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경찰의 ‘하명수사·선거개입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확보한 송병기(57) 울산시 경제부시장의 문건에 청와대를 의미하는 BH와 당시 장관들의 일정이 기록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이용해 송철호(70) 울산시장이 2018년 6월 지방 선거 공약을 만드는 과정까지 기록돼 있어 파장이 일 것으로 전망된다.
20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부장 김태은)는 지난 18일 국무총리실 민정실 소속 문모(52) 사무관 컴퓨터를 압수수색해 김기현(60) 전 울산시장 첩보 생산 과정이 담긴 문건을 확보했다. 문 사무관은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행정관으로 근무하던 2017년 10월 송병기 부시장으로부터 김 전 시장 측근들 비리 의혹을 제보 받아 첩보 문건을 생산했다.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실에 따르면 송 부시장이 제보한 4쪽짜리 문건이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경찰청을 거쳐 울산지방경찰청에 하달되는 과정에서 일부 비리 의혹이 추가·삭제되고 죄명과 법정형이 덧붙여지는 등 가공된 정황이 포착됐다. 예를 들면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이 조경업체 2~3곳 수의 계약을 몰아줬다는 제보 내용을 청와대가 경찰청에 하달하는 문건에는 삭제하는 식이다.
검찰은 2017년 10월쯤 송 시장을 도운 송 부시장의 업무수첩에서 청와대 관계자들이 선거 전략과 공약을 수립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의심할 만한 단서도 포착하고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지난 16일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온 김기현 전 울산시장은 “‘BH 회의’라고 적힌 송 부시장 업무수첩 등 양측이 선거와 관련해 논의를 주고받은 것으로 보이는 물증을 검찰 조사에서 확인했다”며 “어떻게 이렇게 치밀하게 계획했을까 놀랐다”라고 말했다.
김 전 시장은 이어 “청와대가 송철호 캠프의 실질적 선거대책본부 역할을 하면서 공약과 예산 반영, 장관들 현장 방문, 청부성 하명수사까지 했다는 매우 강력한 정황 증거들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업무 수첩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뜻하는 VIP의 면담 자료와 김경수 경남도지사 일정 등이 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김은경 환경부 장관은 2017년 10월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방문해 지역 주민들과 함께 보전 방안과 물 공급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김 전 시장은 “검찰 조사에서 송 부시장의 업무수첩에 ‘물 공급’과 관련된 내용이 적혀 있었다”며 “송 시장이 후보가 되기 전부터 공약으로 어떻게 이용할 지 논의가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김부겸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도 2017년 10월 울산지방경찰청과 테크노산업단지를 방문했다. 테크노산업단지 내에는 정부 예산 10억원이 들어가는 국립3D프린팅연구원이 지어질 예정이었다. 송철호 시장도 2018년 6월 선거 당시 이 사업을 강조했고 당선 뒤에도 공약 이행 사업으로 활용했다. 김 전 시장은 “당일 김부겸 장관에게 저녁에 만나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황운하 당시 청장과 송 시장 측근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야권에서는 송병기 부시장의 업무수첩에 ‘BH회의’라는 용어가 등장한 만큼 청와대 고위층 조사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야권 관계자는 “수사 증거물에 적혀 있는 관련자 소환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수사에서 발견된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 수첩처럼 파급력있는 증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꼼꼼하게 받아 적은 수첩은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 비서관의 휴대전화와 함께 국정농단 사건의 대표적인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이 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8월 안종범 수첩 중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부분에 대해 증거 능력을 인정했다.
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