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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대통령들이 떤다···모랄레스, 권력욕에 결국 불명예 퇴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모랄레스 대통령이 지난해 한 행사에 참여한 모습. 그는 11일 선거 개표 조작 논란 끝에 퇴진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모랄레스 대통령이 지난해 한 행사에 참여한 모습. 그는 11일 선거 개표 조작 논란 끝에 퇴진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부정선거 논란 속에 결국 백기를 들고 불명예 퇴진했다. 1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와 볼리비아 일간지 엘데베르는 모랄레스 대통령이 의회에 사임 의사를 밝혔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20일 치른 대통령 선거의 개표 조작 의혹을 비난하는 시위가 3주째 계속되면서다. 시위가 격화하면서 사망자까지 3명 발생한 상황이다.

혼돈의 남미 분수령

모랄레스의 퇴진을 두고 NYT는 “남미를 최근 몇 달 간 뒤흔들고 있는 정치적 불안의 획을 긋는 사건”이라고 평했다. 베네수엘라에선 마두로 대통령이 대선 조작 의혹을 받으며 후안 과이도 야당 지지자가 미국 등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고 있다. 브라질은 ‘남미의 트럼프’라고 불리는 자이르 보우소나르 대통령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집권하고 있으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이 지난 8일 석방되면서 반(反) 보우소나르 운동에 불을 붙이고 있다.

볼리비아에서 모랄레스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했던 시위대들이 퇴진 소식이 전해진 10일(현지시간) 기뻐하고 있다.

볼리비아에서 모랄레스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했던 시위대들이 퇴진 소식이 전해진 10일(현지시간) 기뻐하고 있다.

모랄레스는 2006년 볼리비아 좌파의 기수로 당선해 퇴진 전 까지 남미의 현 국가 지도자 중 최장수 리더였다. 그러나 국민에게 ‘독재자’ 비난을 받으며 불명예 퇴진하게 됐다. 4선이 가능하도록 개헌까지 한 권력욕이 화근이 됐다.

지난달 선거에선 개표가 갑자기 중단되면서 개표 조작 의혹이 제기됐다. 개표 중단 전엔 모랄레스 대통령과 카를로스 메사 야당 후보의 득표율 차가 7%에 불과했으나 재개 후 갑자기 10%포인트 이상 앞선 것으로 발표됐기 때문이다. 볼리비아에선 10%포인트 차이가 나면 당선이 확정된다. 모랄레스 측이 개표 결과를 유리하게 조작했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경찰도 곳곳에서 항명 의사를 밝혔고, 거리엔 ‘모랄레스는 독재자’라는 구호가 나붙었다.

볼리비아 시위 격화로 거리가 엉망이 된 모습. 사망자도 다수 발생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볼리비아 시위 격화로 거리가 엉망이 된 모습. 사망자도 다수 발생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모랄레스는 마지막 순간까지 권좌에 집착했다. 퇴임 뜻을 밝히기 몇 시간 전 기자회견을 열고 사퇴 아닌 재선거를 치르겠다는 뜻을 밝히면서다. 당초 그는 재선거도 불필요하다는 입장이었으나 야당은 물론 경찰까지 그를 비난하고 나서자 뜻을 바꿔 재선거 카드를 꺼냈다. 그러나 수시간 후, 퇴임으로 방향을 바꿨다.

볼리비아 최초로 원주민 출신 대통령인 그는 집권 초기엔 빈곤 퇴치 정책 등으로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최근 개헌 등 권력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데다 언론ㆍ사법까지 입맛대로 주무른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제적으로 고립된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정부를 지지하면서 외교 정책까지 도마에 올랐다.

한편 모랄레스가 사임을 발표하자 중남미 좌파 지도자들이 일제히 반정부 시위대를 규탄하고 나섰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미국의 음모에 동지(모랄레스)가 희생됐다"며 "쿠데타를 규탄한다"고 밝혔고, 역시 좌파 정부가 집권한 멕시코에선 모랄레스에게 망명을 제안하기도 했다. 최근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승리한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당선인도 자신의 트위터에 "볼리비아에서 쿠데타가 발생했으며 이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난했다. 얼마 전 석방된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전 대통령은 "내 친구 모랄레스가 쿠데타 때문에 강제로 사임당했다"며 "유감"이라고 밝혔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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