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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지성] 틱낫한의 비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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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면

습관적으로 아침을 거른 채 회사에 간다. 때려치우지 못할 만큼의 봉급을 받으며 '밥벌이의 괴로움'을 곱씹는다. 요동치는 집값, 줄지 않는 카드 할부, 아내의 끝 모를 역정…. 로또가 아니고선 벗어날 길 없는 일상의 굴레 속에 당신은 인생에 살의를 느껴본 적 없는가.

"우리의 마음은 여러 종류의 씨앗을 품고 있는 텃밭과 같습니다. 만약 분노.폭력.공포라는 씨앗에 물을 준다면 우리는 행복할 수도, 우리 자신을 인정할 수도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과 자비와 이해의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어 기른다면 폭력과 증오의 뿌리는 말라 설 곳이 없을 것이고, 우리는 비폭력적인 평화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른바 '걷기 명상'으로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진 틱낫한(釋一行.77) 스님이 전하는 '잘 먹고 잘 사는 법'이다. 그칠 줄 모르는 욕망을 비워야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는 것이다. 신간은 '화'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 등의 베스트셀러를 통해 일상 속 평화 찾기를 구도해 온 스님이 보다 구체적으로 실천의 지침을 제시한 책이다. 스님이 말하는 폭력은 근원적인 것이다. 즉 타인을 소외시키는 것, 내 믿음만이 진리라고 믿는 것, 감각적인 즐거움을 좇는 것 모두가 폭력이다. 이로부터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선 생활 속에서 '마음 다함(mindfullness)' 훈련이 필요하다. 삶에 대한 경외심을 갖기, 관대함의 실천, 올바른 성생활, 주의깊게 듣고 상냥하게 말하기, 올바른 소비 등이 그것이다.

베트남 태생 반전 평화운동가로서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른 바 있는 틱낫한 스님은 프랑스 보르도에서 명상공동체 '플럼빌리지'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3월 두 번째로 한국을 찾았고, 올해 초엔 한국 독자들에게 '생활 속의 행복을 위한 편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본지 1월 2, 3일자)

틱낫한 스님은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이미 평화라고 말한다. 그러니 이 책을 읽을 땐 여느 때보다 천천히, 글자 한 자 한 자에 입 맞추는 기분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그런 느린 호흡에 자신이 없다면 아예 책을 덮어라. 그리고 맑은 가을 하늘을 보아라. 내 안의 아이를 깨워 대화를 나누는 것이 평화를 얻는 첫 번째 길이리라.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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