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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엔 고향 가는데…화마가 앗아간 25살 베트남 선원의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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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20일 오전 경남 통영시청 제2청사에 마련된 제주 어선화재 사고 실종자 가족 대기실 옆에서 한 베트남 선원 가족이 주저앉아 있다. 김정석기자

20일 오전 경남 통영시청 제2청사에 마련된 제주 어선화재 사고 실종자 가족 대기실 옆에서 한 베트남 선원 가족이 주저앉아 있다. 김정석기자

제주 차귀도 해상에서 어선 화재사고가 일어난 지 둘째 날인 20일 경남 통영시청 제2청사엔 실종된 베트남 선원 가족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자신의 가족이 먼 타국에서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에 하나같이 굳은 표정이었다. 이들은 부산과 울산 등에 체류하고 있다가 사고 소식을 듣고 19일 밤부터 통영에 속속 도착했다.

사고 소식에 통영 모여든 베트남 선원 가족들 #대성호 전체 승선원 중 절반인 6명이 베트남인 #절반이 기간만료로 내년 귀국 예정이었던 이들

화재 사고가 난 연승어선 대승호(29t)에 타고 있던 베트남 선원은 모두 6명. 이들 가족 14명이 통영시청 제2청사에 마련된 실종자 가족 대기실에서 구조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은 한국에 체류하던 가족과 친척인데 일부 가족은 베트남 현지에서 한국으로 오기 위한 절차를 밟는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실종자 가족 대기실에는 베트남어 통역사 2명이 가족들과 함께 머무르며 수색당국과 소통하고 있다. 베트남 선원 가족들 대부분은 한국말이 서투른 데다 갑작스러운 사고에 경황이 없는 분위기여서 언론과의 접촉도 손사래를 치며 거부하는 상황이다. 20일 오전 이들은 자세한 사고 경위와 수색 상황에 대한 브리핑을 듣고 실종자 가족 대기실로 이동, 앞으로의 대책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이번 대성호 화재 사고는 전체 승선원 12명 중 절반인 6명이 베트남 선원이었다. 가장 나이가 어린 베트남 선원은 25세였고 대부분이 20~30대로 젊은 편이었다. 이들 중 절반은 2015년 입국해 4년 이상 국내에 체류하며 일을 해 왔고 체류 기간 만료가 다가와 이르면 내년 3월에 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외국인 선원들은 4년 10개월씩 두 번 국내에서 일할 수 있고 그 뒤로는 한국 취업비자를 받을 수 없다. 최대 9년 8개월을 일할 수 있는 셈이다.

19일 오전 제주 차귀도 서쪽 해상에서 통영 선적 연승어선 대성호(29t·승선원 12명)에 화재가 발생해 불길이 치솟고 있다. [사진 제주지방해양경찰청]

19일 오전 제주 차귀도 서쪽 해상에서 통영 선적 연승어선 대성호(29t·승선원 12명)에 화재가 발생해 불길이 치솟고 있다. [사진 제주지방해양경찰청]

관련 업계에 따르면 외국인 선원 대부분은 필요한 용돈을 제외한 모든 월급을 본국으로 보낸다고 한다. 대성원 선원들의 경우도 모두 주소지를 선주의 집으로 두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배에서 쪽잠을 자거나 선주가 잡아주는 숙박업소에서 머무른 것으로 알려졌다.

대성호는 수 천개의 바늘에 미끼를 끼워 고기를 잡는 연승어선이다. 연승어선을 비롯한 연근해 어선들엔 외국인 선원 상당수가 일하고 있다.  해양수산부 외국인선원 고용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08년 1만2777명이었던 외국인 선원은 2018년 2만6321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이들의 월급은 보통 200만원으로, 한국인 선원보다 낮지만, 경력이 많거나 일의 종류에 따라 300만원 이상 버는 외국인 선원도 있다.

이번 사고로 실종된 베트남 국적 선원은 2008년만 해도 가장 적었지만 해마다 그 수가 증가해 지난해 5355명을 기록했다. 인도네시아(9084명)와 필리핀(5779명) 다음으로 많은 숫자다.

19일 밤 제주 차귀도 서쪽 해상에서 대성호(29톤·통영선적) 실종자 11명을 찾기 위한 수색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 제주지방해양경찰청]

19일 밤 제주 차귀도 서쪽 해상에서 대성호(29톤·통영선적) 실종자 11명을 찾기 위한 수색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 제주지방해양경찰청]

한편 수색당국은 19일 밤부터 20일 새벽까지 조명탄 161발을 쏘고 군·경 함정 18척과 헬기 등 항공기 18대 등을 동원해 실종자 수색에 나섰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20일에도 실종자 수색은 계속되고 있지만 사고 해역에 이날 오전까지 초속 10∼16m로 강한 바람이 불고 파고도 2∼4m로 높게 일어 수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통영=위성욱·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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