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고령자들,의료비 더 내라"…초고령 日사회에 승부수 던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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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정도의 소득이 있는 75세 이상의 ‘후기 고령자’들이 병원 창구에서 부담하는 의료비 부담을 2022년 부터 현행 10%에서 20%로 올리겠다는 방침을 일본 정부가 제시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9일 임시국회 폐회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9일 임시국회 폐회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현재 75세 이상의 의료비 부담은 원칙적으로 10%, 현역세대 때와 같은 소득이 있는 세대는 30%를 부담했다.

75세 이상 의료비 부담 후년부터 20%로 #연금 수령 개시 연령 상한도 75세로 올려 #"현역 세대 부담 증가 더 이상 안돼" 판단 #자민당내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고" #임기 만료 2년 앞두고 '정치적 유산'모색

그런데 지금까지 10%였던 세대들 가운데 ‘일정 소득이 있는 경우’의료비 부담을 20%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19일 아베 신조(安倍晋三)총리 주재 회의에서 정리한 중간보고서에서다.

2022년도는 1947~49년 태어난 일본의 전후 베이비붐 세대(단카이 세대)가 75세에 들어서는 시기다.

니혼게이자이(닛케이) 신문은 “연금과 의료, 간병 등 사회보장비 지급액이 2017년 약 120조엔에서 2025년 140조엔으로 불어날 전망”이라며 “일본의 사회보장제도는 현역세대의 보험료로 고령자에 대한 비용 지급을 지탱해왔지만, 이대로라면 현역세대의 부담이 너무 무겁게 된다”고 했다.

급격하게 더 불어날 수 밖에 없는 국가 전체 사회보장 비용의 부담을 현역 세대 뿐 아니라 75세 고령자들도 함께 나누자는 게 이번 보고서의 기본 발상이다.

아베 총리는 회의에서 “현역세대의 부담 상승을 억제하면서 모든 세대가 안심할 수 있는 제도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보고서엔 동네병원의 소개장없이 대형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부담을 늘리는 내용도 포함됐다.

대형병원의 초진 때 부담하는 액수를 현행보다 1000엔~3000엔(1만원~3만원)늘려
동네병원과 대형병원의 의료 분담 체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 역시 사회 전체의 의료비 부담 경감을 위한 조치다.

한편으로는 희망자들에게 70세까지의 취업기회를 제공하도록 기업들에게 ‘노력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도 보고서에 포함됐다.

현재 70세가 상한인 연금 수령 개시 연령도 75세로 끌어올린다. 75세부터 연금을 받을 경우 매달 받는 연금액은 최대 84%까지 늘어난다.

닛케이에 따르면 이번 일본 정부의 방침은 아베 총리의 ‘결단’에 의해 관철됐다.

의료 부담을 추가로 지게 되는 고령자층의 표심을 우려해 자민당내에도 반발이 적지 않았다.

일본 정부도 당초엔 연금 수령 연령을 높이는 선에서 논의를 진행했지만, 아베 총리가 “도대체 뭘 하고 있느냐. 의료비 부담 증가는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고 독려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고 한다.

닛케이는 “2012년말 총리에 복귀한 직후부터 아베 총리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관방장관 등과 함께 ‘(사회적인 반발이 예상되는)사회보장 개혁은 정권 마지막에 하자’는 방침을 세웠다”고 했다.

일본의 '주문을 잘못 알아듣는 식당'에서 치매 노인들이 손님들에게 서빙을 하고 있다. 치매 노인들이 주문과 다른 엉뚱한 음식을 가져와도 불평하는 손님은 한명도 없다. [사진 '주문을 잘못 알아듣는 식당' 실행위원회 페이스북]

일본의 '주문을 잘못 알아듣는 식당'에서 치매 노인들이 손님들에게 서빙을 하고 있다. 치매 노인들이 주문과 다른 엉뚱한 음식을 가져와도 불평하는 손님은 한명도 없다. [사진 '주문을 잘못 알아듣는 식당' 실행위원회 페이스북]

그만큼 사회보장 개혁이 민감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의 임기는 2021년 9월까지로 앞으로 2년이 채 남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퇴임전에 모든 절차를 마무리하기 위해 이 시점에 칼을 뽑아 들었다는 것이다.

당초 관할 부처인 후생노동성은 관련 법안 제출 시기를 2021년 정기국회로 잡았으나, 아베 총리가 “내 손으로 확실하게 법안을 성립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2020년으로 조정됐다.

아베 총리는 지난 11월 일본 역대 총리들 중 재임 기간 1위에 올랐지만 다른 총리들과 비교할 때 자신있게 내놓을 만한 '정치적 유산'이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보장 개혁에 더 몰두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닛케이는 그러나 “2025년엔 75세 이상의 고령자가 전체 인구의 6분이 1을 차지하게 되는데, 이번 조치로는 불충분하다”며 “2020년 6월 나올 최종보고서엔 더 확실한 방안이 제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k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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