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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숲' 만들고 상사 비방 허위사실 올린 직원, 법원"해고 정당"

중앙일보

입력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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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숲’이라는 사내 익명 밴드(커뮤니티)를 만들고 회사의 특정 인물을 비방하는 글을 올린 A씨가 이로 인한 징계로 해고당하자 소송을 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서울행정법원 12부(재판장 홍순욱)는 A씨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에서 A씨의 청구를 기각하고 "징계사유를 인정할 수 있고 해고도 적법하다”고 26일 밝혔다.

사내 밴드에 비방글 올린 직원

정부부처 산하 준정부기관에서 일하던 A씨는 2017년 기관 노사협의회 근로자 위원으로 선출된다. A씨는SNS서비스인 네이버 밴드에 ‘대나무숲’이라는 밴드를 만들었다. 밴드에는 회사 직원 120여명이 가입했다.

A씨는 밴드에 두 개의 닉네임으로 5개의 글을 올렸다. “B부장은 재테크에 뛰어나 수십 채 부동산을 통한 월세 수입이 어마어마하다” “주변에서 만나는 사람은 집수리업자가 다수다” “재테크로 시간이 없어 본인 호패를 복사해 심복에게 맡기고 결재를 대신하게 한다” 등 회사 B부장에 대한 비방 글이었다.

B부장은 밴드 개설자인 A씨에게 글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했다. A씨는 글을 삭제하지는 않고 해당 글에 "본인이라고 주장하시는 분이 삭제를 요청했으니 참고 바란다"는 댓글을 남겼다. 그리고는 다른 닉네임으로 "ㅋㅋㅋㅋ 픽션 아니었던가요...?"라는 댓글을 달았다. B씨는 경찰에 게시글 작성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법원에는 정보공개를 요청해 비방글을 쓴 닉네임이 A씨 것임을 알아내 회사에 징계를 요구했다. A씨는 명예훼손죄로 기소돼 벌금 300만원을 확정받았다. 회사는 A씨를 해고했고 A씨는 이에 불복해 소송을 냈다.

‘표현의 자유’ 주장한 A씨

A씨는 재판에서 표현의 자유를 주장했다. 대나무숲 밴드에 올린 내용은 직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풍자하려고 창작 소설 형태의 글을 쓴 것이기 때문에 징계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또 밴드에 올린 글은 직무와 무관한데 징계로 해고까지 한 것은 재량권을 일탈해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특정인 비방글, 표현의 자유 안돼  

법원은 A씨가 특정 직원에 대한 비방글을 올린 것은 징계 사유가 된다고 판단했다. A씨가 쓴 글은 조직 문화 개선을 위한 문제 제기 목적으로 쓴 글이 아니라는 취지다. 법원은 "직원으로서의 품위와 위신을 손상하고 다른 직원을 비방해 괴로움을 주는 행위로 징계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해고 역시 정당하다고 봤다. 우리 법은 징계해고나 징계파면은 사회 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근로자에게 책임이 있는 경우에 정당하다고 인정된다. 법원은 A씨가 비방글로 징계를 받기 전 회사로부터 수차례 징계를 받아온 점 등도 함께 고려했다. A씨는 대나무숲 사건 이전에도 회사 앞에서 회사에 대한 근거 없는 내용으로 1인시위를 해 감봉 3개월 처분을 받았다. 자신에게 인사고과를 낮게 준 부장과 언쟁을 벌여 감봉 3개월을 받기도 했다.

법원은 "A씨가 징계를 받은 다수 행위가 모두 7개월 이내에 이뤄졌고, 동료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직장 질서 및 화합의 분위기를 저해했다"고 판단했다. 또 "B팀장이 게시글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했음에도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댓글을 달아 삭제 요청을 조롱한 점에서 고의성과 반복성이 엿보인다"며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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