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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유명하다고 괴로움을 모르겠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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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가영
이가영 기자 중앙일보
이가영 사회2팀 기자

이가영 사회2팀 기자

소나무가 멋스럽게 담장을 감싼 넓은 정원, 아치형 창문이 고급스러움을 더해주는 빨간 2층 벽돌집. 그곳에서 25살의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른 나이에 부모 도움 없이도 좋은 집을 가질 만큼 성공한 그에게는 언제나 부러움과 시기가 묘하게 뒤섞인 말들이 따라붙었다. 아파서 병원에 가면 낙태설이 돌았고, 노브라라는 이유로 자극적인 기사 제목의 희생양이 됐다. 20대 초반의 여성이 감당하기엔 힘들 말들이었기에 그는 집밖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의 사망 소식이 들려온 날 찾아간 그 집은 누구라도 살고 싶어 할 곳이었고, 그래서 더 슬펐다. 어쩌면 그에게 필요했던 건 저택이 아니라 담장 밖 사람들의 따뜻한 눈빛과 응원이었을 것 같아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조용히 장례를 치르고 싶다”는 유족의 요청에도 한 기자는 그의 장례식장 위치를 ‘단독’으로 알렸다. 사실 전날 현장에 있던 기자들끼리는 공유된 사항이었고, 모두 알고는 있었지만 말하지 않고 있던 것이었다. 악플은 악플을 낳았다. 추모 글을 올리지 않는다며 헤어진 연인의 SNS를 찾아가 비난했고, 올렸다고 비난했다. 해외에 있어 SNS로 추모 영상을 올린 연예인과 조용히 빈소를 지키고 이를 공개하지 않은 동료의 추모 방식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어떤 댓글에도 “내 탓인 것 같아 이제 댓글 쓰는 것을 접겠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와 절친했던 연예인이 또 홀로 숨진 채 발견됐다. 과거에도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던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집에서다. 이번에도 죽음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으려는 이들은 없다. 소송전을 벌였던 전 남자친구는 SNS를 닫았고, 언론사는 기사를 쏟아냈고, 악플러들은 기자들이 판을 깔아준 탓을 한다. 그러면서 “돈을 벌었으니 그에 따른 성공의 대가 아니겠는가. 싫으면 연예인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쟤가 뒤에서 너 욕하고 다니더라”라는 말 한마디에도 잠을 못 이루는 게 보통의 사람이다. 유명하다고 괴로움을 모르겠는가.

이가영 사회2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