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이 자행한 ‘분서’ 사건에 중국 사회 시끌

중앙일보

입력

21세기 중국에서 진시황(秦始皇) 때의 분서갱유(焚書坑儒) 중 유생을 묻는 ‘갱유’는 아니지만, 책을 불태우는 ‘분서’ 사건이 발생해 논란이 일고 있다. 중국 신경보(新京報)와 홍성신문(紅星新聞), 홍콩 명보(明報) 등에 따르면 사건은 지난 10월 22일 발생했다.

중국 깐쑤성 칭양시 전위안현 도서관의 직원들이 종교 서적과 특정 성향의 서적들을 수거해 도서관 문 앞에서 불태우고 있다. [중국 바이두 캡처]

중국 깐쑤성 칭양시 전위안현 도서관의 직원들이 종교 서적과 특정 성향의 서적들을 수거해 도서관 문 앞에서 불태우고 있다. [중국 바이두 캡처]

깐쑤(甘肅)성 동부에 있는 칭양(慶陽)시의전위안(鎭原)현 도서관이 사달의 주인공이다. 지난해 국가 2급 도서관에서 1급 도서관으로 승격된 이 도서관은 사회에 중국의 주류의식을 전파하는 진지가 되겠다는 목적으로 활동 하나를 전개했다.
도서관 내 소장 자료 중 문제가 있는 자료 색출에 나선 것이다. 이 활동은 전위안현 문화관광국의 직접적인 독려와 감독하에 실시됐다고 명보는 보도했다. 전위안현 문화관광국은 두 가지 사항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첫 번째는 도서관이 ‘4개 의식’ 강화 입장에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올바른 정치 성향의 정치의식과, 큰 국면을 헤아리는 대국(大局)의식, 뭐가 핵심인지를 제대로 파악하는 핵심의식, 일사불란하게 한 곳을 지향하는 간제(看齊)의식 등이 그것이다.
두 번째는 ‘두 가지 사항 굳건하게 지키기’다. 하나는 시진핑(習近平) 총서기의 당 중앙 핵심 지위를 굳건하게 지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당 중앙의 권위와 통일적인 지도를 굳건하게 지키는 것이다.
바로 이 같은 목적을 갖고 도서관 내 모든 열람실과 전시실, 서고, 판공실 등을 샅샅이 훑었다. 그 결과 사회에서 기증받은 불법 출판물과 종교 관련 서적, 특히 특정 성향을 띠는 문장을 포함한 서적과 사진 출판물, 영상 자료 등 65점을 발견했다.
수거한 65점을 두 명의 여직원이 도서관 입구에서 불태우는 사진도 공개했다. 전위안현은 도서관이 사회 정보 교류의 중심 역할을 할 것이며 또 핵심 가치관을 교육하고 전파하는 중대한 사명을 담당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같은 소식을 접한 중국 사회는 놀랐다. 중국이 아직도 ‘금서’라는 이름으로 불법 출판물을 색출하고는 있지만 파기는 보통 잘게 썰어 버리는 방식이지 불에 태우지는 않기 때문이다.
특히 분서갱유의 아픈 기억을 가진 중국 사회에서 분서는 문명사회가 해선 안 될 금기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전위안현 도서관의 분서 행위에 비문명적이라는 비난이 쏟아지는 배경이다.
한편 명보는 중국에선 사상 심사가 강화되면서 합법적으로 출판된 『성경』이나 『코란』 등 종교 서적이 관련 부문의 요구에 의해 서가에서 내려지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주류의식 전파의 진지가 되겠다”며 #종교 서적과 특정 성향 출판물 불태워 #“문명적인 행동 아니다’ 비난 쏟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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