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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박기에 구타ㆍ성폭행까지…대학교 운동선수 인권침해 실태

중앙일보

입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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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운동선수 3명 중 1명꼴로 선배나 코치, 감독으로부터 신체적인 폭행과 ‘막말’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1명은 성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16일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최영애)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은 ‘대학교 운동선수 인권실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102개 대학 운동선수 4924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인권위 조사 결과, 응답자 중 1613명(33%)이  신체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언어폭력과 성폭력을 경험했다는 응답자 수도 각각 1514명(31%)과 473명(9.6%)에 달했다. 인권위는 “조사 결과 초중고 학생들보다 오히려 성인인 대학생 선수들에 대한 일상적인 폭력과 통제가 더욱 심각하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달 인권위가 발표한 ‘초중고 학생 선수 인권실태 전수조사 결과’에서는 이 절반가량인 15.7%가 언어폭력을, 14.7%가 신체폭력을, 3.8%가 성폭력을 당했다고 응답했다.

“라이터ㆍ옷걸이ㆍ전기 파리채로 맞았어요” 
신체폭력을 경험한 학생 중 15.8%는 일주일에 1~2회 이상 상습적인 폭력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자주 일어난 신체폭력 행위는 ‘머리 박기ㆍ엎드려 뻗치기(26.2%)’였다. ‘손이나 발을 이용한 구타 행위(13%)’가 뒤를 이었다. 명시적인 폭력 없이 “선배가 밤새도록 복도에 세워뒀다” “샤워실에 단체로 집합한 채로 욕설을 들었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신체폭력 가해자는 주로 선배 선수(72%)였다. 가해는 주로 기숙사(62%)에서 이뤄졌다.

“부모님이 보시는 앞에서 감독님이 저를 빼라며 소리쳤어요. 창피했어요”
‘막말’도 대학 운동선수에게는 일상이었다. 언어폭력을 경험했다는 응답자 대부분은 경기장(88%)에서 선배 선수(58%)나 코치(50%) 등에게 욕설이나 비난, 협박,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듣고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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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 주기 물어보면서 ‘생리할 때 기분이 어떠냐?’ (고 말했어요)” 
또한 성폭력을 경험했다는 응답자 중 절반가량은 ‘특정 신체 부위의 크기나 몸매 등 성적 농담을 하는 행위(4%, 203명)’를 겪었다고 답했다. 123명(2.5%)의 응답자는 ‘운동 중 불쾌할 정도의 불필요한 신체접촉 행위(2.5%, 123명)’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조사 결과 ‘가슴이나 엉덩이, 성기 등을 강제로 만짐(1.2%)’, ‘신체 부위를 몰래 혹은 강제로 촬영함(0.7%)’과 같은 심각한 강제추행이나 불법촬영도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강제로 성행위(강간)를 당한 경우’도 2건 있었다.

여학생은 언어적인 성희롱에 더 많이 노출됐지만, 남학생은 신체적 성희롱에 더 많이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 여자 선수들은 주로 훈련소에서 남자 선배 등에 의한 언어적 성희롱을, 남자 선수들은 주로 숙소에서 남자 선배와 남자 코치 등에 의한 신체적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올해 국내 모 체육대학 기숙사 규정. [중앙포토]

올해 국내 모 체육대학 기숙사 규정. [중앙포토]

자유 없는 '합숙' 생활…인권위 "자기결정권 침해" 

한편 인권위에 따르면 대학 운동선수들의 자기결정권 역시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 선수 가운데 1088명(26%)은 “부당하게 자유 시간, 외출ㆍ외박을 제한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 중 84%는 현재 합숙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엄격한 통금과 점호 규정 속에서 생활하고, 외출이나 외박을 하는 경우 일일이 사유와 행선지 등을 보고하고 허가를 받아야 했다.

대학 운동선수들은 과도한 운동량으로 인해 운동과 학업ㆍ동아리 활동 등을 병행하기 힘든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교 학생 선수 중 76%는 주말과 휴일에도 운동하고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 중 38%는 하루에 5시간 이상 운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 선수 중 60%는 학교 행사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 특별조사단. [연합뉴스]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 특별조사단. [연합뉴스]

인권위는 “대학생임에도 일반학생들과 함께하는 동아리 활동 등 대학생활을 온전히 경험하기 힘들 뿐 아니라, 운동부만 따로 생활하는 합숙소 생활에 대한 과도한 규율과 통제로 인해 인간다운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대학교 학생 선수들의 자기결정권이 억압받고 있으며, 성인 대학생으로서 누려야 하는 자율 대신 관리라는 명목으로 통제된 삶을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운동 중심의 운동부 문화 해체 ▶자율 중심의 생활로의 전환 ▶일반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는 통합형 기숙사 운영 방식으로 전환 등을 개선안으로 제시했다.

이병준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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