒤에도 후유증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최근 논란이 되는 연동형 비례제 등 선거법 개정안에는 ‘승복’의 개념이 없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