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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국 칼럼

민주주의야, 살아는 있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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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국회의원이 편하게 당선된 때가 있었다. ‘유신’ 시대다. 여야가 나란히 당선되는 1구 2인 선거구제로 바꿨다. 여야 합의? 그런 것 없다. 국회를 해산하고, 헌법까지 바꿨다. 1973년 제9대 총선에서 집권당인 공화당은 73개 선거구에서 73명이 당선됐다. 제1야당인 신민당은 52석을 얻었다. 제1야당에 편안한 자리를 보장해 입을 막았다.

절대 권력, 대통령 선거 몰두해 #상대 인정 않고 척결 대상 삼아 #입장 바뀌었을 때도 생각하며 #상생할 수 있는 제도 만들어야

과반수? 어렵지 않았다. 전체 의석의 3분의 1인 73명을 비례대표 대신 사실상 대통령이 임명했다. 판사도 대통령이 임명했다. 야당은 겁에 질려 있었다. ‘효율성’, ‘생산성’을 너무 좋아할 게 아니다. 민주주의는 그 정도 비용을 치를만한 가치가 있다. 12·12 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는 민망했던지 다시 비례대표제로 돌렸다. 그래도 비례의석(92석) 가운데 3분의 2(61석)를 지역구 당선자가 가장 많은 정당이 차지했다. 나머지를 다른 정당에 의석 비율로 나눠줬다. 6월 항쟁 이후 88년 13대 총선 때 제1당 프리미엄이 비례 의석의 절반으로 줄었고, 92년이 되어서야 여당 프리미엄이 없어졌다.

김영삼 정부인 96년 비례대표 의석 배분 기준을 의석 비율에서 정당 득표율로 바꿨다. 김대중 정부 때 법을 고쳐,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17대 총선 때부터 비례대표 투표를 별도로 했다. 유권자의 정당 지지율에 가깝게 바꿔 군소정당의 불이익을 줄여가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민주화의 길을 걸어왔다.

민주주의는 상생의 정치다. 짧게만 돌아봐도 분명히 드러난다. 권력자는 국회를 무력화했다. 쓸데없는 맹장 취급했다. 권력의 힘으로 그런 이미지를 씌워 나갔다. 집권당이 안정 의석을 차지하는 꼼수를 썼다. 효율성, 생산성을 내세웠다. 제1야당에 떡고물을 나눠주며 입을 막았다. 그렇지만 결국 대통령의 권한은 줄이고, 국민이 투표한 만큼 의석을 차지하는 방향으로 달려온 것이 민주화다.

민주화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민주주의가 위기라고 한다. 국회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육탄전을 벌이는 ‘동물국회’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식물국회’다. 국민이 가장 불신하는 기관이 됐다. 국회를 없애자는 말까지 나온다. 제정신인가 싶지만 그게 여론이다. 힘들여 민주화의 길을 걸어왔는데, 민주주의는 오히려 질식하고 있다. 왜 그런가. 우선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다. 집권당은 야당을 청산해야 할 ‘적폐’로 생각한다. 야당은 집권당을 체제전복 세력으로 몰아간다. 그러니 대화가 될 리 없다. 대통령 임기 절반이 지나도록 청산과 장외 집회로 대치해 왔다.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공명지조(共命之鳥)’를 뽑았다. 이기려 기를 쓰지만, 상대를 죽이면 자신도 함께 죽는다는 뜻이다. 정치를 왜 하나. 아무리 정권 장악이 목표라도 나라를 살리겠다는 포장마저 찢어버리면 안 된다.

정치를 전쟁으로 생각하다 보니 물불을 안 가린다. 경쟁 정당을 국정 파트너가 아니라 제거 대상으로 생각한다. 유치한 편 가르기, 팬덤 정치에 빠졌다. 내 편은 무엇이든 용서한다. 민주화 운동 과정의 고생을 보상하려는 온정주의가 스며들고, 저도 모르게 과거 정부를 흉내낸다. 진실은 가려지고, 눈싸움하듯 승패에만 집착한다. 기껏 민주화해서 기득권의 바통만 넘겨받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나.

거대 정당끼리는 적대적 공생을 한다. 지역주의에 기생한 거대 정당이 전국을 두 쪽으로 나눠 가졌다. 다양성, 톨레랑스, 소수자 보호, 공정은 사치스러운 선거용 구호로 전락했다. 경상도 대기업과 전라도 대기업이 담합하는 사이 골목 상권은 죽어간다. 골목 상권에 우선권을 주려는 것도 아니다. 같은 가격으로 경쟁하자는 데도 매출 1, 2위만 남고 나머지는 다 문을 닫으라고 한다. 형님들이 싸우는데 비키라는 것이다.

결정 장애에 빠졌다. 다수결이 인정되지 않는다. 동물국회를 막으려 했더니 식물국회가 됐다. 대화와 타협을 유도하려는 제도가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 제왕적 대통령제 탓이다. 모든 힘이 대통령에게 몰려 있다. 5년마다 정권을 차지하는데, 모든 힘을 모은다. 나라를 살리는 토론이 아니라 경쟁 정당에 흠집을 내 무조건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는 게 목표다.

민주주의는 어디로 갔나. 과거에 향수를 느끼는 사람도 있다. 경제 개발의 효율성은 평가하지만 민주주의의 가치를 포기할 수는 없다. 역사 속의 영웅은 역사 속 인물일 뿐이다. 영토를 넓힌 군주와 번영을 구가한 독재자들은 그 시대 가치에 충실했다. 지금 우리에게 더 소중한 건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상생의 정치다. 선거법이 개정되든 말든 다음 국회에서는 대통령의 권한을 더 줄이는 제도 개혁에 착수해야 한다. 무한보복의 수레바퀴는 멈춰야 한다. 과거보다 미래다. 군소정당에 정당한 지분을 준다고 보수와 진보의 경계까지 바뀌지는 않는다. 정책이 같은 정당의 연정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안정된 연정이 가능하다면 다수결이 존중돼야 한다. 선진화법은 고육지책이다. 눈앞의 손익만 따질 게 아니다. 입장이 바뀔 때도 생각해 제도화해야 한다. 그렇게 발전해온 게 민주주의다.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