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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야당 뺀 4+1, 512조 예산안 처리···국회선진화법 이후 처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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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철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71회국회(정기회) 제12차 본회의에서 2020년도 예산안 통과시키는 문희상 의장을 바라보고 있다. [뉴스1]

심재철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71회국회(정기회) 제12차 본회의에서 2020년도 예산안 통과시키는 문희상 의장을 바라보고 있다. [뉴스1]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10일 자유한국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당권파, 정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4+1’)이 내년도 예산안을 강행 처리했다. 내년 예산 총 규모는 512조 2505억원(총지출 기준)으로 결정됐다. 올해 예산 469조 5700억보다 42조 6805억원(9.1%) 늘었다.

이날 본회의엔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정의당, 평화당, 대안신당, 무소속 의원들만 투표에 참여했다. 재석 162인 중 찬성 156인, 반대 3인, 기권 3인으로 예산안은 본회의를 통과했다. 반대표를 던진 이는 바른미래당 비당권파 모임인 ‘변화와 혁신(변혁)’ 소속 김중로·이태규 의원과 무소속 이정현 의원이다. 표결이 진행되는 동안 한국당 의원들은 “세금 도둑” “날치기 처리”를 외치며 반발했지만, 예산안 처리를 저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2014년 국회선진화법 시행에 따라 12월 1일 예산안이 국회 본회의에 자동으로 부의(상정 전 단계)되는 제도가 도입된 이래 1·2당이 합의하지 않은 예산안이 처리된 건 올해가 처음이다.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전에는 2008년 여당이 예산안을 강행 처리한 적이 있다. 민주당이 4대강 예산 등에 반발했는데도 한나라당(자유한국당의 전신)이 단독 통과시켰다. 2005년엔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이 사립학교법 개정에 반발하며 예산안 처리에 불참한 가운데 열린우리당과 민주당·민주노동당이 새해 예산안 처리를 강행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1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예산안 통과에 대해 반발하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1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예산안 통과에 대해 반발하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민주당 등 ‘4+1 협의체’가 내년도 예산안 수정안을 본회의에 제출하자 한국당도 자체 예산안 수정안과 예산안 부수 법안 수정안 100여건을 제출하며 저지에 나섰다. 문 의장은 이날 밤 8시 39분쯤 본회의에 ‘4+1’ 수정안과 한국당의 수정안을 동시에 상정했다.

국회법에 따르면, 본회의에 상정된 안건은 원안에 대한 제안설명 이후 수정안별로 제안설명을 해야 한다. 제안 설명은 10분 이상 보장하게 돼 있다. 또 원안과 일괄해서 15분 이내에 토론도 해야 한다. 이런 규정 때문에 한국당은 무더기 수정안 제출 전략을 폈다. 일종의 변형된 필리버스터 전략이다.

하지만 문 의장은 “제안 설명은 의석 단말기의 회의 자료로 대체하겠다”고 생략하며 의사 진행을 속전속결로 했다. 제안 설명을 생략해 한국당의 반격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것이다. 그러고는 “토론 신청이 있으므로 토론을 듣겠다”며 한국당 조경태 의원을 단상으로 불러냈다. 이 과정에서 한국당 의원들은 “왜 제안설명을 생략하느냐”고 항의했지만 문 의장은 “과거 관행을 다 뒤져보고 (결정)한 것”이라고 맞섰다. 결국 토론자로 단상에 나온 조 의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침묵시위를 하자 문 의장은 10여분을 기다린 뒤 안건 상정 20여분 만인 9시 1분쯤 토론 종결을 선언했다.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71회국회(정기회) 제12차 본회의에서 2020년도 예산안이 상정 의결된 후 이낙연 국무총리가 정부측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71회국회(정기회) 제12차 본회의에서 2020년도 예산안이 상정 의결된 후 이낙연 국무총리가 정부측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문 의장은 이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한국당 수정안에 대한 동의 여부를 물었다. 곧바로 홍 부총리가 단상에 나와 “부동의한다”고 밝혔다. ‘부동의’ 의견을 확인한 문 의장은 한국당 수정안에 대한 표결을 하지 않고 곧바로 4+1 협의체 소속 의원 162명이 제출한 예산안 수정안을 상정했다. 홍 부총리는 “이의가 없다”며 동의 입장을 밝혔다. 이에 문 의장은 곧바로 표결에 들어가 ‘4+1’ 예산안은 가결됐다.

예산안 처리 뒤 김재원 예결위원장은 “총체적인 불법의 결정판”이라며 “오늘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도 처리 순서를 앞당기고 수정 동의안조차 순서를 바꿔 민주당 안을 먼저 표결하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불법이 총동원됐다”고 반발했다.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도 “4+1 협의체가 낸 수정안에 반대 토론을 신청했지만, 토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문 의장이 토론을 종결했다”며 “오늘의 국회 의사 진행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폭거로 4+1 예산안 수정안은 무효”라고 했다.

국회 상황은 얼어붙게 됐다. 향후 예정된 임시국회에서 패스트트랙 법안 등을 두고 한국당은 ‘초강공’ 모드로 나설 전망이다. 하지만 필리버스터를 한 법안은 회기가 끝나면 곧바로 표결하게 돼 있는 특성상, 민주당이 4일 단위로 임시국회를 쪼갤 경우 표결을 막는 데도 한계가 있다. 김정재 원내대변인은 “한국당이 극한투쟁을 하게끔 (민주당 등이) 몰아가고 있다”고 했다.

윤성민·한영익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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