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정(78) 전 국회의장은 15일 “정당이 작은 이익을 탐하다 대의를 놓치면 남는 건 국민의 정치 불신과 혐오뿐”이라고 말했다. 임 전 의장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패스트트랙 대치 정국에 대해 “여야가 대화와 타협을 않겠다는 건 의회 기능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파행 국회, 정치원로에게 듣는다
그는 “정쟁이 없을 수는 없지만 어디까지나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의회주의 대원칙은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14~17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임 전 의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 직후인 2002년 12월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으로 일했고, 17대 국회 후반기인 2006년 6월부터 2008년 5월까지 국회의장을 지냈다.
- 여야의 선거법 개정안 협상이 좀체 풀리지 않는데.
- 제1야당이 자신의 내용을 갖고 주장을 펴야 하는데, 내용 없이 주장만 펴면 타협이 안 된다.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 태도로는 안 된다.
- 한국당은 선거법과 검찰개혁 법안을 양대 악법이라며 국회 로텐더홀에서 무기한 농성을 벌이고 있다.
- 대화를 안 하겠다는 건 의회 기능을 포기하겠다는 얘기다. 내 주장대로 안 되면 아무것도 안 된다? 야당이 일방적으로 여당 노릇 하겠다는 것 아닌가.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 ‘왝 더 독’(Wag the Dog)이다.
- 의장 재직 당시엔 총선을 앞두고 여야 대립이 없었나.
- 그때는 없었다. 선거구 획정이 무난하게 처리됐다(※임 전 의장이 국회의장이던 2008년 1월 18일 여야는 합의로 제18대 총선 선거구획정위를 출범하고 한 달 뒤인 2월 21일 지역구 2곳을 늘리고 비례대표는 2석 줄여 의석수 299석을 유지하는 선거구획정안을 확정했다)
임 전 의장은 “양보는 좀 더 큰 쪽이 하는 것”이라며 여당에 대한 주문도 잊지 않았다.
- 국회 파행에 민주당 책임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는데.
- 지금 민주당이 군소 야당의 다양한 요구에 둘러싸여 운신의 폭이 좁은 것 같은데, 어찌 됐든 밤을 새워서라도 타협안을 만들 생각을 해야 한다. 양보라는 건 어쩔 수 없이 (세가 더) 큰 쪽에서 해야 한다. 소수의 목소리를 존중해야 한다.
- 협치의 정치가 아쉽다는 얘기도 들린다.
- 협치도 결국 서로 간 대화와 양보가 전제될 때 쓸 수 있다. 어느 한쪽 일방으로만 가지 말라는 게 협치의 근간이다.
-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어떻게 생각하나.
- 바깥에 있는 사람이 구체적인 수치를 놓고 말하긴 어렵다. 적어도 민의를 좀 더 정확하기 반영하기 위한 ‘보완’의 의미는 있다고 본다.
-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법 등의 논의는 어떤가.
- 여야가 어느 정도 절충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야당도 공수처는 반대하지만, 검ㆍ경 수사권 조정은 필요하다고 보는 것 아닌가. 수사 권력의 민주화로 가는 여정이다.
의회주의자로 불리는 임 전 의장은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의 본질이 20대 국회 마지막에 제 기능을 못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면서 “각 정당이 당파적 이익으로 큰 원칙을 버리면 정치 불신과 혐오만 남는다”고 강조했다.
김형구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