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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해외문화재 뒷짐 진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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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남의 나라 땅에 흘러들어와 빛을 보지 못하던 한국 문화재 한 점이 24일 한국 땅으로 되돌아갔다. 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하나인 진주성 싸움의 명장 김시민 장군에게 내려진 선조 임금의 공신교서다. 선조의 얼이 담긴 문화재를 되찾아 제대로 모시게 된 것은 반갑고 기쁜 일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 과정을 지켜본 입장에선 아쉬움이 많다. 공신교서를 되사들이기 위한 시민들의 모금운동이 진행되는 동안 정부는 뒷짐을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두 손 놓고 있는 정부가 못마땅해 시민들이 나섰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사실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인 쪽은 문화재 당국이었다. 국립박물관 관계자가 직접 일본에 다녀가 감정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검토 끝에 매입을 포기하고 말았다. 이유는 절차와 가격 때문이었다.

현행 국립박물관의 유물 구입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문화재를 팔려는 사람이 먼저 국립박물관 측에 신청을 하게 돼 있다. 그것도 일 년에 두 차례 국립박물관이 먼저 입찰 공고를 낸 뒤에야 가능하다. 그 이후엔 전문가들로 구성된 문화재위원회에서 감정과 함께 가격이 적절한지 등을 따진다. 국민 세금인 예산이 들어가는 일이니 까다로운 심사와 한 푼이라도 가격을 깎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취지는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모처럼 해외에서 발견된 문화재에도 똑같은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는 설명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다. 국보급 문화재가 외국에서 발견돼 현지의 박물관과 수집가들이 군침을 흘리고 있기 때문에 분초를 다투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에도 소장자에게 한국의 절차를 지켜 달라고 요구할 여유가 있을까.

가격대 역시 마찬가지다. 김시민 공신교서를 국립박물관이 포기한 데에는 일본 경매에서 거래된 가격(1억원대)이 다른 공신교서의 감정가(6000만~8000만원)보다 비싸다는 이유가 작용했다. 설사 웃돈을 주더라도 필요한 문화재라면 적극적으로 사들여야 하지 않을까.

일제에서 해방된 지 올해로 61년, 전문가들은 일제 36년 동안 일본으로 반출된 뒤 일본땅 어디선가 잠자고 있는 문화재들이 서서히 종적을 드러낼 시기가 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번에 드러났듯 그에 대비한 문화재 당국의 체제는 전혀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이다. 해외 문화재 환수에 대비한 관련 법 규정과 제도부터 먼저 정비해야 할 때다.

예영준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