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국회, WTO 개도국 포기 '당근' 내민 공익형 직불금 찔끔 증액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국회가 내년 도입할 예정인 '공익형 직불제' 예산을 당초 논의 범위 하한선인 2조4000억원으로 확정했다.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2조2000억원)보다 2000억원 늘었다.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에서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한 대안으로 추진한 것을 고려하면 예산 규모가 작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내 개발도상국 지위를 최종 포기 선언한 10월 오후 대전 성북동 들녘에서 농부가 콤바인을 이용, 벼베기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내 개발도상국 지위를 최종 포기 선언한 10월 오후 대전 성북동 들녘에서 농부가 콤바인을 이용, 벼베기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국회는 이런 내용을 포함한 2020년 예산안을 10일 오후 확정했다. 공익형 직불제는 쌀 지원 중심의 현행 직불제도를 개편해 농가 전체의 소득을 안정화하자는 취지의 제도다. 기존 흩어져 있던 밭 농업직불제·쌀소득보전고정직불제·친환경 농업직불제 등 7개 직불금을 하나로 합쳐 시행한다. 재배면적이 넓을수록 많은 소득을 보전받던 기존 직불금 제도와 달리 소농일수록 지급 규모가 커지고, 대상 농가도 확대해 쌀 재배 농가에 혜택이 편중되던 문제점도 개선하는 게 골자다.

공익형 직불제는 지난 10월 정부가 WTO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면서 관련 예산 증액 등 논의가 본격화했다. 개도국 지위를 내려놓으면 17% 이상 지정할 수 있던 특별 민감 품목을 4%로 낮추고 관세를 인하하는 등 농가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공익형 직불금은 환경 보전 등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인정해 지급하는 것으로, WTO가 규제하는 보조금에 해당하지 않는다.

당초 국회 농해수위는 이 같은 공익형 직불제의 순기능을 인정해 해당 예산을 2조4000억~3조원 규모로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그러다 지난달 8일 열린 전체회의에서 논의 범위의 최고액인 3조원을 의결했다. 그러나 최종 예산이 이보다 6000억원 삭감되면서 농가 반발이 예상된다. 경대수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달 5일 열린 전체회의에서 “지난 3년간 직불금 평균 지급 규모가 2조2000억원이 넘은 만큼 개도국 포기대책으로는 부족하다”며 “최소 3조원으로 하고 농식품부 전체 예산도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기존 쌀 농가에 주어지던 직불금의 하나인 ‘변동형 직불금’ 역시 지급이 불투명한 상황이어서 농가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변동형 직불금은 국회가 정한 쌀 목표가격과 시중 가격이 차이가 날 경우, 그 차액의 85%를 지원해주는 제도다. 그러나 국회가 2년간 지불 기준이 되는 쌀 목표 가격을 정하지 못하면서 2018년산 쌀 직불금부터는 농가에 지급하지 못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쌀 목표가격 21만4000원을 예산안에 반영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를 집행하기 위한 '농업소득법 개정안'에 아직 반영하지 못해 수정안을 의결해야 한다. 민주당은 오는 13일 본회의가 열릴 경우 21만4000원으로 의결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야당인 자유한국당·민주평화당 등에서는 목표 가격을 상향한 수정안을 발의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전국농민회총연맹·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사단법인 전국쌀생산자협회 등 농민 1000여명은 지난 9일 국회 농해수위 소속 의원 19명을 전체를 서울중앙지검에 형사 고발하기도 했다. 김영동 쌀생산자협회장은 서울중앙지검에서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라고 선출한 의원이 제대로 일을 수행하지 않아 농민들이 심적‧물적 피해를 보아 직접 고발하게 됐다”며 “일하지 않는 사람은 먹을 자격이 없으며 이들에게 국민의 세금을 한 푼도 써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을 주려고 이 자리에 나왔다”고 밝혔다.

한편 2020년 농림축산식품부 예산은 총 15조7743억원 규모로 올해보다 7.6% 증가했다. 전체 예산 증가율인 9.1%에는 미치지 못했다.

세종=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