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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돈키호테 따로 없는 18번째 부동산 시장 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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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부가 18번째 부동산 시장 안정화 대책을 내놓았다. 대한민국 경제정책에서 정부 정책이 이렇게 남발된 적이 또 언제 있었나 싶다.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12·16 대책을 보면 돈키호테가 따로 없다. 분양가 상한제를 수도권 322개 동으로 확대하고, 15억원 초과 아파트 주택담보대출 금지와 함께 아파트의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80%로 대폭 강화하는 방향이다. 또 9억원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현행 40%에서 20%로 축소한다. 1주택자의 장기보유특별공제 요건도 강화된다. 그러면서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은 청와대 고위직에 “수도권에서 집 한 채를 제외한 나머지를 처분하라”고 권고했다.

시장 역주행으로는 집값 불안 못 막아 #박원순 “집값 잡을 권한 달라” 부채질 #공급 늘리고 거래세 낮추는 게 정공법

이런 대책으로 집값이 잡히면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이번 정책도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고강도 규제가 더해지면서 다주택자로부터 일부 매물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시장 원리를 거슬러서는 백약이 무효인 현실 때문이다. 이날 발표에 앞서 17차례 대책이 나올 때마다 시장이 어떻게 됐는지만 돌아보면 왜 문제인지 알 수 있다. 융단폭격처럼 쏟아낸 금융·분양·세금 규제가 거듭될 때마다 공급 위축 심리가 확산하면서 시장에 집값이 오를 거라는 시그널만 줬다. 현 정부 출범 당시 6억635만원이던 서울 아파트 중위 가격은 지난달 8억8014만원으로 45% 뛰었다. 내년에 3기 신도시 토지보상비 40조원이 풀리면 서울 아파트값 뜀박질은 더 탄력받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서울 집값 폭등이 강남에서 강북으로 더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 서울 집값 폭등을 바라보는 지방 거주자와 무주택자의 상대적 박탈감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공급 없는 부동산 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 주택도 오래 되면 낡아서 새 집 수요는 끊이지 않고, 주거 조건이 좋은 곳으로 옮기려는 이사 수요도 끝이 없기 때문이다. 공급이 줄면 가격이 오른다는 것은 상식과 본능으로 알 수 있는 세상의 이치다. 그런데도 현 정부의 정책 기조는 오직 “집을 팔라”고 압박하는 일방통행이다. 그제는 박원순 서울시장까지 불 난 집에 부채질하는 식으로 가세했다. 박 시장은 페이스북에 “나에게 집값 잡을 권한을 제발 달라”고 정부에 호소했다. ‘5년간 임대료 동결’ 정책을 도입한 베를린의 사례까지 거론했는데 서울 최고 번화가 신사동의 공실률이 18%로 치솟은 사실을 알고 있다면 이런 말이 나올 수 없다.

시장을 역주행하는 규제만으로 집값을 잡겠다는 발상은 실현 가능하지도 않은 정치적 선동이고 희망고문에 불과하다. 결국 지금까지 정부 대책이 추가될 때마다 집값에 기름을 붓는 결과만 초래했을 뿐 아닌가. 비이성적 시장 역주행을 당장 멈춰야 한다. 부동산을 경제논리에 맡겨 시장의 흐름대로 가게 놔둬야 한다. 급격히 올리고 있는 보유세는 인상 속도를 조절하라. 보유세를 올리는 만큼 거래세를 낮춰 출구를 마련해줘야 한다. 무엇보다 공급을 늘려 집값이 안정될 것이라는 신호를 줘야 한다. 취약계층의 주거는 이명박 정부 때 효과를 거뒀던 보금자리 주택 같은 공공주택을 늘려 해결해야 한다. 시간이 걸려도 시장에 맡겨라. 그것만이 집값 폭등을 멈추고 시장을 정상화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